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수가 만난 사람] 김태영 “내 스타일대로, 판타지·역사·사회를 담자 생각했어요”

입력 2016-07-27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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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감독은 뇌출혈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그러나 영화를 향한 그의 열정은 거침없다. 7월 어느 날, 서울 행촌동의 빨간 벽돌집 딜쿠샤 앞에서 꽃무늬 셔츠에 선글라스를 쓴, 그리고 볼펜을 쥔 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여전히 멋스럽다. 사진제공|이다영 사진작가

김태영 감독은 뇌출혈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그러나 영화를 향한 그의 열정은 거침없다. 7월 어느 날, 서울 행촌동의 빨간 벽돌집 딜쿠샤 앞에서 꽃무늬 셔츠에 선글라스를 쓴, 그리고 볼펜을 쥔 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여전히 멋스럽다. 사진제공|이다영 사진작가

■ 판타지 픽션 다큐 ‘딜쿠샤’ 감독

한국영화가 아직 제대로 시도하지 않은 뮤지컬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2002년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의 흥행 실패 이후에도 꿈과 열정은 다시 피어났다. 주연배우 안성기의 멋들어진 노래 솜씨가 일품인 ‘미스터 레이디’는 이듬해 그렇게 태어나는 듯했다. 하지만 제작사 인디컴의 대표 김태영(58) 감독은 제작비를 끝내 채우지 못했고, 과도한 스트레스는 뇌출혈을 일으켰다. 사흘 만에 깨어나 몸의 절반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됐지만 여전히 그의 꿈은 영화다. 현재 제작 중인 판타지 다큐멘터리 영화 ‘딜쿠샤’의 마지막 촬영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꿈과 영화와 인생에 관한 인터뷰를 시나리오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1.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딜쿠샤 앞

카메라, 위에서 아래로 서서히 틸트 다운하면 딜쿠샤를 마주한 골목 앞에 키 24m, 둘레 6m80cm의 420년 된 은행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서 있다. 조선시대 명장 도원수 권율의 집터. 그 앞에 앉은 이들. 오디션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영화 감독으로도 낯익은 중식이밴드의 리더 중식이(정중식)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다. 제법 운치 있다. 그 옆으로 앉은 억순이(김정옥)와 김태영 감독. 김태영 감독의 몸짓은 어딘가 어색하다. 13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뒤 몸 오른쪽을 쓰지 못하게 된, 3급 장애인이다.

억순이: (중식이를 가리키며)어떻게 오신 거에요?

김태영 감독(김 감독): 오늘 이사 가시잖아요. 새 출발 축하하러 왔어요. 대철(신중현의 아들)이가 소개시켜줬어요. 대철이는 나와 1988년 영화 ‘황무지’로 만나서 지금까지 친구처럼 지내지. 중식이와 셋이 술 한 잔하다 단돈 10만원에 캐스팅했어. 하하! 억순씨는 이사 가고 난 마지막 촬영에 그걸 담고 있는데, 참 시원섭섭하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억순이: 호호! 그러게요. 근데 이런 얘기가 뭐, 영화가 되나요?

김 감독: 그럼요. 나와 내 이웃의 이야기이니까. 내가 ‘58년 개띠’잖아요. 낼 모레면 60인데, 이거 안 찍고 죽기에는 너무 억울할 것 같아요.

억순이: 3년 4개월 걸렸네. 딱!

김 감독: 그렇죠. 2013년에 시작했으니. 55살이었나? 그나마 조금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 60이 되기 전에 인생 전반전을 정리해야겠다, 그랬죠.


●2. 2003년 10월6일, 서울의 한 병원 중환자실

뮤지컬 영화 ‘미스터 레이디’를 60%가량 촬영해놓고 제작비에 허덕이다 끝내 쓰러진 김 감독. 사흘째 침상에 누워 있다. 혈압과 심박수 등을 가리키는 그래프의 끊길 듯 이어지는 파동의 소리가 정적을 채운다. 담당의사와 김 감독의 사촌이 지켜보고 있다.

의사: 참, 이상하네. 저 정도 수치면 이미 간 사람인데….

사촌: (놀라며)예?

의사: 정말 의지가 강한 게 아니라 독한 분이네.

순간, 김 감독의 손가락이 까딱인다. 서서히 깨어나지만 오른쪽은 움직일 수가 없다. 흘러내린 눈물이 베갯잇을 적신다.


●3. 딜쿠샤 앞

억순의 소박한 살림살이를 실은 이사 트럭이 서서히 골목을 빠져나간다. 카메라, 인물들을 향해 팬하면.

억순이: 그럼 이건 짠한 휴먼 다큐멘터리겠네.

김 감독: 그건 후배들이 너무 잘 만들어요. 대신 난 몽상하길 좋아하는데, 내 스타일대로, 판타지와 역사 그리고 사회를 담자 생각했어요. 판타지가 없으면 살아갈 힘과 의미가 없을 거야. 다큐멘터리와 판타지 그리고 드라마까지 접목하는, 짬뽕 영화에요.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김한성 촬영감독의 옷은 땀으로 젖었다. 햇볕이 따갑다. 그 언젠가 쿠바 아바나의 강렬했던 햇볕처럼.


●4.(회상) 1993년 12월 호세마르티 공항(쿠바 아바나)

김 감독과 5명의 스태프가 상기된 듯, 초조한 듯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쿠바 외교관 호세가 나타난다. 일행, 안도의 표정으로 서로를 웃음으로 돌아본다.

호세: 저…, 감독님! 죄송하지만 돌아가셔야겠습니다. 취재 허가가 완전히 나지 않았어요.

김 감독: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흥분하며)뭐요? 왜요! 돌아가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아니 쿠바 현지 취재하려고 9개월을 돌고 돌아 간신히 허가 받아 왔는데. 나, 1년 전에 아직 수교도 안 된 베트남 들어가서 험난하게 다큐 찍은 놈이야!

호세: 아시잖아요. 저희와 북한의 관계를.

김 감독: (단호하게)절대 못 돌아가! 아니면 내 당신들 정부와 국제기구에 정식으로 알리고 항의하겠어!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어! 어디 누가 이기나 해봅시다.

이내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그 굉음 뒤로 전화통화 신호음에 이어 호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호세: 1년 전엔 죄송했어요. 그렇다고 피델 카스트로 동지(전 국가평의회 의장)에게까지 항의편지를 보내시면 어떡합니까! 하하, 참! 이제 오셔도 됩니다. 단, 20일 뿐이에요. 그리고 현장취재에는 저희 요원이 동행할 수밖에 없으니 이해해주세요.

영화 ‘딜쿠샤’는 우리 이웃들이 희망의 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메시지를 담았다. 김태영 감독(왼쪽에서 세 번째)이 김정옥 한초원 진혜경 김만식 나종천(왼쪽부터)과 함께 만든 이야기는 스토리펀딩을 통해 곧 관객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사진제공|인디컴

영화 ‘딜쿠샤’는 우리 이웃들이 희망의 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메시지를 담았다. 김태영 감독(왼쪽에서 세 번째)이 김정옥 한초원 진혜경 김만식 나종천(왼쪽부터)과 함께 만든 이야기는 스토리펀딩을 통해 곧 관객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사진제공|인디컴



●5. 딜쿠샤 앞

지팡이를 잡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 김 감독. 이사트럭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눈에 만감이 교차한다. 3년 4개월 동안 자신을 도와준 이들을 떠올린다. ‘미스터 레이디’에 출연한 인연으로 제작비 1000만원과 노래하는 영상으로 후원해준 배우 안성기,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의 영상 사용을 허락해준 장동건, 제작비 일부를 흔쾌히 건넨 청어람 대표인 제1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최용배 집행위원장, 가톨릭문화원의 사제들….


●6.(회상) 2015년 5월 초, 서울 마포구 용강동 한 고시촌

고시촌 주인이 카메라를 향해 눈을 치켜뜨고 있다. 김 감독,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은 표정. 하지만 이내 슬쩍 웃음기를 머물며.

김 감독: 보증금 500만원 아직 남아 있잖아요. 사장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죄송해요. 허허! 8월 말이나, 9월 말쯤 밀린 월세 다 갚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예?

주인: 참, 나! 그게 지금 말이 되요? 아니 5개월치나 세가 밀렸는데…, 돈은 어디서 나요?

김 감독: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고, 꼭 생기더라고. 그러니 저만 믿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내 약속 안 지킨 적 있어요?


●7. 딜쿠샤 앞

다시 은행나무 그늘에 앉은 김 감독. 그 옆으로 살며시 자리하는 억순이와 중식이. 김 감독은 흐뭇한 듯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눈에는 짧은 물기가 젖는다.

억순이: 노래하면서 우나? 왜 그래?

김 감독: 절대 울지 말자 다짐했는데, 어휴∼!. 이래 뵈도 눈물 많은 남자에요. 그래서 눈물샘이 망가졌는지는 몰라도.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억순이: 나이 들면 눈물이 많은 법이지.

김 감독: 그런가? 내 어머니가 몇 분인지 아세요? 하하! 공식적으로는 다섯 분이야. 서울대 나온 인텔리 아버지에. 하하! 난 이 어머니, 저 어머니 밑에서 자랐어요. 그래 눈물이 가득 고였을지도 몰라! 하하! 근데, 눈물 많은 남자가 예술 하기 딱 좋아. 안으로 삼키지 않고 해소하는 거니까.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잖아요.

억순이: 참, 나! 영화, 그깟 게 뭐라고….

김 감독: 영화? 꿈이죠. 내게도, 관객에게도.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그리고 내게 가장 맞는 예술이야. 관객에게는 행복한 판타지의 시간을 선사하는 거고요. 저는요, 아주 늙어서도 영화 제작자로 남고 싶어요. 하하.

억순이: 그래도 남자가 눈물이 많으면 지질해 보여. 안돼. 호호호!

김 감독: 지질이지만, 가능한 그리 보이지 않으려고 폼 잡잖아요.

억순이: 그러고 보니 오늘, 감독님 의상이 톡톡 튀네.

김 감독: (꽃무늬가 들어간 자신의 흰 셔츠를 가리키며)깨끗하잖아요. 오늘 묵은 때 다 빼고 왔거든. 마지막 촬영이잖아요. 이제 다시 시작해야죠.

중식은 다시 기타를 잡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듯 마는 듯 노래한다. “내가 사는 이유다/일어나라/…/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일어나 아직 갈 길이 멀다.”(중식이밴드 ‘쉴 수가 없다’) 세 사람의 풍경이 발랄하다. -끝-




● 딜쿠샤와 영화 ‘딜쿠샤’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26조 및 시행령 제32조 2항에 따라 지정된 특정관리대상시설(재난위험시설).”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의 높다란 골목길을 오르면 나타나는 빨간 벽돌집. 딜쿠샤(사진)다. 2015년 당국의 정밀안전진단에서 최하위인 D등급을 받은 이 곳은 “소중한 국유재산”이다. 1923년 AP통신 특파원이었던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은 양옥집이다. 그는 1919년 3·1운동 독립선언서,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해외에 처음으로 알린 기자. 일제에 의해 감옥에 갇힌 뒤 1942년 이 땅에서 쫓겨나기까지 앨버트와 그 부인은 이 곳에 살면서 힌두어로 ‘기쁨과 이상향 그리고 희망의 궁전’의 의미를 지닌 인도의 궁전 이름을 따왔다. 현재 12가구가 살고 있지만 2020년 복원을 위해 하나둘 집을 비우고 있다.

그 가운데 파출부로 살아가면서도 노래의 꿈을 잃지 않는 트로트 가수 김정옥(억순이)씨와 그 아들이 살았다. 모자는 영화 ‘딜쿠샤’의 마지막 촬영일이었던 20일 이 곳을 떠났다. 영화는 김씨와 함께 1970년대 인기 밴드 영사운드의 드러머 김만식, 기러기 아빠 나종천,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연극연출가 기홍주 씨의 이야기도 담아낸다. 제작자이자 연출자인 김태영 감독은 자신이 그동안 펼쳐온 험난했던 인생사와 영화 이야기를 재연 드라마로 엮어내며 직접 출연한다. 3급 장애인인 그는 그렇게 자신과 이웃이 꿈꾸는 이상향과 기쁨을 찾아 나선다.

이미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고, 제7회 DMZ 국제다큐영화제에서도 공식 상영됐다. 그리고 현재 작업 중인 영화는 다시 보완과 수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본이 되어 9월 관객을 만난다. 그 비용을 마련하기 마련하기 위해 현재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스토리펀딩 중이다.


● 김태영 감독은?


PROFILE
1958년 ‘개띠’ 태생.1983년 서울예대 방송연예과 졸업. 1986년 서울예대 영화과 졸업. 1984∼1987년 MBC 드라마 FD 재직. 1987∼1992년 프리랜서 연출(삼화프로덕션, 다큐서울 등). 1988년 ‘칸트씨의 발표회’, 한국 단편영화 첫 베를린 국제영화제 초청. 1988년 영화 ‘황무지’ 제작 및 연출, 상영금지 당함. 1993년∼ 인디컴 대표. 2002년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제작. 2003년 영화 ‘미스터 레이디’ 제작 중단. 2013년∼ 판타지 픽션 다큐 ‘딜쿠샤’ 연출 및 제작.


수상 경력
1993년 ‘베트남전쟁, 그후 17년’ 한국방송대상 우수작품상. 1994년 ‘카리브해의 고도, 쿠바’ 한국방송대상 우수작품상. 1996년 ‘세계영화기행’ 한국방송대상 우수작품상 등 다수.

엔터테인먼트부 부장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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