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①] ‘윤석화’라 쓰고 ‘살아있는 전설’이라 읽는다

입력 2017-06-07 10: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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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윤석화, 우리는 그를 ‘살아있는 전설’이라 부른다. 1975년 민중극단 ‘꿀맛’으로 배우로 나선 그는 ‘신의 아그네스’, ‘명성황후’, ‘덕혜옹주’, ‘마스터 클래스’, ‘브로드웨이 42번가’ 등 굵직한 작품에 출연했고 다양한 수상경력을 남겼다. 배우 뿐 아니라 제작자, 연출자로 나서기도 했으며 공연제작사 돌꽃컴퍼니 대표이사로 예술 전문지 ‘월간 객석’ 발행인을 겸하기도 했다.

이같이 이곳저곳에서 국내 연극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그를 ‘연극계 보석’, ‘연극계 전설’이라 불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에 대해 윤석화는 “부끄러울 따름이다. 어떤 의미로든 좋은 영향을 남기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게 아닐까. 감사하다”며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좋은 영향을 흘려보내고 싶다”라고 말했다.

‘베테랑 토크’를 위해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만난 윤석화는 한 시간 반 동안 연극·예술에 대한 애정을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42년이라는 세월을 무대 위에서 보낸 윤석화는 여전히 관객을 사랑하고 작품을 꿈꾸고 있었다. 그는 “그 곳이 무대 위든지 뒤라든지 상관없다”며 “내가 부족하지만 가장 정직하고 최선의 땀을 흘렸던 곳이 무대였기 때문에 언제나 이곳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왜 연극을 하게 됐냐고. 윤석화는 “원래 배우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라고 하면서 자신이 진짜 배우로 결심하며 미국 유학을 떠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연극배우로 5년을 무대에 서면서 저에 대한 언론과 평단의 평가는 호불호가 명확했어요. 연기에도 흐름이 있잖아요. 당시 배우들은 성우와 같은 발성으로 연기를 했어요. 그런데 저는 기존 어법이 아닌 제가 느끼는 대로 연기를 했거든요. 그래서 신선하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연기가 이상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하며 스스로 제 연기를 확인하고 싶어져 미국으로 향했죠.”


윤석화는 1980년에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로 향했다. 그 곳에서 자신의 연기의 옳고 그름을 따져보고 배우를 평생의 업으로 삼을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넓은 세상에서 그가 느낀 것은 ‘맞고 틀린 것’이 아닌 ‘다르다’였다. 그는 “내가 틀렸으면 모든 것을 깨끗이 접고 오려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브로드웨이에서 느낀 문화·예술은 기술적인 면을 떠나서 생명력이 충만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배움의 기쁨은 컸지만 현실은 고달팠다. 윤석화는 당시를 떠올리며 잠시 눈물을 비추기도 했다. 집안에서 연극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유학시절 단 한 푼도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미국에서 생계를 해결해갔다.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액세서리를 닦는 공장이나 재봉 공장에서도 일을 해봤다. 오전에는 학교를 가야했기 때문에 이른 새벽부터 오전까지 일을 하고 수업을 들으러 학교로 갔다.

“늘 잠이 모자라서 지하철에서 서서 자는 경우가 태반이었어요. 그리고 늘 배가 고팠어요. 그 때 제 소원이 정말 양이 많은 콜라를 한 번 마셔보는 거였어요. 그걸 한 번 마시면 배부를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다행히 여행사에 취직을 하게 돼서 안정적으로 살았던 적도 있어요. 제가 일을 잘해서 회사 실적이 꽤 괜찮았거든요.(웃음) 그 때 생각하면 정말 힘들고 고생했지만 지금 제가 배우로 설 수 있는 큰 밑거름이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어떤 상황이 와도 감사해요.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회에 더 도움이 되고자 해요.”

윤석화는 2010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기도 했다. 아시안 인으로는 최초다. 4년간 뮤지컬 본고장인 영국에서 일하고 돌아와 바라본 한국 시장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또 지난해 국정농단으로 인한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여전히 홀대 받는 예술인들의 삶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물었다.


그가 한국에 돌아와 가장 놀란 점은 한국 뮤지컬 시장의 성장이었다. 하지만 건강한 성장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윤석화는 “지금 뮤지컬 시장은 엄청난 거품을 갖고 있다. 그 이유가 단지 돈을 벌어보겠다고 자질이 안 된 제작자가 작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일침 했다.

“관객들의 주머니를 이용해 ‘보따리장수’ 근성으로 작품을 만드는 건 자멸의 길로 들어서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관객은 멍청하지 않아요. 한 순간 속을 수는 있지만 끝까지 속진 않죠. 지금처럼 시장이 운영이 된다면 모래성 쌓는 거나 다름이 없어요. 본질을 놓치고 트렌드만 따라가면 결국 망하는 거죠. 그 사이에서 지금 연극이 죽어가고 있어요. 가끔은 차마 볼 수가 없는, 그러니까 작품성이 없는 연극이나 뮤지컬도 있더라고요. 그냥 표만 팔려고요. 그러니 그 틈바구니에서 연극정신을 갖고 무대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정말 어려운 거죠. 이게 저희 나름의 숙제기도 해요. 누구를 탓하겠어요. 함께하며 길을 찾아가야죠. 한꺼번에 고쳐지진 않을 거예요.”

이어 윤석화는 문화·예술을 위한 인프라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라가 잘 돌아가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한국인처럼 재능이 많은 사람도 또 없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그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정치다”라고 말했다.

“정치는 나라의 뿌리죠. 그 구심점이 잘 돌아가야 사람들도 더 많은 능력을 펼치고, 그로 인해 좋은 사회를 만들게 되죠. 그러면 문화는 자연스럽게 발전하기 마련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의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러모로 리더가 정직하게 일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할 때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윤석화에게 물었다. 그는 앞으로 어떤 길을 가고 싶을까.

“연극은 제가 선택한 길이니 계속 가야죠. 다만 늘 고속도로처럼 달릴 수도 없는 것이고 골목길로만 다닐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일들이 앞으로 많겠지만 거기에 순응하며 부단히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거예요. 이젠 조금은 천천히 갈 거라 생각해요.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까요. 천천히 가는 만큼 주변을 돌아보고 필요한 곳에 꽃씨를 뿌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것이 생명을 위한 일이든 연극을 위한 일이든 상관없이요.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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