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은의 매력은 주변인들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촬영현장이나 공식석상 자리에서 분위기를 흥겹게 이끄는 사람이라는 후문. 실제로 만나본 그는 낯선 공간에서도 유쾌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틈틈이 진지함과 유머러스함이 묻어나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에게 먼저, ‘이번 생은 처음이라’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맡은 ‘마상구’는 똑똑한데 허세가 느껴지고 어수룩하다. 또 꽤나 진지한데 웃기기까지 하고 마초남이지만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그렇게 순정남일 수 없다. 보는 시청자도 즐겁지만 연기를 하는 박병은도 매우 기분이 좋다. 그는 “인간 박병은이 즐겁게 촬영하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상쾌하게 다가간다는 사실이 정말 기분이 좋다”라고 말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기분이 좋았어요. 대본도 정말 편하고 재미있게 봤거든요. 마상구 캐릭터를 봤을 때 단지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 아니라서 끌렸죠. 여자와 연애에 대해 능수능란하게 알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연애를 인터넷으로 배웠을 뿐이고. (웃음) 수지(이솜 분)가 ‘마 대표, 진짜 연애 안 해봤지?’라고 하잖아요. 정말 연애를 모르는, 수지에게 뭔가 머리로 ‘댕’하고 맞은 것 같은 사람이잖아요. 게다가 순수하고 순진하고 그런 반전의 모습이 좋았어요. 그런 그의 매력에 끌렸고 제가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동안 박병은은 이런 모습과는 정반대인 악역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돼왔다. 대표적인 작품이 영화 ‘암살’이었고 최근에는 ‘원라인’이 있었다. 이에 이번 작품을 통해 이미지 변화를 주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지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제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배우도 아닌 걸요. 하하. 저는 배우인 제 모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걸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연기 변신에 관한 것은) 걱정이 별로 없어요. 저는 평생 배우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고 앞으로 나아갈 길이 더 길고 그만큼 보여줄 이미지가 많아요. 배우 인생 초반에는 악역을 많이 했다고 해도 언젠가는 제가 코미디로 갈 수도 있고 멜로로도 갈 수도 있기 때문에 그 때에 필요한 연기와 감성들을 꺼내서 보여드리면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현장에 가고 연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극 중 마상구는 ‘결혼 말고 연애’라는 어플리케이션을 만든 회사 CEO이다. 연애를 원하는 사람들이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남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박병은은 이러한 어플리케이션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이 드라마를 통해 알았다고. 그는 “찾아봤는데 진짜 있더라.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라며 “그런데 작가님께서 ‘왜요, 거기서 결혼도 많이 해요’라고 하시더라. 그리고 조건도 엄청 까다롭다던데. 등급도 나눠진다더라”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연인 역할인 이솜과의 호흡에 대해 물어보니 “반전이었다”라고 답했다. 그는 “대본 리딩을 할 때 처음 봤는데 낯을 가리고 조용하더라. 수지가 ‘걸크러쉬’ 캐릭터 아닌가. 당당하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라 호흡이 잘 맞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리딩이 끝나고 첫 회식 때도 조용히 밥만 먹더라고요. 그래서 먼저 소주 한 잔을 들고 다가갔어요. 그러면서 서로 캐릭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촬영 전에 미리 합을 맞추고 촬영에 들어갔어요. 이솜 씨한테 고마워요, 사실은. 이솜 씨가 연기를 잘해주지 못했더라면 저는 계속 헛발질 하는 마 대표가 됐을 거예요. 이제는 이솜 씨가 먼저 와서 ‘오빠, 대사 한 번 맞춰볼까요’라고 하기도 하고 ‘오빠, 제가 이런 애드리브 해도 괜찮아요?’라고 해요. 그러면 ‘뭐든지 해, 난 내가 마음대로 하는데 뭘. 내가 늘 미안해’라고 말해요.(웃음)”

수지를 향한 마상구의 모습 중 두 손을 가리고 우는 장면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신과 연애를 하고 싶으면 회사를 팔라는 말에 마상구는 고민을 하던 중 수지와 마주치자 방향을 틀어 한 골목길에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울었던 것. 이 장면에 박병은은 “원래는 그냥 안경을 벗고 우는 것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라고 말했다.
“그냥 두 손을 저절로 올라갔다. 눈물은 나오는데 회사 직원들이 혹여 볼 수 있다는 걱정에 집중을 하니 나도 모르게 두 손이 올라갔어요. ‘컷’하고 나서 ‘왜 올라갔지, 누가 올렸나?’라고 생각했어요. 하하. 생각해보면 제 연기 패턴도 많이 바뀐 걸 느껴요. 예전에는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1안에서 8안까지 적어두고 연기를 했는데 지금은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대로 연기를 하는 것 같아요. 내 머리가, 내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연기를 하는 편이에요. 어찌 보면 이것도 연기에 대한 공부이고 실험이죠.”
앞으로 마 대표는 수지와 꽃길을 걸을 수 있는지 슬쩍 물어보기도 했다. 그는 “지금 대본을 보고 있긴 한데 안 알려줄 거다”라고 본방 사수를 요구했다.
‘마상구 대표’로 호평을 받고 있는 가운데 박병은은 차세대 ‘마블리’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자 그는 “동석이 형 때문에 안 될 것 같아요”라며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좋아해주고 기억해주신다는 건 참 기쁜 일이다. 배우로서 신경을 안 쓴다고 하면 거짓말이다”라고 말했다.
“배우는 모든 캐릭터에 애정을 갖고 연기를 하는데 그 모습을 좋아해주시고, 작품의 이야기를 좋아해주시면 보람도 있고 기쁨도 있죠. 조금씩 더 바빠질수록 피곤하지만 그럼에도 감사함을 느끼죠. 예전에는 대사 한 줄이라도 더 하려고 절실하게 오디션 보러 다녔는데 지금은 배우로서 감사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촬영장에 비가 와서 지연이 되고 식사를 하지도 못 한 채 촬영을 할 때도 있지만 행복해요. 이렇게 차근차근 배우의 길을 걸어야죠.”
→베테랑 토크②로 이어집니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