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작’의 황정민, 주지훈, 이성민(왼쪽부터)이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스크리닝 공식 상영을 마치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황정민
“흑금성의 눈 이미지 표현 의무감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마친 기분”
이성민
“달라진 남북 분위기, 꿈 현실로
NG 퍼레이드…촬영장 치열했죠”
주지훈
“진한 휴머니즘 담긴 사람 이야기
한 땀 한 땀 공들여 완성한 작품”
황정민과 이성민, 주지훈은 최근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를 꼽으라면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지만, 이들은 뜻밖에도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세 배우를 칸으로 이끈 영화는 1990년대 남북한 첩보전을 그린 ‘공작’이다.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12일(한국시간) ‘공작’을 공개한 이들을 영화제 메인 행사장인 팔레 드 페스티벌에서 만났다. 영화를 공개하는 자리는 어디든 비슷한 마음이라는 이들은 칸의 감흥이 그리 크지는 않은 듯했다. 황정민은 “(부산)해운대와 비슷하다”며 “빨리 서울에서 내장탕을 먹고 싶다”며 웃음지었다.
영화 ‘공작’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황정민 “사람 사이 이데올로기가 무슨 소용”
‘공작’은 1990년대 ‘흑금성’으로 실제 활동한 스파이 이야기다. 북한 핵개발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북에 잠입한 그는 1997년 대선 직전 남북한 사이의 모종의 계획을 접하고 신념에 변화를 맞는 인물이다. 황정민이 흑금성이란 인물에 끌린 데는 그의 확고한 ‘바람’도 영향을 미쳤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이데올로기는 필요 없다고 늘 생각해왔다. 영화에 드러나듯이 우리가 그간 얼마나 잘못된 교육을 받으며 속고 살았는지, 그걸 꼭 관객에 알려주고 싶었다.”
황정민은 자신이 맡은 실존인물을 한 번 만났다. 황정민은 “도무지 읽을 수 없는 그분(흑금성)의 눈, 그 눈이 가진 이미지를 가져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무감에서 출발했다”고 돌이켰다.
기존 첩보물과 달리 긴박한 추격전이나 액션 장면 없이 담담하게 전개되는 영화로 인해 황정민의 어깨는 더 무거웠다. 인물과 인물 사이의 심리전을 밀도 있게 표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황정민은 그 어렵고 힘든 과정을 두고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한 편 마친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자꾸 스스로를 질책하게 됐다.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보여주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과정을 보냈다. 작년 ‘군함도’와 ‘공작’까지 마치고 난 뒤 스스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다.”
베테랑 배우에게 찾아온 일종의 슬럼프였다. 해결은 역시 “연기”다. 황정민은 ‘공작’ 촬영 직후 고전 ‘리차드 3세’로 연극 무대에 다시 올랐다. “뭔가를 채우기 위한 연극이었다”는 그는 “극한의 경험을 거치고 지금은 회복되고 있다”고 했다.
영화 ‘공작’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이성민 “로마시대 전쟁 마친 전사의 기분”
이성민은 칸의 상징인 뤼미에르 대극장 레드카펫을 밟는 기분이 “남달랐다”고 했다. 그리고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라고도 했다.
“레드카펫을 걷고 극장 계단에 올라서서 뒤돌아보니 함께 작업한 스태프들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높지 않은, 그 짧은 계단이, 내겐 마치 로마시대에 전쟁을 마치고 온 전사의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공작’은 이성민에게 남다른 작품임에 분명하다. 평소 NG와는 거리가 먼 그이지만 이번에는 예외였다. 스스로 “NG 퍼레이드였다. 촬영장이 끔찍할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치열한 현장이었다는 의미다.
영화에서 그는 남한 첩보원과 접촉하는 북한 고위간부로, 확고한 신념으로 남과 대치한다. 영화가 진한 인간미를 더할 수 있던 데는 이성민의 공이 상당하다. 그는 “‘공작’은 첩보물이라기보다는 딜레마에 빠진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영화가 남북한 갈등과 북한 핵을 소재로 삼은 만큼 이성민 역시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작년 1월 촬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남북은 극단적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분위기”라며 “우리가 ‘공작’을 시작하면서 꾸었던 꿈이 지금은 현실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첫 칸 방문에 이성민은 아내와 동행했다. 3박4일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한 뒤 아내와 둘 만의 파리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황정민 역시 칸 일정을 마치고 가족과 파리로 떠났다.
12일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공식 상영 레드카펫에 선 주지훈, 이성민, 윤종빈 감독, 황정민,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왼쪽부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주지훈 “체제보다 사람, 나에겐 큰 화두”
칸에서 만난 ‘공작’ 배우들은 줄곧 “사람” 그리고 “휴머니즘”을 자주 꺼냈다. 주지훈도 그랬다. 철저한 이념에 사로잡힌 북한군 역의 그는 “한 관객의 입장으로 본다면 ‘공작’에서는 진한 휴머니즘이 느껴진다”며 “체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나에게 큰 화두로 다가왔다”고 했다.
30대 중반인 주지훈은 이를 계기로 남북한 상황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도 돌아보고 있다고 했다. “우리를 갈라놓은 건 체제이지, 우리가 원한 건 아니지 않느냐”며 “통일이 된다면 더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일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지만 “한 땀 한 땀 공을 들이면서,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 완성한 영화”를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칸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했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칸이라는 공간이 주는 묵직한 전율도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레드카펫 공포증’을 털어낸 이야기도 소개했다.
주지훈은 “레드카펫은 나에게 무서운 공간이었지만, 선입견을 깨준 사람이 (정)우성이 형”이라며 “영화 ‘아수라’를 찍고 함께 레드카펫을 경험하면서 모든 사람과 함께 즐기는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준 형의 멋진 모습 덕에 내 인식도 바뀌었다”고 했다.
실제로 ‘공작’ 레드카펫에서 누구보다 여유로운 팬 서비스를 보인 그는 “꼭 칸이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 시간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