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은 손’에 통제된 과거의 풍자

입력 2016-11-08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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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시국 풍자한 ‘잘돼갑니다’
제작 20여년 흐른 1988년에 개봉
정치적 민감한 이슈 외압 시달려

“잘돼갑니다.”

1950년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귀와 눈을 막은 참모들이 내뱉은 거짓말은 영화의 제목이 된 말이다. 1967년 박노식, 김지미 등이 주연한 영화는 이승만 치하의 시국 상황을 제목처럼 풍자했다.

이미 현실은 오랜 시간 그 부조리로서 풍자를 허락하고 싶었다. 당대의 대중 정서와 세태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대중문화의 속성으로 풍자와 해학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막은 것, 바로 정치권력이었거나 이를 의심케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영화 ‘잘돼갑니다’는 이미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지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제작됐지만 오랜 세월 극장에 간판을 내걸지 못했다. 당국의 숱한 수정 지시 끝에서도 1968년 상영 부적합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1988년 개봉했다.

그렇듯 엄혹한 시절의 풍자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1980년대 초중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김병조가 남긴 “지구를 떠나거라”라는 유행어가 그나마 모호한 비판의 풍자로 그 흔적을 이어갔다. 하지만 ‘금지의 시대’는 오래도록 지속됐다. 심지어 대통령을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방송에 출연할 수 없기도 했다. 있는 그대로 사실도 제대로 담아낼 수 없었다. 풍자는 사라졌고, 해학은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1987년 6월 항쟁과 이후 민주화의 열기는 대중문화에도 숨통을 틔워줬다. KBS 2TV ‘유머1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서 맹목적인 아부로 일관하는 참모와 탐욕스런 리더의 모습을 비춘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또 대통령의 목소리를 성대모사하며 세태를 풍자하는 최병서 등 개그맨들도 빛을 발했다. “날 코미디의 소재로 삼아도 좋다”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발언은 풍자 금지의 시대에 대한 또 다른 역설이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풍자는 다시 넘쳐났다. 각종 방송 코미디프로그램이 그 주 무대였다. 하지만 그 역시 자유롭지는 못했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한 풍자는 늘 외압과 의혹에 시달렸다. KBS 2TV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이 대표적이다. 개그맨 유민상이 진행하는 토론프로그램을 소재로 한 풍자 개그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시청자는 그 ‘보이지 않는 손’을 의심했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당시 정부의 미숙한 대응을 풍자했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은 MBC ‘무한도전’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사례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만큼 빈번했다. 현재 쏟아지는 수많은 풍자의 콘텐츠는 ‘닫힌 풍자와 그 적들’에 관한 의심과 불신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풍자는 고스란히 현실이 되어 버렸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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