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 말씀드리니 ‘끼가 있으니 해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날 밤 많은 생각을 했죠. 끼는 과연 무엇이며, 나는 끼가 있는가. 생각해보니 중학교 때 강감찬 이순신 등 영웅들의 이야기를 대본으로 썼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동네 친구들을 모아서 연극을 하기도 했고요. 대본이니 소품이니 그런 말을 모르던 때였는데 말이죠.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주최한 성경 동화 대회에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우리 식으로 풀어서 1인10역 연기를 했었어요. 자던 애들도 깨울 만큼 반응이 좋았고 1등을 받았어요. 쭉 생각해보니 이게 끼인 것 같았어요. 배우 해도 되겠더라고요.”
지금이야 배우가 인기 직종 중 하나가 됐지만 당시에는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했다. 딴따라 혹은 광대. 그럼에도 남경읍이 배우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배우는 멋은 있지만 너무 힘든, 춥고 배고프고 가난한 직업이었죠. 그때는 딱히 목표는 없었어요. 이소룡 영화가 유행할 때였는데 ‘나도 권법 영화배우가 돼야 겠다’는 허황된 생각으로 시작한 것 같아요. 대학교에서 좋은 교수님과 선배들을 만나면서 연극의 참맛을 알게 되고 깨우쳐간 거죠.”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 입학한 남경읍은 먼저 1976년 연극 ‘하멸태자’로 데뷔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걸작 ‘햄릿’을 우리나라 인물과 배경으로 번안 연출한 작품이다. 남경읍은 기계체조를 했던 경험을 살려 몸을 많이 움직이는 광대 역할을 소화했다. 뮤지컬 첫 작품은 1978년 ‘위대한 전진’이다.
“당시 뮤지컬을 하는 단체는 가무단(현재 서울시뮤지컬단) 밖에 없었어요. 들어가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까 무용과 전공 친구들을 꼬드겨서 스터디를 꾸렸어요. 서로 가르쳐주면서 연극은 무용화, 무용은 연극화했죠. 1년 반을 준비해서 입단 시험을 봤어요. 들어가서 앙상블로 처음 한 작품이 ‘위대한 전진’이었어요. 2시간 공연하고 나면 시간이 갈수록 몸이 홀쭉해지는 경험을 해봤죠.”
이후 남경읍은 뮤지컬 1세대로서 공연계를 개척하고 이끌어왔다. 제자만 4000명 이상. 자칫 후배를 이용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실명 언급을 자제했지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뮤지컬 스타들은 남경읍 아래서 뮤지컬을 배웠다. 한국 뮤지컬의 역사와 함께하면서 느낀 소회를 물었다.
“힘든 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경제적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그 ‘힘듦’이 내 목표를 넘지는 못했어요. 하루 15시간을 연습실에 있었어요. 새벽 5시 30분이면 연습실로 나가곤 했죠.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처음에는 즐거움이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목표의식이 생겼어요. 한 때는 1인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좋은 작품을 많이 보면서 ‘좋은 배우’가 되는 게 목표가 됐죠.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연극 무대에는 1976년 뮤지컬로는 1978년 데뷔한 남경읍(59). ‘뮤지컬 1세대’인 그가 영화에 발을 내딛은 계기는 1985년 ‘대학별곡’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영화는 무려 15년이 지난 2010년 ‘용서는 없다’. 지금은 많은 드라마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드라마에 진출한 지도 10년 밖에 되지 않았다.
“동생(남경주)은 어릴 때부터 TV에도 많이 나가서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는데 저는 100명 중에 1명 알아볼까 말까였죠. 그런데 배우의 존재는 관객이잖아요. 조명 의상 음향 심지어 대본 없이도 연기할 수 있지만 관객이 없는 연극은 성립될 수 없어요. 관객에게 나를 알리고 싶었죠. 다른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안 해본 장르니까요.”
2007년을 기점으로 남경읍은 드라마와 영화에 중점적으로 출연해왔다. 드라마 ‘미생’의 사장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한 그는 최근 드라마 ‘마녀의 법정’을 마치고 ‘미스티’를 준비하고 있다.
“‘미생’ 이후 포장마차에 가면 사람들이 ‘사장님 오셨다’고 알아보더라고요. 하하. 배역에 경중이 어디 있겠냐만 ‘마녀의 법정’에서는 맡은 역할이 너무 작아서 처음에는 속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작진이 왜 나를 쓰려고 했는지 이유를 생각해봤죠. 제가 맡은 안 회장은 전광렬과 대적하는 관계의 인물이거든요. 그 강렬함에 맞설 힘이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까요.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NG는 거의 없었어요. 재밌게 촬영한 작품이에요.”
남경읍은 지난달 주연 영화 ‘푸른노을’도 선보였다. 치매 진단을 받고 기억을 잃어가는 노년의 사진사가 수취인 불명 사진의 주인을 찾아 추억을 전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그린 ‘푸른노을’에서 남경읍은 거리의 악사 달주 역할을 연기했다. 회장 사장 등 진중한 성격의 고위 간부를 연기해온 남경읍의 코믹한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감독이 대본을 들고 찾아왔는데 나를 위해서 쓴 것 같았어요. 10년 전부터 악기 레슨을 받아왔는데 연주 장면이 시나리오에 다 나와 있는 거예요. 개런티고 뭐고 바로 ‘합시다’라고 했죠. 북 색소폰 하모니카 등 정말 연습을 많이 했는데 충분히 나오지는 않아서 아쉬워요. 그래도 그건 살짝 아쉬운 거고요. 코믹한 연기를 해본 적에 만족감이 커요. 정말 코미디 연기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남경읍은 현재 차기작 ‘미스티’와 더불어 뮤지컬 데뷔 40주년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딸 남유라 씨와 함께하는 작품으로 공연 방식은 미정이다. 8년 만에 무대로 돌아간 뮤지컬 ‘벤허’를 할 때도 떨지 않았다는 그는 40주년 공연을 준비하면서 많이 떨리고 기대된다고 고백했다. 걸어온 40년 그리고 또 걸어갈 40년. 예순의 남경읍에게 이후의 연기 인생에 대해 물었다.
“하늘이 허락한다면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어요. 일흔까지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순재 신구 박근형 선생님처럼 저도 여든 넘어 아흔까지 하고 싶어요. 건강이 허락해주기를 바랄 뿐이죠.”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