[베이스볼 브레이크] 칼자루 쥔 MLB…포스팅 상한선 딜레마

입력 2016-03-2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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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KBO에 ‘상한선 800만달러’ 제안
포스팅 금액도 국내구단 먼저 책정 변화
거절 땐 ‘한·미선수계약협정’ 자동 파기

협상 통해 포스팅 상한선 올리는게 최선

최근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KBO에 ‘포스팅(비공개경쟁입찰) 금액 상한선 800만달러(약 93억원)’를 제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일본프로야구(NPB)는 상한선이 2000만달러인데, 한국은 이에 비해 40%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다.

포스팅 금액은 일종의 이적료다. 2013년 LA 다저스가 류현진을 영입할 때 2573만7737달러, 지난해 말 미네소타가 박병호를 획득할 때 1285만달러라는 최고 응찰액을 써내 각각 전 소속구단 한화와 넥센에 건넨 바 있다. 그러나 MLB 사무국의 제안대로라면 앞으로 류현진 이상의 기량을 지닌 선수가 나오더라도 포스팅을 통해 빅리그에 진출할 경우 국내 구단에 돌아가는 몫은 최대 800만달러로 묶이게 된다. 그러자 KBO리그 구단은 물론 대부분의 야구인들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금액”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반발하고 있다.


● KBO 구단이 포스팅 금액 먼저 정하는 방식

MLB 사무국의 이번 제안에서 종전과 달라진 부분은 금액 상한선뿐만이 아니다. 방식도 바뀐다. 국내 구단이 포스팅 금액을 먼저 정하고, MLB에 제시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예를 들어 향후 넥센 김하성이 포스팅을 통해 미국으로 진출한다고 가정하자. 이때 넥센 구단이 포스팅 금액을 800만달러로 할지, 300만 달러로 할지 액수를 먼저 정하고 포스팅을 하는 것이다. MLB 구단이 눈치작전을 펼치며 최고액을 써내 독점교섭권을 따내던 종전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KBO 구단이 제시한 포스팅 금액을 보고 MLB 구단은 응찰 여부를 결정한다. 응찰 구단이 없으면 포스팅은 철회된다. 1개 구단이 나선다면 지금처럼 독점교섭권을 얻고, 복수의 구단이 들어올 경우 선수가 복수의 구단과 연봉협상을 한 뒤 행선지를 선택할 수 있다. 계약이 성사되면, MLB 구단이 포스팅 금액을 한국의 전 소속구단에 지급한다.


미·일 사례 보면 거부하기 힘든 요청

MLB 사무국은 지난해 9월 ‘한·미선수계약협정’ 개정을 요청해왔다. 한·미선수계약협정은 양국의 커미셔너(총재)가 특별한 개정 요청을 하지 않으면 계속 연장된다. 다만 협정 만료일(매년 3월 15일) 180일 이전에 양국 커미셔너 중 한쪽이라도 개정 요청을 하면 상대쪽에서 응해야 한다. 개정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 협정은 자동 파기된다.

MLB 사무국은 지난해 9월 협정 개정 요청을 할 때만 해도 그 내용에 대해선 함구했다. 2월 말 포스팅 금액 상한선 내용을 전달받은 KBO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일단 각 구단에도 알리고 입장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MLB 사무국에 “5월 15일까지 2개월간 협상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해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MLB 사무국이 2013년 NPB 사무국과 포스팅 상한선을 놓고 협상하던 상황을 떠올리면 KBO가 협상을 통해 포스팅 금액 상한선을 끌어올릴 가능성은 희박한 것이 사실이다. 일본도 종전 5000만달러를 넘던 포스팅 금액이 최대 2000만달러로 떨어지자 반발했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MLB가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자 결국 받아들이고 말았다.

2006년 보스턴이 마쓰자카 다이스케(5111만 1111달러), 2011년 텍사스가 다르빗슈 유(5170만 3411달러)를 영입할 때 5000만달러 이상의 응찰액을 써냈지만, 새로운 포스팅 협정에 따라 2013년 말 다나카 마사히로를 획득한 뉴욕 양키스와 지난 시즌 후 마에다 겐타를 얻은 다저스는 2000만달러를 전 소속구단인 라쿠텐과 히로시마에 각각 건넸다.


칼자루 쥔 MLB와 KBO의 딜레마

만약 MLB 사무국의 제안을 KBO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럴 경우 한·미선수계약협정은 자동 파기된다. 불리한 것은 한국이다. 협정이 파기된다면 MLB가 무차별적으로 선수를 영입해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즌 도중 MLB 구단이 자유롭게 SK 김광현이나 NC 나성범, 삼성 구자욱 등과 계약해 데려갈 수도 있다. 물론 한국도 MLB 선수를 영입할 수 있지만, 자금력에서 MLB와 경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NPB도 처음에는 저항하다 결국 미·일선수계약협정을 지키기 위해 2000만달러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들인 이유다.

물론 MLB 사무국도 한국이 세계야구 무대에서 중요한 파트너이기 때문에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원치는 않을 테지만, 분명한 것은 협상에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MLB 쪽이라는 점이다. 협상을 통해 최대한 포스팅 금액 상한선을 올리는 것이 필요해보이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KBO리그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선수를 FA가 될 때까지 보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해외 진출의 꿈을 꾸는 선수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방안이어서 구단에서도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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