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동걸. 스포츠동아DB
냉정히 말해 이동걸의 역할은 필승계투조와는 거리가 있다. 주로 팀이 끌려가는 상황에 마운드에 올라 필승계투조의 체력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그의 임무다. 어찌 보면 동기부여가 떨어질 수 있는 위치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은 큰 착각이다. 이동걸은 마운드에 오르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끼는 선수다. 2015시즌 직후 무릎 부상 여파로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됐고, 육성선수로 계약한 뒤 지난해 6월10일 다시 정식선수로 전환되는 등 우여곡절도 겪었다. 지난해 5경기에만 등판한 뒤 손등에 타구를 맞는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하기도 했다. 풍파를 견뎌낸 덕분에 다시 서게 된 1군 무대, 공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22일 경기 직후 덕아웃에서 만난 이동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구단의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팬들의 엄청난 환호를 받고 온 뒤였고, 한화 이상군 감독대행도 “감동이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던 터였다. 이동걸은 “내 역할은 항상 팀이 어려울 때 마운드에 오르는 것이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동료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어떻게 동기부여가 떨어질 수 있겠나.” 이동걸의 한마디에는 큰 울림이 있었다. 그는 “내 인생에서 프로야구는 꿈이었다. 감독님께서 나를 내보내실 때는 ‘그 이닝을 막아달라’는 의미다. 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마운드에 오르는데, 동기부여가 떨어질 수는 없다. 항상 최선을 다해서 내 공을 던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더 의미가 크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이 감독대행은 12-12 동점이 된 9회에도 이동걸을 밀어붙였고, 그는 실점 없이 9회를 막아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3이닝을 믿고 맡겨준 이 감독대행에 대한 고마움이 묻어났다.
요즘 한화의 팀 분위기는 가히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수와 코치진 사이의 믿음도 끈끈하다. 이동걸은 “팀 분위기가 아주 좋다. 선수들도 어려울 때마다 잘 막아주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한 뒤 “내가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걱정”이라며 안타까워했던 이동걸에게 봄날이 찾아온 것 같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