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그들을 말한다] (6) KIA 박흥식 코치, 이승엽부터 서건창까지

입력 2016-12-21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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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박흥식 타격코치는 “난 노력형 선수가 아니었다. 그 경험이 오히려 지도자 생활에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그는 ‘국민타자’ 이승엽과 인간승리의 아이콘 서건창 등 유명타자들을 길러낸 지도자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KIA 박흥식(54) 타격코치는 유명타자들을 길러낸 코치로 유명하다. ‘국민타자’ 이승엽을 필두로 홈런왕 박병호, 인간승리의 아이콘 서건창 등을 스타플레이어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현역 시절 스스로를 “노력형 선수가 아니었다”고 말한 그는 코치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 미국 이민과 2차례 귀국

경북 칠곡 출신인 박 코치는 대구초, 대구중을 거치며 대구에서 야구를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서울로 진학했다. 가족이 미국 이민을 결정했고, 그 사이 신일고 한동화 감독이 대구까지 내려와 부모님에게 “아들을 맡겨달라”고 설득했다.

박 코치는 잘 치고 잘 던지는, 재능 있는 선수였다. 고교 2학년 때는 전국체전 서울예선 결승전에서 선린상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고교 때부터 대표팀 단골멤버였고, 대학교 4학년이던 1984년엔 야구가 시범종목으로 도입된 LA올림픽까지 나섰다.

1985년 MBC 입단 후엔 아마추어 시절 받았던 기대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했다. 박 코치는 “난 노력형이 아니었다. 지도자를 해보니 자질은 있는데 게으르거나 열정이 없는 선수들이 많이 보였다. 내가 그랬으니, 오히려 지도자 생활에 도움이 됐다. 선수들에게 스스럼없이 내 옛날 얘기를 한다. 그렇게 해선 오래 못한다고”라며 선수 시절을 돌이켜봤다.

박 코치는 1989시즌 이후 ‘1차’ 은퇴를 선언하고, 가족이 있는 미국 시애틀로 향했다. 형이 운영하던 세탁소에서 일하며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나 싶었다. 그러나 이듬해 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MBC가 LG로 간판이 바뀌면서 새로 부임한 백인천 감독의 ‘복귀 제안’이었다.

그는 “백인천 감독님이 날 2번 불러주셨다. 1990년 선수 복귀, 그리고 1996년 지도자 생활 시작 모두 백 감독님의 전화로 시작됐다”고 밝혔다. 모든 걸 접고 떠났지만, 평생 해온 야구가 다시 눈에 밟혔다. 그렇게 가족을 두고 홀로 귀국한 박 코치는 LG 유니폼을 입고 1993년까지 선수생활을 한다. 중도 합류한 1990년에는 우승전력이 아니었지만, 창단 첫 우승의 기쁨까지 누렸다.

박 코치는 은퇴 후 다시 미국으로 갔다. 시애틀의 세탁소 주인으로 제2의 삶을 보내던 와중에 손님으로 온 시애틀 매리너스의 루 피넬라 감독을 만났다. 야구를 했었다는 박 코치의 말에 지도자 연수라는 소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1996년, 애리조나 캠프에서 삼성 사령탑이 돼 만난 백 감독에게 2군 코치 제안을 받고 2번째 귀국을 결심했다.

삼성 이승엽-넥센 서건창(오른쪽). 스포츠동아DB



● 명 코치 박흥식, 이승엽에서 서건창까지

삼성에서 ‘이승엽의 스승’으로 알려졌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당시 2군에서 함께 고생하고 1군으로 올라온 다른 동료들이었다. 1996년 백인천 감독은 세대교체를 단행하기 위해 박 코치에게 좋은 선수를 추천해달라고 말한다. 그때 박 코치는 김한수, 정경배, 신동주, 최익성 등을 추천했고, 백 감독은 “아예 다 데리고 올라와”라고 지시했다.

당시 박 코치가 데려온 선수들은 이후 삼성의 새 바람을 일으키며 주축으로 자리했다. 박 코치는 “(이)승엽이는 워낙 재능이 뛰어난 선수였다. 함께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잘됐으면 했는데 다들 잘해줬다. 지금도 그때 고생한 선수들이 참 많이 생각난다”며 미소 지었다.

박 코치에게 또 한 명의 잊을 수 없는 선수는 넥센 서건창이다. 2008시즌 KIA 코치를 끝으로 다시 미국으로 향했던 그는 2010년 말 넥센 2군 타격코치로 부임하며 2년간의 짧은 휴식을 마쳤다. 2011년 넥센 2군 감독이 됐고, 그해 연습생 공개테스트에서 서건창을 처음 만났다.

지금도 당시 장면이 생생하다. 박 코치는 “방출되거나 야구를 관뒀던 선수들이 모였는데 산만하고 집중을 못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그런데 (서)건창이는 달랐다. 눈이 마주쳤는데 유일하게 날 뚫어져라 보고 있더라. 눈빛이 살아있었다. 그래서 이 선수라도 꼭 뽑자고 말했다”고 말했다.

넥센은 정말로 서건창 1명만 신고선수로 뽑았다. 그해 마무리훈련을 가기 전, 박 코치는 1군 타격코치로 승격했고 다시 한 번 서건창을 추천했다. 그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딱 27명만 데리고 가기로 했는데 건창이를 무조건 넣자고 감독님께 건의했다. 계속 안 된다고 하다가 결국 유재신을 빼고 넣었다. 그런데 건창이가 마무리캠프 연습경기에서 4할대 타율로 펄펄 날았다. 이듬해 대박이 났다”는 비화를 밝혔다.

서건창은 LG에서 1경기 만에 방출되고,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넥센 입단 1년 만에 신인왕을 타며 ‘인간 승리의 아이콘’이 됐다. 지금도 서건창은 박 코치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KIA 박흥식 코치(오른쪽).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KIA 리빌딩 성공, 제2의 서건창은?

박 코치는 삼성 코치 시절 선수와 코치로 만났던 김기태 감독의 제안을 받고, 지난해부터 KIA 타격코치로 활약 중이다. 그는 “삼성에서 잠시 만난 것 외에 별다른 인연은 없었는데 제안을 해줘 흔쾌히 승낙했다. 김 감독과는 타격 이론이 거의 일치한다. 감독도 믿음을 갖고 맡기고, 나도 눈치 안 보고 자신 있게 지도한다. 그런 게 맞아 들어가니 결과가 좋은 것 같다”고 강조했다.

사실 지난해 KIA에 함께 부임했을 때만 해도 김 감독과 박 코치 모두 ‘암담’했다. 안치홍과 김선빈의 동반 입대, 김주찬 이범호 등 고참의 잦은 부상. 머리가 아팠지만 함께 뜻을 모았다. ‘이대론 안 된다’는 문제의식 아래 웨이트트레이닝 시간을 늘리는 등 하체강화와 부상방지를 위해 애썼다. 동시에 유망주들의 잠재력을 터뜨리기 위한 노력이 지속됐다.

그 결과 2015년 팀 타율 꼴찌(0.251)였던 KIA는 올 시즌 팀 타율 상승(0.286)에 팀 홈런 3위(170개) 등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5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해 5년 만에 가을야구를 맛봤고, 2차전까지 명승부를 연출하기도 했다.

박 코치가 KIA에서 가장 놀란 선수는 외야수 노수광이다. 올해 급성장한 노수광을 두고, 박 코치는 서건창을 떠올렸다. 그는 “솔직히 큰 기대를 안했는데 원체 열심이다. 근성도 있고, 무엇보다 절실함이 있다. 이건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질문도 제일 많이 하고 열성적이다. 건창이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밝혔다.


● KIA 박흥식 타격코치


▲생년월일=1962년 1월 5일

▲출신교=대구초∼대구중∼신일고∼한양대

▲프로 경력=MBC(1985∼1989년)∼LG(1990∼1993년)

▲통산 성적=660경기 타율 0.256(2024타수 519안타) 12홈런 189타점 252득점

▲지도자 경력=삼성 코치(1996∼2007년)∼KIA 코치(2008년)∼넥센 코치(2011∼2012년)∼롯데 코치(2013∼2014년)∼KIA 코치(2015년∼현재)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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