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우규민의 고백 “기나긴 터널, 명상과 독서로 견뎠다”

입력 2016-07-13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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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우규민(31). 사진제공|스포츠동아DB

10일 롯데전 6.2이닝 무실점 ‘우규민다운 투구’
그전 9경기서 1승7패 기나긴 부진 마음고생
“허리 안 아파 후반기 부담감 내려놓고 던질 터”


“평소 책을 잘 안 읽었는데, 오죽했으면 명상도 하고 긍정적인 책까지 읽었겠습니까. 팬들도 어떻게 알았는지 긍정적인 책을 많이 선물해주시고.”

고통의 시간이었다. 항상 웃는 얼굴과 유머를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티가 나지 않았지만, 속마음까지 유쾌할 리는 없었다.

LG 우규민(31)이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났다. 10일 사직 롯데전에서 6.2이닝 6안타 3볼넷 7탈삼진 무실점의 완벽투로 팀의 6-0 승리를 이끌면서 개인적으로도 시즌 4승(7패) 고지를 밟았다.

시즌 출발은 좋았다. 4월26일 대구 삼성전에서 완봉승을 거둘 때만 해도 일을 낼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때까지 올 시즌 유난히 승운이 따르지 않아 5경기에 등판해 시즌 2승(무패)째를 채웠을 뿐이었지만, 방어율 2.05에 투구는 무르익었다.

그러나 이후 완전히 다른 투수가 돼버렸다. 다음 등판인 5월4일 잠실 두산전(4이닝 6실점)을 시작으로 난타를 당했다. 이날부터 7월5일 대구 삼성전(5이닝 7실점)까지 9경기에 선발등판해 1승7패를 기록했다. 그 기간 45이닝 45실점(45자책점)으로 방어율 9.00을 기록했다. 홈런만 10개를 허용했다. 볼넷도 그 기간 9개를 내줬다. 다른 투수에 비해서는 당연히 적은 볼넷 숫자지만, 지난해 한 시즌(152.2이닝) 내내 17개의 볼넷만 허용한 국내 최고의 핀포인트 컨트롤 투수인 그였기에 주변에서는 “구위도 구위지만 컨트롤마저 우규민답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우규민은 12일 잠실 한화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나 자신이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던 시간이었다”고 돌이켰다.

“요즘엔 전광판도 최신식이라 기록이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더라고요. 점수를 주는 순간 전광판 방어율이 막 올라가는 게 보이는데…. 1~2경기는 모르지만 부진이 반복되니까 머릿속이 백짓장이 됐어요.”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 2013~2015년 최근 3년 내리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며 LG 선발 마운드의 축으로 맹활약했다. 올 시즌이 끝나면 FA(프리에이전트) 자격도 얻기에 스스로도 의욕이 컸다. 국내 구단들은 물론 메이저리그 구단에서도 그가 등판할 때마다 스카우트들을 매번 파견하면서 관심을 기울일 정도였다. 그러나 거듭된 부진과 실망스런 투구가 이어지면서 지난 3년간 쌓아온 공든 탑이 흔들리고 말았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나를 좋아했어요. 3회만 되면 짐 싸서 빨리 퇴근할 수 있었으니까요.”

취재진의 배꼽을 잡게 만드는 ‘자학개그’는 여전했다. 그렇다면 갑자기 왜 부진했던 것일까.

특히나 완봉승 이후에 상승 모드로 돌아선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향곡선을 탄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핑계 같기는 하지만 사실 삼성전 완봉승을 할 때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그 전 경기(4월20일 잠실 NC전 4이닝 3실점 후 강판)에서 허리를 삐끗했거든요. 그래서 완봉승 다음 경기에서 쉬었어야 하는데, 완봉승도 했겠다 괜찮을 줄 알았죠. 컨트롤이 안 됐어요. 볼볼 하다 일부러 가운데로 던지면 맞더라고요. 예전 좋았을 땐 그렇게 가운데 넣어도 범타가 됐는데, 안 좋으니까 그게 홈런이나 안타가 되더라고요.”

10일 롯데전의 무실점 투구는 오랜만에 ‘우규민다운’ 투구였다. “1회말에 마운드 올라가기도 전에 타선이 5점을 뽑아줬잖아요. 홀가분하게 생각했어요. 5점 다 줘도 동점 아니냐고. 그 전 3경기에서 7점씩, 7-7-7로 줬는데 이번엔 ‘7점만 안 주면 되지’라고 생각하니까 편하더라고요. 특별히 바꾼 건 없어요. 다만 강상수 투수코치님이 ‘직구에 힘이 없으니까 변화구가 안 통하는 것 같다’고 하셔서 직구에 신경을 써서 힘 있게 던졌죠. 직구를 너무 세게 던져서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전반기 등판은 끝났다. 다행인 것은 좋은 기분과 느낌으로 전반기를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이제 허리가 안 아파 좋아요. 그동안 응원해준 팬들, 기대해준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했는데 오히려 후반기엔 미안함과 부담감을 내려놓고 던지려고 합니다. FA도 솔직히 신경 안 쓰려고 해도 신경이 쓰였는데, 이젠 신경 안 쓰려고요. 그런데 한번 잘했다고 기사 막 나가고 그러면 창피한데~.”

오랜 만에 ‘유쾌한 인터뷰’가 진행됐다. 그 순간 우규민은 “자, 이제 저 명상하러 가야할 시간입니다”라며 라커룸으로 줄행랑을 쳐 또 한번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잠실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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