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마을①] 봉황산엔 어머니가 산다…자식들의 그리움에 묻혀

입력 2016-12-27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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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바위는 멀리서 보면 언뜻 사람의 눈, 코, 입처럼 보여 바위의 이름이 붙여졌다. 예부터 주민 사람들은 바위를 바라보며 일상의 믿음을 가졌고, 마음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고흥(전남)|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0 봉황산 어머니바위 설화 <끝>

세밀한 생활사와 풍속사 혹은 세상의 어긋난 도리에 대한 풍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동안 윤색과 와전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이야기를 낳은 공간에서 나고 자란 어르신들의 입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다. 콘텐츠로서 다양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 본래의 설화를 들여다보는 까닭이다. 넘쳐나는 대신 그만큼 사라져가는 진정한 스토리텔링 콘텐츠로서 설화의 가치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전남 고흥군은 땅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반도의 토양 위에서 먼 옛날부터 이야기가 풍성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류몽인이 이 곳에서 ‘어우야담’을 쓸 수 있었던 한 배경이기도 하다. 스포츠동아는 2월23일부터 고흥의 설화를 소개해왔다. 고흥의 섬 소록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했다. 11개월 동안 연재한 ‘이야기가 있는 마을’을 마무리한다. 고흥의 설화가 독자 여러분의 마음을 따뜻이 적셨기를 바란다.


봉황새가 날아와 살았다는 봉황산
빽빽했던 소나무, 일제 수탈로 상처
산 정상에 중앙이 깊이 팬 여근바위
어머니의 투신, 가슴 아픈 사연 품어

봉황은 상상의 새다.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전설에서 탄생한 봉황은 때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지역을 상징하는 지명으로도 쓰인다. 고흥군에도 그 이름을 딴 봉황산이 있다. 군 소재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우뚝 솟은 산은 마치 일대 마을을 품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마음을 먹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을 만큼 경사가 완만해 봉황산은 실제로 주민들이 자주 찾는 산책 코스로 꼽힌다. 그만큼 친근한 곳이자 일상과 함께 하는 산이다.


● 봉황 설화…봉황산이 명산이 된 이유

봉황산은 고흥읍 남계리 봉동마을 일대에 자리 잡고 있다. 신상태(61) 마을이장은 “옛날부터 고흥에 군자(君子)가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봉황산이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봉황이 날아와 살았다는 설화도 내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봉황은 몸에서 오색의 빛을 낸다고 알려져 있다. 세상에 바른 일이 많으면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런 봉황과 고흥이 어울려 맞물리게 된 시기가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다. 봉동마을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도 알 길이 없다. 다만 신 이장은 “그만큼 고흥이 살기 좋은 곳이었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봉황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그 기운이 남달랐던 산은 과거 울창한 소나무 숲을 자랑했다. 바위도 많아 수려한 경치로 이름을 떨쳐왔다. 바위들은 여전하지만 소나무 숲은 예전만 못하다. 봉황산이 아픈 역사를 거쳐 왔기 때문이다. 봉황산을 빼곡하게 채웠던 소나무들은 1940년대 초반 송탄유를 만드는 데 쓰였다. 일제강점기 수탈이 극심하던 때다. 이제는 그 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일제가 남긴 상처다.


● 정상에 우뚝 선 ‘어머니바위’

봉황산 정상 부근에는 커다란 바위가 서 있다. 높이가 족히 30미터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크기다. 두 개의 거대한 바위덩이가 한 데 붙어있는 듯한 모양도 이색적이다. 봉동마을에서 올려다보면 봉황산과 더불어 어머니바위가 시야를 꽉 채운다.

어머니바위에는 여러 이야기가 얽혀 내려오고 있다. 옛 이름은 여근바위다. 기이하게 생긴 바위의 모습 때문이다. 바위의 중앙이 깊이 팬 모습을 예부터 봐 온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바위를 마주보는 곳에 자리한 신호리에는 과거 마을 여인들의 가출이 잦았다고 한다. 이유를 찾던 사람들은 그 원인이 바위에 있다고 여겼다. 근처에 여자고등학교를 세우려고 할 때 반대 여론에 부딪힌 이유도 바위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는 우려 탓이다. 토속적인 믿음이 많았던 때였다. ‘액운’을 미리 막으려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여근바위에서 어머니바위로 이름이 바뀐 데는 아픈 사연이 있다. 50여년 전 쯤 힘겹게 살아가던 한 여인이 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남은 자식들은 그렇게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바위에 올랐다.

봉동마을 경로당에서 만난 우영심(84) 할머니는 19살에 시집와서 60년 넘도록 어머니바위를 보고 살아왔다고 했다. 바위에 얽힌 설화도, 가슴 아픈 사연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멀리서 봐도 바위 모습이 참 희한하단 말이여. 어찌 보면 눈, 코, 입처럼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달리 보이고. 우리도 어머니바위라고 부르지만 그렇게 된 데는 너무 가슴 아픈 사연이 있어.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으면 몸을 던졌겠어. 정말 마음이 아프제.”

지금껏 봉황산과 어머니바위는 고흥의 사람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해왔다. 봉황산 아래 공터에는 너비가 8미터 정도 되는 사각형 모양의 바위가 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바위틈으로 물도 흐른다. 옛 고흥 사람들은 이 물을 받아 마시면 돌아선 남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다고 얘기해왔다. 임신이 되지 않아 마음 고생하던 부부는 바위 물을 마신 뒤 아이를 갖기도 했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는 고흥 사람들의 믿음이 봉황산을 타고 흐르고 있다.


● TIP 설화란?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담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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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고흥군과 함께하는 이야기가 있는 마을’을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고흥 |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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