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를 만나다 ①] 황교진 PD “‘라스’ 장수비결은 무심함+변두리 감성”

입력 2016-11-29 10:1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PD를 만나다 ①] 황교진 PD “‘라스’ 장수비결은 무심함 때문”

예능 프로그램도 가끔 사람처럼 인생역전을 한다. 한때 기차와 대결을 하던 ‘무모한 도전’이 국민 예능 ‘무한도전’이 된 것처럼 MBC ‘라디오스타’ 역시 과거의 초라했던 시절을 넘어 현재 방송가의 유일한 정통 토크쇼로 영광의 시절을 구가하고 있다.

이런 ‘라스’ 전성기의 중심에 황교진 PD가 있다. 그는 지난 1년 간 ‘라스’가 자랑해 온 B급 감성을 지켜내면서 이를 세련되게 풀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

“지난 10년 동안 ‘라스’도 꾸준히 변화를 시도해 왔어요. 한때는 노래방 세트를 만들기도 했고 고민을 듣고 해법을 제시하는 코너도 있었죠, 그렇게 계속 변화해 오면서 우리 MC들의 능력이 가장 잘 발휘되는 분야가 토크라는 걸 깨달았죠. 그 덕에 ‘라스’는 토크가 강점인 프로그램으로 남을 수 있었어요.”

황 PD의 말처럼 ‘라스’는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면서도 늘 수요일 밤 시청자들의 곁을 지켜왔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지만 ‘라스’는 여전히 독특한 게스트 조합과 기발한 CG(컴퓨터 그래픽)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게스트조차도 놀라는 정보수집 능력도 여전하다.

“우선 게스트 조합은 ‘이런 사람들이 나오면 재미있을 것 같다’, ‘우리 MC들과 만나면 이런 시너지가 날 것 같다’는 예상을 통해서 짜요. 게스트에 대한 정보 수집은 매니저부터 예능 작가에 이르기까지 온갖 인맥을 동원해서 알아내고요. 최근에는 게스트들을 목격한 일반 시청자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데 여기서도 괜찮은 정보가 굉장히 많이 나와요.”

이처럼 정성 들여 만든 한 회이건만 시청자들을 매회 만족시키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스’가 소위 ‘유명 게스트’나 ‘인기 MC’에만 의존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사랑하는 ‘변두리 감성’ 때문이다.

“어느 프로그램이나 그들만의 색깔이라는 것이 있어요. ‘라스’의 색깔을 굳이 말하자면 ‘우리가 변두리를 사랑한다’는 것이죠. 저희는 늘 게스트에 대해 널리 알려진 정보보다 다른 정보를 찾으려고 하고 이미 알려진 분들보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숨은 매력이 있는 분을 만나보려고 해요. MC들이 ‘라스’의 네 번째 의자에 앉은 분들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사진제공│MBC


‘라스’의 이런 ‘변두리 감성’으로 만들어진 게스트 조합은 시청률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방송가 현실에서는 일종의 도박과도 같다. 하지만 황 PD는 “그래도 ‘라스’에 나온 분들이 ‘이제 조금 형편이 나아졌다’, ‘일할 맛이 난다’고 할 때는 진심으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라스’ 체질상 진지해지는 건 피하려고 해요. 프로그램에 출연해 준 게스트들을 위해 ‘뭔가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죠. 그렇게 되면 MC들이나 게스트들도 정말 힘들어 할 거예요. 다만 녹화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는 충분히 해놓되 방송 후에 나온 결과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이 같은 황 PD의 의도는 ‘라스’를 통해서 충분히 드러난다. 다른 프로그램이라면 온갖 게스트를 불러 자축했을 500회를 그저 그렇게 지나간 것만 봐도 ‘라스’는 분명 훗날 찾아올 1000회에도 이런 식일 것이다.

“윤종신 씨가 한번은 ‘무심함이 라스의 미덕’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전 그 말에 굉장히 공감했어요. 그런 무심함 덕에 지난 10년 동안 큰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었고 좋은 일이 있어도 크게 티내지 않으면서 한 주 한 주 버텨온 거죠. 시청자 분들도 무심하게 이번 주 저희 방송을 보고 웃으셨다면 다음 주에도 ‘라스’를 시청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