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이 만난 사람] 김연경이 리우올림픽에 내건 공약은?

입력 2016-07-1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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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는 한국여자배구. 그 중심에 김연경이 있다. 리우올림픽 첫 경기 상대가 ‘영원한 라이벌’ 일본이어서 김연경은 더욱 날카롭게 벼르고 있다. 진천선수촌|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40년 만에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는 한국여자배구. 그 중심에 김연경이 있다. 리우올림픽 첫 경기 상대가 ‘영원한 라이벌’ 일본이어서 김연경은 더욱 날카롭게 벼르고 있다. 진천선수촌|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배구 여제’ 김연경(28·페네르바체)과의 인터뷰에 앞서 이정철 여자대표팀 감독을 먼저 만났다.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있나싶어서다. 김연경 얘기가 나오자 이 감독은 홍수에 둑 터지듯 쏟아냈다. “하늘이 주신 선수”라고 운을 떼더니 “100년이 아니라 2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그런 선수”라며 침을 튀겼다. 제자 사랑이 남다른 건 알고 있었다. 리우올림픽이 목전이라 선수단 주장의 사기를 염두에 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래도 립서비스 치고는 심하다 싶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구구절절 옳은 소리다. 손뼉이 절로 나왔다. “신체조건(192cm, 73kg)은 타고 났다. 앞으로 저 만한 선수 나오기 힘들다. 저 큰 키에 유연성을 보면 정말 놀란다. 배구 센스는 또 어떻고. 최고다. 공격 뿐 아니라 수비도 일품이다.”

이쯤에서 한 템포 쉰 이 감독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2가지를 추가했다. “자기 관리를 정말 잘 한다. 어떻게 하면 컨디션을 유지하는지를 아는 선수다. 더 칭찬해주고 싶은 건 멘탈이다. 경기에 임하는 강인한 정신력은 물론이고 코트 밖에서도 본받을만하다.”

이 감독과 김연경의 인연은 2004년 청소년대표팀을 통해 맺어졌다. 오랜 시간 봐왔고, 그래서 서로를 잘 안다. 신체조건과 감각, 자기관리, 멘탈…. 더 이상 무엇을 추가할 수 있을까. 국보(國寶)이라는 찬사가 딱 어울리는 선수다. 이제 당사자의 입을 통해 생각을 들어볼 차례다.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김연경은 나를 보자마자 “힘들어 죽겠다”며 입술을 실룩거렸다. 표정을 보면 엄살은 아닌 듯 했다.


-힘든 시기인 것 같은데. 컨디션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지금 컨디션 관리는 팀 차원에선 크게 하지 않는다. 지금은 한창 (훈련 강도를) 끌어올리는 단계다. 다들 피로하기도 하고, 부상 부위가 아픈 선수도 있다. 지금은 이겨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개인적으론 잠을 좀 많이 자야 한다. 감독님께서 배려해주셔서 이른 아침식사 시간 대신 잠을 자고, 아침 좀 늦게 먹을 수 있다. 트레이너는 8시간은 자야 피로가 풀린다고 한다. 그래서 8시간 이상 숙면을 취하려고 노력한다. 정규시즌(터키리그) 끝나고 바로 한국으로 오면서 다른 선수들보다 못 쉬긴 했다. 리우올림픽 예선전(5월 일본 도쿄)이 끝나고 쉴 시간이 있어서 잠깐 쉬긴 했지만, 당시 근육통이 남아 있어서 천천히 조절했다. 열심히 관리하려 하는데, 운동량이 그걸 넘어선 것 같다.(웃음)”


-적절하게 스트레스를 풀어줘야 하지 않나.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 훈련할 때도 음악은 틀어 놓는다. 스트레스 해소할 시간이 따로 없다. 잠깐 쉬고, 휴대전화 보고, 통화하면 잘 시간이다. 이게 반복된다. 지루한 패턴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 생활이 화려해 보인다고 하는데, 정작 우리는 같은 패턴을 반복해 지루하다.”

나는 6년 전인 2010년, 도쿄에서 열린 세계여자배구선수권 때 김연경과 통성명을 했다. 첫 만남부터 기자와 취재원의 그런 딱딱한 관계는 아니었다. 말이 잘 통했다. 그렇게 편한 선수를 만나 본적이 없을 정도로 살가웠던 기억이 오롯하다. 김연경은 당시에도 한국여자배구의 중심이었다. 경기장소인 요요기체육관 근처에는 “연경상 파이팅”이라는 구호가 자주 들렸다. 대부분이 일본 팬이었다. 경기 후엔 꼭 사인 요청이 이어졌다. 일본프로배구 JT마블러스 소속이던 김연경의 인기 정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김연경 덕분에 한국배구의 이미지도 좋았다. 당시 인터뷰 내용 중 하나가 애국심이었다. “태극마크란 어떤 의미인가”라고 묻자 “태극마크는 언제나 자긍심이고 책임감이다”고 했다. 6년 만에 만난 그에게 다시 물었다.


-김연경에게 태극마크는 어떤 의미인가.

“태극마크? 처음에는 영광스럽다고 여겼다. 꿈을 이룬 것 아닌가. 지금도 중요한 대회 때마다 소속팀에서 경기를 하면서도 대표팀에서 어떻게 해야 좋아질 지를 계속 생각했다. 팀에서 경기할 때보다 더 신중해지는 것 같다. 성적에 대한 압박도 심해지고. 벅찰 때도 있다. 너무 힘들다는 생각도 들지만, 막상 경기를 하면 즐겁게 한다. 때론 힘들고, 때론 괜찮고를 반복한다. 대표팀에서는 유럽과 다른 스타일의 배구를 한다. 유럽배구(터키)의 훈련강도는 강한 편이 아니다. 개인에게 맡긴다. 솔직히 한국 오면 운동량이라든지 체계적인 시스템이 힘들긴 하다. 2배로 힘들다.”


-대표팀 주장이라서 달라진 건 있나.

“책임감이다. 과거에는 나만 신경 쓰면 되는 역할이었는데, 이제 전반적으로 다 봐야 하는 입장이 됐다.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고 힘들기도 한데, 주어진 역할이니 충실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언니들도 많이 도와주고 있다.”


-주장으로서 후배들을 평가한다면?

“리우올림픽 예선전 이전부터 봤다. 기량이 많이 좋아졌고, 성숙해졌다. 배구는 물론 모든 면에서. 그래서 이번 올림픽이 더 기다려진다. 안 되는 날도 있고, 잘 되는 날도 있지만 경기에서 얼마나 잘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어린 선수들이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얼마나 좋은 기량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올림픽여자배구대표팀 주장 김연경. 진천선수촌|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올림픽여자배구대표팀 주장 김연경. 진천선수촌|김종원 기자 won@donga.com


국제배구연맹(FIVB)은 최근 홈페이지에서 한국여자배구를 다뤘다. FIVB는 한국이 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 일본에 패해 메달 획득에 실패한 것과 관련해 “당시 한국팀은 사냥 본능이 부족했다는 평이 있었다. 아마도 사냥 본능이 부족한 선수가 많다는 의미였던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대회 MVP는 김연경에게 돌아갔다”고 전했다. 이어 “김연경이 올림픽 MVP의 기량을 올해 다시 뽐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국제배구계도 김연경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 진 것도, 메달을 따지 못한 것도, 모두 상처로 남았다. 그 후 4년이 흘렀다. 생채기는 어느 정도 아물었다. 다행스럽게도 리우올림픽의 조편성은 무난하다는 평가다. 한국은 개최국 브라질을 비롯해 러시아, 일본, 아르헨티나, 카메룬과 A조에 속했다. 한국은 8월6일 열리는 개막 경기에서 일본을 만난다. 설욕할 차례다. 전의를 불태운 김연경은 “당연히 이겨야할 상대”라면서 “많은 준비를 했고, 자신감도 충만하다”면서 첫판을 벼르고 있다. 첫 판을 이기고 분위기를 끌고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연경은 누구보다 일본을 잘 안다. 그래서 그를 주목하게 된다.


-리우올림픽 첫 경기 상대가 일본이다. 각오가 남다를 것 같은데.

“좋으면 좋고, 안 좋으면 안 좋을 수도 있는 일정이다. 초반에 일본을 잡으면 상승세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일본전에서 지면 분위기가 떨어질까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최근 일본의 전력은 많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본 특유의 끈질긴 조직배구는 인정해야 한다. 그게 아직 살아있다. 4년 전보다 전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다. 일본은 점수차 벌어져도 끝까지 따라온다. 또 한 가지는 구멍이 없다는 점이다. (포지션마다) 고루고루 어느 정도 평균치는 해내니까. 어느 한 명이 잘하는 게 아니라 팀원들이 다 같이 움직인다. 일본은 ‘누구만 막으면 이긴다’는 게 없다.”


-4년 전과 현재의 김연경을 비교한다면.

“4년 전보다 준비를 더 잘하고 있는 것 같다. 훈련이 힘들긴 하지만, 경험이 있다 보니 잘 준비하고 있다. 동료들도 어려졌고, 그래서 체력적인 면도 좋아졌다. 나는 체력 떨어지는 건 크게 못 느낀다. 나이 들었지만, 아직 팔팔하다고 생각한다. 올림픽 예선 끝나고 한 달 넘게 훈련하고 있는데, 지난달까진 무의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올림픽을 목표로 처음엔 열심히 했는데, 너무 힘들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 ‘이렇게 흘러가다가는 안 좋은 방향으로 가겠구나’ 싶어서 마음을 잡게 됐다. 다시 해보자는 생각에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올림픽 하나만 보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4년 전과 비교해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떤가.

“4년 전엔 예선전 때도 관심이 많이 떨어졌다. 우리도 4년 전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고 (런던에) 갔다. ‘런던이 좋다더라’라는 단순한 생각만 하고 갔다. 정말 마음 비우고 가서 경기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가짐이나 분위기나 완전히 달라졌다. 예선 때와 관심이 또 달라졌다. 지금은 메달 유망종목으로 꼽히기도 한다.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다르다. 부담 없이 갔을 때와 목표의식을 갖고 부담도 안고 가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4년 전 대표팀과 전력 차이는 어떻게 보나.

“난 비슷하다고 본다. 4년 전엔 노련한 면이 있었다면, 지금은 과감하고 자신 있는 공격적인 배구를 하고 있다. 연습하는 걸 보니까 4년 전보다는 더 강해진 것 같다. 김희진, 양효진이 중고참이 돼 팀의 주축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올림픽여자배구대표팀 주장 김연경. 진천선수촌|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올림픽여자배구대표팀 주장 김연경. 진천선수촌|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빠른 움직임과 끈끈한 조직력을 앞세워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메달을 따냈다. 이후 숱하게 도전했지만 아쉽게도 시상대 위에 서지는 못했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2016년, 다시 기회가 왔다. 물론 쉽지 않은 도전이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치른 김연경에게 예상 시나리오를 물었다.


-메달을 딸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메달 가능성만 놓고 보면 쉽지는 않다. 모든 국가가 올림픽만 바라보고 준비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12개국이 나온다. 쉽진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8강만 올라가면 변수는 충분하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8강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나씩 더 올라갈 수 있지 않겠나. 런던올림픽에서 보니깐 8강만 올라가면 변수가 어마어마하더라. 한 경기에 모든 게 결정 나기 때문이다. 이변도 많다. 2012년에 정말 많은 걸 경험했다. 지금 8강에만 잘 들어가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거기서 하다 보면 결승까지 갈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겠나.”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조별리그 2위로는 올라가야 크로스토너먼트 할 때 편해진다. 객관적인 전력을 보면 우리의 랭킹은 조에서 4~5위다. 조 2~3위 하려면 일본, 아르헨티나는 잡아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와 브라질 중 한 팀을 이겨야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다. 4년 전에 브라질 잡았을 때는 (브라질이) 흔들렸던 거다. 현재 부담은 크게 없다. 기대와 관심이 부담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언제 올림픽 무대에 가서 도전해보겠나. 그 생각만으로 힘든 훈련을 버텨내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그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다. 요즘 유행하는 게 공약(公約)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일정한 목표치를 넘을 경우 주인공이 뭔가를 하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래서 부탁했다. 공약 한 가지만 걸어달라고. 그는 혀 밑에 숨겨놓은 듯 조심스럽게 꺼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메달 걸고 춤이라도 출게요. 동료들과 함께요.” 배구 여제의 흥겨운 춤사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김연경은?
생년월일=1988년 2월 26일
출신교=원곡중~한일전산여고
키·몸무게=192cm·73kg
국가대표 데뷔=2004년 아시아청소년여자배구선수권
프로입단=2005년 흥국생명
프로경력=흥국생명(2005~2009)~일본 JT 마블러스(2009~2011)~터키 페네르바체(2011~)

최현길 스포츠 2부 부장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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