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사표 냈는데 수리도 반려도 아닌 이상한 배구협회

입력 2016-11-0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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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배구협회 서병문 회장. 스포츠동아DB

대한배구협회(이하 협회) 김찬호 부회장이 사표를 냈다. 통상적으로 사표를 내면 바로 수리를 하든지 아니면 반려를 하는 것이 상식적 조직의 처신일 것이다. 그런데 협회는 “김 부회장의 ‘송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한다.

협회 서병문 회장은 7일 “(김 부회장이) 곧 법적 조치를 할 것이다. 그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고 (사표 수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아들을 둘러싼 의혹(부정입학, 횡령 등) 보도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해왔는데, 해당언론사에 형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서 회장은 “그만두더라도, 명예롭게 그만두게 해야 하지 않겠나. 여론의 마녀사냥으로 한 사람이 매장당하는 현실을, 회장으로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현재 업무를 보지 않는 상태다. 서 회장은 “민사가 아닌 형사소송이라 길어야 1~2달이면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 공백은 없다”고도 했다.

소송은 김 부회장과 해당언론사가 시비를 가리면 될 일이니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김 부회장 아들이 걸린 개인사 탓에 배구협회 실질적 2인자인 실무부회장 자리가 기약 없이 비어 있어도 되느냐는 것이다. 서 회장은 “(김 부회장 공백기) 협회 행정을 직접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김 부회장이 도대체 얼마나 각별하기에 서 회장이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기다릴게, 재판 잘하고 돌아오라’는 특혜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김 부회장이 소송을 결행하는 순간, 부회장 업무에 집중하긴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부회장직에서 내려오면 마치 의혹을 인정하고, 떠밀려 내려오는 모양새로 비쳐졌을 것이다. 이 또한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안의 성격상, 김 부회장 아들 일은 배구협회의 명예가 걸린 일이라고 판단했을 여지도 있다.

그러나 배구협회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김 부회장의 형사소송으로 일이 진행될 판이다. 10월10일 협회 차원에서 명예훼손 법적 대응을 예고한 것과 다른 행보다. 이래놓고 사표를 수리도 반려도 하지 않으니, 협회가 있고 김 부회장이 있는 것인지, 김 부회장을 위해서 협회가 있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서 회장은 “(험담을 다 들어주면) 배구계에 쓸 사람이 한명도 없다”고 김 부회장을 두둔했다. 그런 너그러운 눈길을 협회 바깥으로도 보낼 때, ‘고립’에서 벗어날 길이 열릴 것이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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