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Law Story] 사직구장 ‘아~주라’ 강요죄에 해당할까

입력 2017-05-0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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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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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외침, 폭행·협박으로 볼 수 없어
과유불급…공 주운 사람에 대한 배려도


학교에서 ‘짱’으로 행세하는 속칭 ‘1진’ 학생이 있다. 좀 약해 보이는 친구에게 하기 싫은 일을 대신 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그 약한 친구로부터 무언가 곤란한 부탁을 받는다. 하기 싫은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자 옆에 있는 1진 친구들이 입을 모아 합창한다. ‘해∼줘라!’ 짱은 하기 싫지만, 친구들의 강요 아닌 강요에 못 이겨 곤란한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요즘 인기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헌데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 아닌가? 바로 사직야구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한 장면과 닮아있다.

사직야구장에선 어른이 파울볼을 잡으면 흔히 이런 외침이 들린다. ‘아∼주라!’ 주운 볼을 아이에게 건네주라는 뜻이다. 그러면 볼을 주운 어른은 공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는 애처로운 눈빛의 아이에게 선뜻 공을 넘겨준다. 아이는 번쩍 공을 들어 어른의 어른스러움과 선의(善意)를 확인하고, 관중은 흐뭇하게 박수로 화답한다. 이런 장면은 다른 구장들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사직야구장만의 고유한 관중문화로 외신에 소개되기도 했다. 청주야구장에선 ‘애 줘유∼’라는 변화된 모습으로 전파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주라’라는 외침이 조금 변질되고 있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공을 주지 않으면 주변에서 욕설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아∼주라’가 발단이 돼 주변 사람과 시비가 붙기도 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아∼주라’라는 외침이 나오기 전에 공을 잡자마자 줄행랑을 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경기장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군중심리를 이용해 빼앗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미담은 강요된 것이 아닌 자발적 의지에 따라 이뤄질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다.

‘나는 하기 싫은데 다른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억지로 한다.’ ‘아∼주라’라는 외침 때문에 아이에게 공을 건넨 어른의 마음이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형법에도 이와 유사한 규정이 있다. 사람들에게 스스로 의사를 결정하게 하고 그 의사에 따라 행동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규정된 죄인데, 바로 형법 제324조에 규정된 강요죄다.

강요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에 성립한다. 공을 주운 사람이 어린 아이에게 공을 건넬 의무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아∼주라’라는 외침에 의해 공을 건네준 경우 이것을 폭행 또는 협박이라고 볼 수 있을까? 강요죄에서의 폭행은 다른 사람의 의사나 행동에 대해 해악(害惡)을 가해 강제적 효과를 발생하게 하는 일체의 수단을 의미한다. 또 협박은 해악을 고지해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아∼주라’라는 다수의 외침이 실제로 강요죄에서 요구하는 폭행이나 협박에 해당할까? 그렇게 볼 순 없을 것이다. ‘아∼주라’라는 외침이 실제로 공을 주운 사람에게 심리적 억압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외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의도한 효과는 아닐 것이다. 관중은 몇 번의 외침 뒤에 곧 경기에 다시 몰두한다. 아이에게 공을 건네지 않았다고 해서 공을 주운 사람을 해치지도 않는다. 다만 공을 주운 사람에 대한 부러운 마음과 아이를 챙겨주고 싶은 어른스러운 마음이 ‘아∼주라’라는 공동의 외침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누구나 야구장에 가면 볼 하나쯤 주워 오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파울볼이 아닌 홈런볼이라면 금상첨화일 터. 그러나 ‘아∼주라’가 지나치면 그런 기대를 무참히 깨트릴 수도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오히려 모자람만 못하다. 야구장이 추억이 아닌 불쾌한 기억의 장소로 남지 않도록 다른 사람의 기대와 추억도 조금은 배려하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정말로 사직야구장에만 있는 기분 좋은 야구문화로 오래도록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양중진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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