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기획] ‘라켓이 맺어준 인연’ 김동문-나경민 부부

입력 2017-10-0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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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콕의 전설’ 나경민(왼쪽)-김동문 부부가 9월 16일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2017 빅터 코리아오픈에서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부부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 국가대표팀 코치와 대학 교수로 각기 다른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우월한 스포츠 DNA를 영원히 대물림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보기 마련이다. 박찬호-박세리, 박태환-김연아 등 나름의 기준으로 만든 가상의 커플들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런데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경우도 있다. 남녀 배드민턴 세계랭킹 1위를 줄곧 달리던 김동문(42)-나경민(41) 부부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이 부부는 그야말로 한국 배드민턴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합작했고 아시안게임에서는 각각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혼합복식으로 호흡을 맞춰 14개 대회 연속 우승, 70연승이라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5년 결혼에 골인한 이 둘은 어느덧 슬하에 1남 1녀를 둔 부모가 됐다. 흥미롭게도 두 자녀까지 체육인의 길을 걷고 있다. 복식 파트너에서 부부, 이후 체육 유망주의 부모까지 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나경민(왼쪽)-김동문 부부는 한국 배드민턴계의 살아있는 전설임과 동시에 두 아이를 둔 평범한 부모이기도 하다. 현역시절 항상 1등만을 생각했던 그들이지만 자녀 교육관에서는 ‘성적만능주의’를 지양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국가대표’ 첫 만남부터 올림픽까지

-두 분은 부부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지도자의 길을 걷고 계신데요. 간단히 근황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김동문(이하 김): “저만 너무 정장으로 빼 입었나요?(웃음). 원광대학교 스포츠과학부 사회체육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시는데, 우리 학교 배드민턴 팀은 감독님과 코치님이 따로 계십니다. 저는 교단에서 일반 체육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간의 경험을 녹여 부족하지만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지도하고 있습니다.”


나경민(이하 나): “올해 1월에 한국 배드민턴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령 받아 현재 여자복식 파트를 맡고 있어요. 여러 국제대회에서 우리 대표팀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 중입니다.”


-두 분을 한국 배드민턴의 ‘양대산맥’이라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은데요. 혹시 첫 만남을 기억하시나요?

나: “둘 다 태극마크를 워낙 일찍 달아서 첫 만남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아요. 아마 제 기억으로는 중학교 주니어 대표훈련 때 처음으로 봤던 것 같아요. 이후에는 계속해서 국가대표팀에 발탁됐으니까 선수촌에서 줄곧 봤죠.”

김: “집사람에 대한 기억은 처음에 워낙 강렬했어요. 단식을 너무 잘 쳤던 선수였거든요. 주니어 대표팀으로 함께 영국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혼자 결승까지 갔었어요. 저는 동료들과 함께 일찌감치 떨어진 뒤 집사람의 승리를 응원했었죠.”


-두 분 현역 시절에 있어 올림픽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이 특히 기억에 남으실 것 같습니다.

김: “첫 올림픽이었으니까요. 더군다나 집사람과 결승에서 맞붙었어요. 당시 집사람은 박주봉(현 일본대표팀 감독) 감독님과 복식호흡을 맞췄는데, 모두가 우승후보로 뽑은 강팀이었어요. 우리(김동문-길아영)의 금메달을 예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죠. 그런데 어떻게 운이 좋아 저희가 금메달을 땄어요. 아무래도 집사람이 첫 올림픽에서 전설의 박 감독님과 호흡을 맞춰서 그랬는지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았어요.”

나: “저는 그때 복식으로 전향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은퇴를 하셨다 돌아오신 박 감독님의 파트너로 낙점돼 그저 열심히 하기 바빴죠. 부담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에요. 여유가 없었죠. 스스로 얼어붙어서 제 몫을 못했던 것 같아요.”

선수시절 김동문-나경민(왼쪽) 부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환상의 호흡’ 속에서 피어난 사랑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본격적으로 복식호흡을 맞추셨는데요. 14개 대회 연속 우승, 복식 70연승 등 각종 기록을 수 없이 쏟아 내셨습니다.


나: “저는 사실 애틀랜타 올림픽이 끝나면 다시 단식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어요. 근데 당시 지도자분들께서 남편과 복식을 하길 권했어요. 갑작스레 호흡을 맞추니 처음에는 당연히 성적이 좋지 않았죠. 1997년까지는 정말 엉망이었어요(웃음). 그런데 다음해부터 조금씩 손발이 맞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운까지 따라 성적까지 좋게 나왔어요.”


-환상의 호흡에는 서로간의 호감도 큰 역할을 했을 것 같은데요. 교제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김: “구체적으로 ‘이제 우리 만나자!’ 이랬던 적은 없어요. 파트너로서 항상 함께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죠. 가족보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았으니까요. 파트너끼리는 서로 슬픔도 기쁨도 함께 나누잖아요? 2002년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나서부터 조금 더 살갑게 지냈던 것 같아요.”


-결혼을 하신 이후에는 두 분 모두 캐나다로 가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김: “지도자의 길을 걷기 위해 공부가 더 하고 싶었어요. 아이들도 거기서 낳아서 외국생활이 생각보다 길어졌죠. 6년째 될 때 한국에서 제의가 있어서 집사람과 의논했는데, 집사람은 꽤 오래 전부터 돌아가고 싶었다 하더라고요. 그때 너무 미안했어요. 충분히 재능이 있는 사람을 내 욕심에 타국에 잡아 놓은 것 같아서요. 즉각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죠.”

나: “향수병이 있었던 게 사실이에요. 항상 집에서 아이들만 돌보다가 남편이 돌아오는 시간에 같이 몇 마디 나누는 게 그 시절 하루 대화의 전부였어요. 또 저도 지도자 생활을 계속 하고 싶어서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선수시절 김동문-나경민(왼쪽) 부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체육인의 길을 걷는 아이들의 부모로 산다는 것

-한국으로 돌아오신 뒤에는 아이들까지 체육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나: “큰 애가 어렸을 때부터 남편은 야구를 시키고 싶어 했어요. 작은 애는 보고 배운 게 있어서 그런지 라켓을 잡더라고요. 운동신경은 둘 다 있는 것 같아 본격적으로 시켜봤죠. 둘도 재미있어 했고요. 덕분에 저희도 바빠졌죠. 학교와 체육관에 데려다 주는 게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정이 됐답니다.”

김: “아이들의 진로라는 게 부모가 강요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하지만 아이가 선택지를 고를 수 있게 여러 기회는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배드민턴만큼이나 야구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큰 애를 어려서부터 줄곧 야구장에 데려갔죠. 근데 본인이 너무 좋아하고 흥미를 붙이더라고요. ‘야구 한 번 해볼래?’라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는데, 본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둘째도 운동신경이 있는 것 같아 배드민턴을 시켰어요. 집사람과 긴 시간 의논한 끝에 둘 모두 진로를 체육 쪽으로 정했어요.”


-가족 구성원 모두가 체육인인 특별한 집안입니다.

나: “정말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요. 일단 남편이 지방에 있으니까 주말에만 서울에 올라 올 수 있거든요. 저도 대표팀 일정에 따라 집을 비울 때가 많고요. 아이들도 대회와 훈련을 병행하다 보면 4명이서 함께 식사할 시간도 없어요. 조금 더 어렸을 때는 그래도 같이 여행도 가고 외식도 했는데, 이제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답니다.”


-부모로서 또 체육인 선배로서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김: “모든 부모들의 마음과 같죠. 순하고 착하게 커줬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어떤 상황이 와도 슬기롭게 잘 대처해 나갔으면 좋겠고요. 체육인 선배로서 하는 조언이라면 ‘성적에 연연하지 말라’는 거죠. 저희 둘 부부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1등’만을 바라보며 살아왔어요. 우승이 본전인 사람들이었죠.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체육인이라고 해서 성적이 최우선은 아닌 것 같아요. 금메달이 성공의 절대적 기준은 아니잖아요? 무엇을 하든 자기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고, 타에 모범이 될 수 있는 올바른 선수가 됐으면 합니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체육을 재밌게 즐겼으면 좋겠네요.”

장은상 기자 awar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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