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캐피탈 ‘배구연구소’ 캐슬의 모든 것

입력 2017-02-1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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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의 복합 베이스캠프(훈련+재활+생활)인 ‘캐슬’은 2013년 7월 준공된 첨단건물이다. 심플한 디자인에 기능성이 강조된 건축이다. -캐슬의 외관은 중세의 성을 모티브 삼아 건설됐다.(오른쪽) 천안|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현대캐피탈 배구단의 복합 베이스캠프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이하 캐슬)’를 15일 찾았다. ‘언어로 집어내기 어려운데, 무언가 훈련장 같지 않다’는 이질적 느낌을 받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체육관 특유의 치장을 배제하는 ‘단순함의 미학’이 캐슬을 지배하는 분위기라 그런 듯했다. 훈련소가 아니라 ‘배구 연구소’ 같았다.

일례로 체육관에서 흔히 발견되는 정신무장을 강조하는 구호가 전혀 붙어있지 않았다. 건물의 중심을 차지하는 배구장을 둘러싼 벽면에는 최선을 쥐어짜는 주문처럼 기능하는 슬로건이나 과거 이 팀이 이룩한 전통을 과시하는 플래카드를 대신해 대형 모니터가 있을 뿐이었다. “체육관 동서남북 벽면과 공중에 카메라가 설치되어있다. 거기서 촬영한 화면이 10초쯤 뒤, 모니터를 통해 구현된다. 선수들은 스파이크를 연습한 뒤, 바로 모니터를 보고 자기의 폼을 확인할 수 있다.” ‘캐슬’ 가이드를 해준 현대캐피탈 윤웅석 대리의 설명이다. “스파이크 직후, 선수들이 감독 설명은 안 듣고 화면만 본다”고 최태웅 감독은 슬쩍 웃었다.

‘캐슬’은 현대캐피탈 배구단의 모기업인 현대카드 그룹의 정신이 집약된 공간이다. 기능성과 디자인이 일관된 심플함 속에 녹아있음을 직접 가봐야만 체감할 수 있다. 황두진 건축가의 작품인 ‘캐슬’은 배구장을 가운데 두고 그 주변을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어, 공간의 동선이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바닥재 하나를 고를 때도 의미를 두는 디테일은 집요하게 곳곳에 배어있다.

캐슬의 중심에는 배구 코트가 있다. 1층 어느 지점에서도 코트로의 출입이 가능하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오른쪽)이 임동규(왼쪽), 송병일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오른쪽). 천안|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배구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캐슬’ 안에서

보안절차를 거쳐 ‘캐슬’에 들어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프런트 사무실인데 문패부터 독특하다. ‘배구지원팀.’ 신현석 단장의 직함은 ‘배구지원단장’이다. 단장이 프런트 말단직원들과 같은 책상을 쓴다. 원래 배구지원팀 사무실은 단장실이었다. 프런트 사무실은 별도로 있었는데 신 단장 지시로 코치들에게 내줬다. 그리고 단장실에 프런트 직원들이 몽땅 들어오게 됐으니 비좁을 수밖에 없다.

그 덕분에 코치, 전력분석팀, 트레이닝 파트는 넓고 쾌적한 공간을 쓰게 됐다. 코치실 맞은편이 감독실이다. 감독실과 코치실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캐슬’의 브레인 기능을 맡는 밀실, 즉 전력분석실이다. 현대캐피탈의 전략, 전술이 이 작은 방에서의 회의를 통해 설계된다. 벽면에는 데이터가 빼곡히 붙어있고, 칠판에는 암호 같은 내용들이 가득 써 있다. 외부인인 기자의 출입은 허락했지만 사진촬영은 할 수 없었다.

총 4층인 ‘캐슬’의 3~4층에 선수단 숙소가 있다. 2층은 웨이트와 재활 시설, 팀 전체 회의실 등이 있다. “현대캐피탈 선수 16명이 쓰기에는 너무 넓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방문팀이 오는 상황까지 고려해 만들었다”고 윤 대리는 말했다. 바닥은 육상 트랙재질이다. 선수들이 실내에서 러닝훈련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동선 상, 막히는 지점이 없는 독특한 구조라 달리기가 가능하다.

‘캐슬’의 하드웨어적 자랑은 재활 기기들이다. “천안에서 서울까지 재활치료를 받으러 간다면 왕복 4시간은 잡아야 한다. 캐슬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구단의 판단 아래, 고가의 기기들이 ‘캐슬’에 도입됐다. 수중치료실이 없었다면 문성민(31)의 재활이 이렇게 완벽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근육 강도를 측정하는 사이벡스는 재활과 웨이트 기능을 겸한다. ‘전 세계 최초의 복합 베이스캠프’로 정체성을 규정하고, ‘캐슬’은 기능하고 있었다.

현대캐피탈 한정훈(왼쪽)이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사이벡스로 하체 근력을 측정하고 있다. -캐슬의 수중치료실은 재활시스템의 정점이다. 정영호가 수중치료실을 이용하고 있다(오른쪽). 천안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캐슬’의 진짜 원천, 소프트웨어 그리고 사람

사실 전력분석을 안 하는 팀은 없다. 그런데 왜 유독 현대캐피탈은 ‘무언가 더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일까. 유의미한 전력분석은 결국 상상력과 집요함의 결합이다. ‘어떤 항목의 데이터를 수집할 것인가’라는 방향설정이 출발점이자 포인트다. “생각이 떠오르면 분석 항목을 추가한다.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기존 데이터는 폐기한다.” 현대캐피탈 진순기 전력분석코치의 얘기다. 지속적으로 변증법적인 변화를 주는 지점이 현대캐피탈 전력분석의 ‘에센스’다.

현대캐피탈 데이터 배구의 기획자이자 지휘자는 최태웅 감독이다. 전력분석을 중시하는 감독들은 적지 않지만 결과만 받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까지 검증하는 면모에서 최 감독은 비범하다. 사실 “1경기 속에서도 다른 점들을 살펴봐야 하니까 같은 경기를 계속 돌려보는” 일은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 수고로울뿐더러 보편타당한 기준을 잡기가 어렵기에 자칫하면 헛수고가 될 리스크가 상존한다. “그래서 코치들의 눈이 내 눈과 똑같아야 한다. 그렇게 확률을 구축한다. 나와 코치들은 복잡한 데이터를 다 외우고 경기에 들어간다. 단 선수들에게는 단순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어쩌면 현대캐피탈 배구는 승패를 초월하는 ‘최적의 답’을 찾는 과정에 방점을 찍는 듯하다. 데이터를 분석해 가설을 세우고 실전에서 검증하는 방식이다. ‘마치 실험을 하는 것 같다’는 말에 최 감독은 웃었다. 긍정의 의미로 해석됐다.

그런 맥락에서 최 감독의 진짜 적은 ‘선입견’이다. “코치들이 아무리 매력적인 자료를 가져다줘도 내가 일단 그 프로세스를 검증한 뒤에야 채택한다. 내 성격 같다. 코치들이 힘들 것이다.(웃음)” 최 감독에게는 증명되어야 의미가 된다. 징크스, 운 같은 것은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엄밀히 말하면 2016~2017시즌 현대캐피탈은 압도적 전력이 아니다. 답이 없을 때도 있었다. 힘든 상황이지만 대응 시나리오를 탐색하고, 새로운 변화를 줄 수 있는 더 없는 기회이기도 하니, 이 또한 즐거움일 수 있다. 최 감독에게 배구는 승리라는 결과만 좇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과정을 찾아가는 ‘보물찾기’인 듯하다.

최 감독은 “코치들과 100%를 공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코치들이 타 팀으로 떠나 기술유출이 발생한다면? “‘더 좋은 조건 있으면 떠나라’고 얘기해준다. 배신자라고 할 일이 아니라 그런 공유를 통해 한국배구가 조금이라도 발전된다면 기꺼이 보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모방하는 경쟁자가 나와야 정체의 틀을 깨고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기본을 제외하면 계속적 변화를 추구하겠다”고 최 감독은 말했다.

최 감독의 지도자 목표는 간결하다. 우승 몇 번이 아닌 “선수들이 ‘배구하기 잘했다’고 느끼는 팀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캐슬’ 입구에 현대카드 그룹의 모토들이 있었다. ‘전략 없는 실행, 실행 없는 전략은 없다.’, ‘스피드는 결승전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유일한 변수다.’,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다양성이 모여 하나 될 때, 탁월한 조직이 완성된다.’ 현대캐피탈 정태영 구단주가 감독을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안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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