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훈 감독.
우연히 마주친 그와 가벼운 수다를 떨었다. 길가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나누며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해는 저물었다. 그리고는 “준비하는 영화 잘 되길 바란다”는 말로 인사를 전하고 헤어졌다.
하지만 오 감독의 신작 소식은 쉽게 들려오지 않았다. 최근인 8월 그동안 연출을 위해 힘써온 중국 프로젝트에서 빠지게 됐다는 보도만 접했다.
많은 감독과 작가와 제작자가 한 편의 영화를 관객 앞에 내놓기까지에는 숱한 노력과 땀을 흘려야 한다. 때로는 이야기가 재미없어서, 또 때로는 제작비 투자 등 요인으로 기획 단계에서, 제작 단계에서, 그도 아니면 그 어떤 단계에서 좌절하곤 한다.
오상훈 감독이 11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불과 49세의 나이다. 아직 그 윗세대 감독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충무로를, 그는 그 나이에 불현듯 세상과 이별하고 말았다.
오상훈 감독은 2001년 ‘위대한 유산’으로 장편영화 연출에 데뷔했다. ‘파송송 계란탁’을 이으며 한국 코미디영화의 새로운 재능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김선아와 임창정이 주연한 ‘위대한 유산’과 역시 임창정이 전면에 나선 ‘파송송 계란탁’은 지질한 인생이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것임을 웃음과 눈물로 전했다.
자신이 연출한 영화처럼 생전 오 감독 역시 유쾌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촬영현장에서는 누구보다도 일에 집중하며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던, 천생 감독이었다.
제작비 100억원 규모의 대작 영화가 이제는 흔해진 시대, 오로지 자본과 흥행만을 맹목적으로 좇는 대중문화계의 세태, 그 속에서 오상훈 감독은 어떤 영화를 꿈꿨던 것일까.
부디 하늘나라에서 못 다 이룬 영화의 꿈을 이루길 바란다.
스포츠동아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