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019시즌 삼성화재 배구가 한결 빨라진다. 코트 위를 채우는 선수들의 면면이 크게 바뀌었지만, ‘변화’는 곧 전통 강호 삼성화재의 새로운 시작이다. 사진제공|KOVO
● “코보컵 우승이요? 벌써 다 잊었습니다”
‘코보컵 우승팀은 정규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배구계 정설에 가깝다. 우승 분위기에 오래 빠져 있으면 장기레이스에 필요한 집중력을 놓치기 쉬워서다. 국내 선수들의 호흡만으로 9년 만에 코보컵 우승컵을 들어올린 삼성화재는 이미 영광의 순간을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이는 숱한 우승을 경험한 삼성화재의 연륜과 맞닿아 있다.
지도자로선 처음으로 우승 헹가래의 주인공이 된 신진식 감독은 “이게 우승의 묘미구나 싶었다. 재미있더라”며 웃었다. 하지만 시선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놨다. 그는 “선수들 모두 눈높이가 높아졌다. 시즌을 치르다보면 상대팀이 잘 할 때도 있고, 범실이 나올 때도 있다. 우리 선수들 역시 컨디션이 좋은 때, 아닌 때가 있다. 기대를 높여놓으면 실망감이 크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화재 신진식 감독(가운데). 사진제공|KOVO
● 가능성은 삼성화재의 ‘봄’을 노래한다
코트 위 선수 구성이 확 바뀌었다. 새로운 수비형 레프트로 송희채를 영입했고, 2년차 세터 김형진이 주전으로선 첫 시즌을 맞이한다. 프로데뷔 11년차인 리베로 김강녕도 스타팅 라인업에 드는 것이 처음이다. 센터 지태환은 군복무를 마치고 복귀했다. 새로운 조합의 시너지를 이끌어내는 일이 첫 단계다.
운전대를 잡은 코트 위 막내 김형진의 역할이 크다. 신 감독은 김형진을 남성고 시절부터 지켜봤다. “참 예쁜 이단토스를 올렸다”는 것이 김형진에 대한 첫 인상이다. 그만큼 김형진을 향한 믿음과 기대감이 크다. 신 감독은 “토스가 정말 많이 늘었다. 코보컵을 하면서 한 단계 성장했고, 이번 시즌을 치르면서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선수”라고 높게 평가했다.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은 선수는 또 있다. 푸른색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송희채는 스스로 ‘어디까지 더 성장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단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이민규·송명근(이상 OK저축은행)과의 이별을 감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간 많은 감독님들께 ‘너는 더 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량에 대한 성장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중력의 차이나 작은 변화들로 플레이가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삼성화재에 와서 깨달았다.”
올 시즌 선수단 규모를 줄인 삼성화재는 백업 자원들의 ‘뒷받침’에도 시즌의 성패가 달려있다. 신 감독은 “여름에 훈련을 많이 했다. 코트에 들어가면 자신의 몫들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 스피드 배구를 입은 삼성화재의 진화
트렌드를 수용했다. 이번 시즌 삼성화재의 배구가 빨라진다. 타이스, 박철우와 함께 송희채가 날개 한 쪽을 맡으면서 공격의 다변화가 가능해졌고, 김형진이 빠른 배구를 이끌어나갈 능력을 갖췄다는 판단 아래 변화를 시도했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토스 높이가 낮아졌고, 플레이 속도는 빨라졌다. 신 감독은 김형진에게 적극적인 변칙 플레이도 주문하고 있다.
삼각편대의 공격 비중에도 변화가 따른다. 신 감독은 “아무래도 타이스가 제일 많은 공격 점유율을 가져가겠지만, 35~40% 정도로 낮아질 것”이라며 “그 다음이 박철우, 송희채의 순서”라고 했다. 선수들도 새로워진 삼성화재의 팀 컬러를 차근차근 받아들이고 있다. 박철우는 “원래 낮고 빠른 플레이를 좋아했다. 볼 높이를 낮추면서 블로킹의 타이밍을 빼앗는 공격 위주로 연습을 하고 있다”며 “코보컵에서도 모든 공격수들이 조금씩 부담을 나눠 가져간 덕분에 팀플레이가 수월하게 이뤄졌다”고 돌아봤다.
삼성화재. 사진제공|KOVO
● ‘마지막 퍼즐’ 타이스의 적응력
코보컵에서 국내 선수들의 기량을 확인했다. 문제는 타이스와의 호흡이다. 삼성화재에서 세 번째 시즌을 맞는 타이스의 공격력은 이미 V리그에서 검증된 사실이다.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두 번째 순번을 뽑고도 재차 타이스의 이름을 호명한 신 감독의 선택 역시 ‘타이스만한 공격력도 없다’는 믿음이 기저에 깔려있었다. 최대 불안 요소인 서브 역시 “공격처럼 서브도 즐겨봐라”는 신 감독의 조언 아래 시간을 거듭할수록 발전하고 있다는 자체 평가다.
그러나 타이스 역시 팀의 크고 작은 변화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는 멤버들의 구성이 대폭 바뀌었고, 이제 더 낮고 빠른 공이 타이스의 손끝에 올려진다. 삼성화재는 코보컵을 타이스 없이 치렀을 뿐만 아니라 비자 문제 때문에 시즌을 앞두고 손발을 맞출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신 감독은 “아직 타이스의 공격 타이밍이 조금 빠르다. 미세한 차이지만 타이밍을 조금 늦추면 된다.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맞춰야하는데 시간이 부족했다”고 아쉬워했다.
“명가 재건이 아닌 새로운 길을 가고 싶다”는 신 감독의 삼성화재는 변혁의 출발선 앞에 서있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