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 빙속 레전드’ 이승훈 성공비결, 실력·인품·리더십의 집합체

입력 2018-02-2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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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매스스타트 금메달리스트 이승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남자 매스스타트 금메달리스트 이승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제 이승훈(30·대한항공)을 명실상부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레전드라 불러도 어색할 게 없다. 역대 올림픽에서 따낸 메달만 총 5개로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다 기록이다. 2010밴쿠버동계올림픽 5000m 은메달과 1만m 금메달, 2014소치동계올림픽 팀추월 은메달, 2018평창동계올림픽 팀추월 은메달에 이은 매스스타트 금메달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는 이승훈이 체격조건에서 월등히 앞서는 유럽 선수들과 맞붙어 실력을 증명했다는 증거다. 단순히 실력만 놓고 봐도 스피드스케이팅의 레전드 반열에 올라서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인품과 리더십을 더하니 그야말로 완전체 스케이터가 따로 없다.

평창올림픽 매스스타트가 열린 24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의 스타도 이승훈이었다. 남자 매스스타트 초대 우승자로 우뚝 선 것은 물론이고, 슈퍼스타의 품격도 유감없이 선보이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특히 레이스를 마친 뒤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 후배 정재원(17·동북고)의 손을 번쩍 들고 트랙을 돌며 함께 기쁨을 나눈 장면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13살이나 어린 정재원은 “내 레이스가 우리 팀에 도움이 됐고, (이)승훈이 형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게 돼 정말 기쁘다”며 “승훈이 형이 (내가) 많은 관중들 앞에서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 그게 정말 고마웠다”고 의젓한 모습을 보여줬다. 레전드의 품격에 감동받은 후배의 말 마디마디에 진심이 그대로 묻어났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정재원-이승훈(오른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정재원-이승훈(오른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는 이승훈의 리더십과도 연결된다. 팀워크가 생명인 팀추월은 그의 탁월한 리더십을 볼 수 있는 종목이다. 이번 대회에선 “앞에서 빠르게 후배들을 끌어줘야 한다”는 목표를 가슴에 새기고 훈련에 임했는데, 이 전략이 적중했다. 토너먼트제로 진행되는 준결승부터는 결승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불안감이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이승훈의 파트너인 정재원과 김민석(19·성남시청)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그저 선배의 리드에 따라 발을 맞췄다. 이는 피터 마이클을 앞세운 뉴질랜드와의 준결승에서 막판 역전극을 일궈낸 비결이다. 체력을 유지하며 타이밍을 노리다가 무서운 막판 스퍼트를 보이는 이승훈의 장점을 활용한 것인데, 이는 끈끈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전략이다. 누군가가 불안함을 느끼면 전략이 흔들릴 수 있지만, 이승훈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훌륭한 인품은 레전드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이승훈은 이 덕목도 갖췄다. 매스스타트 금메달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승훈의 한마디에 모두가 감탄했던 순간이 있다. 바로 훈련 특혜 논란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 때였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노선영(29·콜핑팀)이 한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이승훈과 정재원, 김보름(25·강원도청)이 한국체대에서 따로 훈련을 한다”고 밝히며 논란이 일었는데, 이에 대해 이승훈은 이렇게 얘기했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대표 이승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남자 스피드스케이팅대표 이승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쇼트트랙 코스에서 훈련을 해야 해서 그렇게 했지만, 그런 훈련이 다른 동료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해외에 나가서 전지훈련을 했으면 차라리 괜찮았을까’라고도 생각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동료들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훈련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다.” 후배들의 기량발전을 위해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그의 리더십과 인품을 모두 엿볼 수 있는 한마디였다.

강릉 |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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