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내친구] 황용필 본부장 “걷기의 축복을 누리지 않는 건 직무유기”

입력 2017-11-1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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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레저사업본부 황용필 본부장이 단풍이 곱게 물든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들꽃마루를 걷고 있다. 매일 만보를 걷는 그에게 걷기는 ‘축복’이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donga.com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레저사업본부 황용필 본부장이 단풍이 곱게 물든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들꽃마루를 걷고 있다. 매일 만보를 걷는 그에게 걷기는 ‘축복’이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donga.com

■ 국민체육진흥공단 본부장의 걷기 철학 황 용 필

“걷기는 운동이 아니라 힐링이며 자기 성찰
매일 1만보씩 걸으니 표정이 좋아졌다더라
집사람과 나란히 걷는 시간은 최고의 순간”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레저사업본부 황용필(58) 본부장은 소문난 ‘걷기 마니아’다. 정작 본인은 이 수식어가 쑥스러운 듯 손사래를 치지만, 홈그라운드인 올림픽공원의 숨은 산책 코스까지 훤히 꿰고 있는 그의 일상은 걷기를 빼곤 설명하기가 어렵다. 사무실 근방의 들꽃마루 동산에 들러 붉은 단풍을 배경삼아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그는 문득 ‘축복’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가까이에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데, 어떻게 걷지 않을 수 있겠느냐면서.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레저사업본부 황용필 본부장.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레저사업본부 황용필 본부장.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걷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황 본부장은 하루에 1만보를 걷는다. 약 8.7km의 거리, 성인의 걸음으로는 1시간 30분∼2시간쯤이 걸린다. 매일 새롭게 채워나가는 이 숫자들은 자신과의 약속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걷는다는 것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하고, 일상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걷기’라는 것이 굳이 약속까지 해가며 지켜내야만 하는 매일의 목표가 된 데는 별다른 계기가 있다.

“우리 집이 청계천 부근이다. 하루는 휠체어를 타고 나온 분이 다리 밑에서 걷기 연습을 하시더라. 아마 교통사고를 당하셨던 것 같다. 우리에겐 걷는다는 것이 너무나 평범한 일이지만, 그분에게는 정말 절실한 거다. 가만 보니 나는 쉽게 걸을 수 있는데, 내가 걷지 못할 이유가 뭐 있나. 저 사람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말 많이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의식적으로 걷기 위해선 부지런한 생활이 필수였다. 매일 새벽 5시, 교회에 다녀오는 길을 하루의 시작으로 삼았다. 집에서부터 교회까지는 왕복으로 850걸음인데, 이는 황 본부장이 강조하는 종자 걸음이다. 이 작은 걸음들이 모여 천보를, 나아가 만보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는 “하루에 만보를 걸으려면 아침에 잘 걸어야 하더라. 나만의 의식으로 교회에 다녀오는 850걸음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긴다”고 했다.

이어 출근길엔 가볍게 올림픽공원을 거닐고, 점심시간에는 직원들과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며 식당에 다녀오면 어느덧 3000보가 채워진다. 퇴근길엔 아내와 만나 집까지 함께 걷곤 하는데, 그러다보면 금세 만보에 다다른다. 혼자 걸을 땐 깊은 생각에 빠질 수 있어 좋고, 주변인들과 함께 걸으면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또 좋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레저사업본부 황용필 본부장.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레저사업본부 황용필 본부장.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걷는 것은 축복

황 본부장이 가장 좋아하는 걷기 파트너는 아내다. 아내는 간호사관학교를 나와 행군에도 일가견이 있다. 고향인 전남 강진의 가우도 섬을 걸으며 옛 기억을 더듬는 것을 좋아하긴 해도, 아내와 나란히 걷는 퇴근길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는 “저녁에 집 사람과 손잡고, 우리가 사는 아파트를 바라보며 걷는 청계천 둑길이 제일 좋다. 그곳에는 우리가 살아온, 앞으로 살아갈 모든 것이 있으니까”라며 미소 지었다.

그에게 ‘걷기’의 의미를 물으니 ‘축복’이라고 답한다. “걸을 수 있는 건강한 몸을 주고, 같이 걸을 주변의 사람을 붙여주었으니 이 모든 것은 내게 축복”이라는 것이다. 걷기라는 축복을 누리면서부터는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 삶에 여유가 생겼다. 황 본부장은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갖게 됐다. 생활도 많이 건강해졌다. 걸을 때는 욕심이 없으니 욕심을 많이 버리게 됐고. 사람들도 내 표정이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더라”며 만족스러워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레저사업본부 황용필 본부장.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레저사업본부 황용필 본부장.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걷기 속 인문학

‘걷기 속 인문학(샘솟는기쁨)’은 최근 황 본부장이 발간한 4번째 저서다. 걷기에 관한 성경, 철학자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본인의 생각들을 담았다. 본래 마음에 두었던 이름은 ‘길 위의 묵상’이었지만, 종교적 색채가 짙어 부제목으로 채택했다. 그는 매일 필사하는 성경 속 한 구절에서 ‘묵상’을 마주하게 됐다. 묵상은 히브리어로 산책, 기도를 뜻하는데, 황 본부장은 자연스레 걷기와 묵상을 연결지었다.

“혼자 걸으며 많은 생각을 한다. 가끔은 멍을 때리기도 하고, 때론 기도도 한다. 걷기야말로 묵상이고, 기도이자 성찰이다.”

‘걷기 속 인문학’이란 제목처럼 그에게 걷기는 단순한 운동 그 이상이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소중하고, 나를 위로하는 동시에 성장시키는 존재다. 황 본부장은 “걷기는 너무 쉽다보니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면 그것도 일종의 직무유기”라며 “걷기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랄까.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걷기를 더 이상 운동이 아니라 자신을 힐링하고, 성찰할 수 있는 도구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그 스스로는 책을 내면서 세상에 ‘걷기 마니아’라는 일종의 커밍아웃(?)을 하게 됐다. 모든 걸음에 대한 책임감이 커졌다. “형식이 내용을 만든다고, 걷기 마니아로 알려졌으니 더 많이 걷는 수밖에 없지”라며 웃는 그는 “이 책은 나 자신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바르게 살아야 하고, 더 잘 하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정해뒀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황 본부장은 하루키를 보고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나보다 열 살이 많더라. 나도 10년 후면 하루키가 달리는 것처럼 잘 걷거나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웃음).” 그의 10년 뒤를 감히 예상해 본다면, 아마 ‘적어도 끝까지 멈추지는 않을 것’ 같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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