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매치] 청춘의 바둥거림·중년의 고달픔, 다른듯 닮은 ‘우리들의 자화상’

입력 2018-05-18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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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이선균과 아이유(위쪽), ‘미생’의 이성민과 임시완(아래쪽)이 각각 맡은 캐릭터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청춘과 이미 인생의 쓴맛, 단맛을 맛본 중년 남성의 이야기로 묘하게 닮아 있다. 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생은 시청자에 큰 감동과 진한 여운을 안겼다. 사진제공|tvN

■ 공감과 위로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 vs ‘미생’

● 이지안(나의 아저씨) vs 장그래(미생)

지옥 같은 현실에 내던져진 이지안
비정규직 장그래보다는 더한 고통
살기 위해·희망 찾아 ‘세상과 싸움’

● 박동훈(나의 아저씨) vs 오상식(미생)

이지안의 현실을 끌어안은 박부장
비정규직 장그래를 알아본 오과장
전장 같은 직장생활 상사의 참 모델


“이번 생은 망했다!” 탈출구 없어 보이는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 청춘의 외침이다. 하지만 어디 그들뿐이랴. “반세기 동안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보이는 중년의 팍팍함도 못지않은 모양이다. 17일 막을 내린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그렇게 말했다. ‘나의 아저씨’는 2014년 드라마 ‘미생’의 연출자 김원석 PD의 신작. 단지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두 드라마는 묘하게 닮아 보이지만 또 그만큼 진하게 다르다. 두 작품에서 비어져 나오는 현실의 절묘한 흔적 위에서 ‘나의 아저씨’는 더욱 신산해진 세상살이를 그려냈다. 마치 자신들이 살아내고 견뎌내야 하는 힘겨운 세상을 들여다보는듯 중장년층과 청춘은 드라마에 뜨겁게 호응했다. 극본을 쓴 박해영 작가의 재능이 빚어낸 대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너르고 깊은 시선으로 감동을 더했다.

두 청춘이 있다.

부모가 남긴 빚 탓에 평생을 사채업자의 협박에 시달리며 살아가야 할 것 같은 스물한 살의 이지안(아이유).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겨운 현실에 청각장애를 지닌 노쇠한 할머니까지 부양해야 하는 그는 너무도 일찍 나쁜 세상을 알아버렸다.

타고난 명석함으로 어린 나이에 바둑의 세계에 뛰어들었지만 끝내 프로기사가 되지 못한 20대 중반의 장그래(임시완). 무역상사에 계약직 사원으로 입사해 파격의 승부수를 내던지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도 오로지 희망과 선한 의지로서만 견디고 또 견뎠다.

‘나의 아저씨’ 이지안(아이유)(왼쪽)-‘미생’ 장그래(임시완). 사진제공|tvN


● ‘악다구니 세상살이’ 이지안 vs ‘희망은 어딘가에?’ 장그래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은 그야말로 악다구니처럼 세상에 대든다.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세상을 그렇게 마주하지 않으면 대체 팍팍하나마 연명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은데도 기어이 세상에 “꾸역꾸역” 나와 “3만살”의 나이를 지녔다. 20대 초반의 찬란함은커녕 오로지 하루하루 견뎌내며 살아내는 것만이 삶의 전부였다.

‘미생’의 장그래는 대기업 비정규직 사원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멸시와 천대를 꿋꿋이 견뎌냈다. 그라고 세상이 달콤하게 보였을까마는, 그래서 더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건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의 구조적 장벽 앞에서 머뭇거려야 하지만 그래도 한 치 더 자라날 것이라는 믿음만으로 묵묵히 기다리는 길을 택했다.

그런 점에서 이지안이 마주하는 세상은 더 혹독하다. 그에게 “현실은 지옥”이다. 지옥을 견뎌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기세이지만, 그래도 딱 거기까지다. 타의에 의해 비열한 세력의 대척점으로 내몰린 사람을 해하기 위해서라지만, 그 대가는 자신의 빚을 갚을 수 있는 한도에 머문다. 어쩌면 가장 혹독한 현실 앞에서도 이지안은 끝내 그 끝을 내다볼 줄 아는, 그래서 장그래 못지않게 더없이 “착한 사람”인지 모른다.

이지안과 장그래는 세상에 홀로 덩그러니 내던져진 듯했다. 하지만 그들 곁에는 사람이 있었다.

이지안이 파견직 사원으로 일하는 대기업의 박동훈(이선균) 부장.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더 나아가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더 물러서지도 않는다. 세상과 조직은 그런 그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이리저리 흔들림 끝에서 그래도 형제와 가족이란 이름의 끈끈함을 안고 사는 건 그나마 위안일까. 그런 사이 이지안은 그에게 다가와 날카로운 칼날의 생채기를 남기며 “우리 둘 다 자기가 불쌍하다”고 말한다.

결코 정규직 사원이 되지 못할 운명임을 알면서도 비정규직 장그래를 받아들여야 하는 오상식(이성민) 과장. 아픈 기억 때문에 악연으로 묶인 임원만 아니었다면 그는 정년을 보장받았을까. 단 한 번도 편법과 아부와 라인에 기댄 적 없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과장이 되고 차장으로 승진하지만, 그건 모래성 같아서 그 역시 허물어지고 만다.

‘나의 아저씨’ 박동훈(이선균)(왼쪽)-‘미생’ 오상식(이성민). 사진제공|tvN


● “욕망과 양심 사이” 박동훈 vs “우린 아직 미생” 오상식

박동훈은 이지안에게 “나의 아저씨”다. 각기 제 살 길 찾는 데 바쁜 세상에 주변을 돌아보는 건 얼마나 허망하고 사치스런 짓일까. “좀 억울하게 생긴” 박동훈 역시 이를 모르지 않는다. 회사 안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세력들 사이에서 좀체 자신의 자리를 찾을 줄 모르나 싶다가도 오로지 “내 손에 망가져야” 하는 놈을 위해 결단을 내릴 줄도 아는 그다.

하지만 주변의 “경직된 인간들”이 불쌍하게 “살아온 날들을” 들여다볼 줄도 알아서, 이지안이 처한 극악한 현실에 개입한다. “네가 불쌍하니까 너처럼 불쌍한 날 끌어안고 우는 거야”라며 다그치지만 실상 이 말은 그 자신에게도 해당한다는 것을, 박동훈은 또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동훈은 이지안에게 ‘나의 아저씨’가 될 수 있었다.

상사맨 오상식의 일상은 온통 바쁘다. 전문적으로 할 일 많은 그에게 고졸 출신 비정규직 사원은 자칫 유휴인력일 수밖에. 하지만 이 비정규직은 상사맨들의 오랜 경험과 관행을 뒤집어 판을 깨려 한다. 그것이 그리 틀리지 않음을 또 전문적 시선으로 눈치 채는 오상식이야말로 유능하다.

그는 책임지지 않기 위해 비겁해진 조직을 애써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그건 고지식함인가. 그런 그에게 비정규직 장그래의 잇단 파격은 또 다른 판을 키우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물론 새로운 판짜기, 그 근원적 해법의 길을 제시한 자, 오상식이다.

‘나의 아저씨’와 ‘미생’은 그렇게 치열한 전투 같은 직장생활의 험난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두 드라마는 이미 성공을 거뒀다. 자, 이제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고 상처와 거덜을 내 기어이 내쫓으려는 조직 안에서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일 못하는 순으로 자르지 않”고, “거스르면 잘리는, 회사는 그런 데야”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실이 지옥이”고 “지옥에 온 이유가 있겠지”만, “벌 다 받고 가면 되”는 현실이라면 적어도 “맞고 살지는 말자. 성질난다”고 박동훈이 말했다.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살아가더라도.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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