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조명이 꺼진 뒤 V리그 선수들은 무엇을 하나

입력 2018-11-0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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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는 배구라는 대본을 바탕으로 코트라는 무대에서 펼치는 연극이다. 한 편의 작품을 위해 두 팀의 선수단, 지원스태프 및 프런트 등 60여명이 정성을 다해서 준비를 한다. 이런 무대가 6개월 동안 이어지는 장편 대서사극이 도드람 2018~2019시즌 V리그다. 관중들은 코트 위에서 펼쳐지는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에 열광하지만 과연 조명이 꺼진 V리그 무대 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 경기가 끝난 뒤의 불 꺼진 코트와 라커룸

두 팀이 전력을 다한 경기가 끝나면 승자 패자가 갈라진다. 승리 팀의 수훈선수와 승리 팀 감독은 코트에서의 방송 인터뷰에 이어 기자실에서 벌어지는 공식 인터뷰에 참가한다. 이 사이에 두 팀의 선수들은 코트 구석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푼다. 예전에는 ‘높은 분’들이 지친 선수들을 도열시키고 악수를 강요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이 차츰 사라져간다. 촌스럽다는 지적과 팬들의 비난 눈총 덕분이다. 물론 아직도 눈치 없이 하는 팀도 있다.

10월 29일 현대캐피탈의 정태영 구단주는 우리카드와의 천안 홈 개막전 뒤 코트에서 몸을 푸는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선수들은 앉아서 구단주의 인사를 받았다. 오래 전 어느 여자구단은 반대의 상황을 겪었다. 선수들이 탈진하다시피 해서 있는데 구단주가 왔다. 감독은 무릎이 아픈 선수들을 배려해 앉은 채로 인사를 시켰다. 난리가 났다. 구단주를 따라온 그룹의 고위임원들은 이를 불손한 행동으로 봤다. 결국 그 감독은 시즌 도중에 해고됐다.

스트레칭을 마친 선수들은 라커로 돌아간다. 그 곳은 프런트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선수들만의 비밀스런 공간이다. 이곳에서 감독으로부터 그날 경기와 관련된 지적을 듣는다. 대부분 감독들은 졌을 때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패해서 마음이 상한 선수들에게 오래 잔소리해봐야 역효과다. 대신 이겼을 때는 보완할 점을 세밀히 지시한다. 간혹 감독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못한 선수를 호되게 혼낼 때도 있다. 예전에는 모르겠지만 이제 구타는 사라졌다.

어느 구단의 단장은 팀이 지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머지 라커룸으로 쳐들어가 감독이 있는데서 선수들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이후 그 팀의 성적은 추락했다. 감독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는데 성적이 잘나온다면 더 이상한 일이다. OK저축은행은 경기에 이기면 라커에서 승리수당을 즉시 나눠준다. 포상은 현장에서 현찰로 해야 효과가 크다는 구단주의 뜻이 반영됐다. 경기 관람을 빼놓지 않는 구단주의 특별지시가 있으면 간혹 보너스 성격의 추가수당도 준다.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을 경우는 다음 날 훈련장이나 다음 경기 직전에 라커에서 선수들에게 돈 봉투를 안긴다. 효과 만점이다.


● 식사 이동 그리고 숙소에서의 치료


선수들은 경기 3~4시간 전에 밥을 먹는다. 많이 구르고 점프를 하는 경기의 특성상 배가 부르면 안 된다. 사실상 공복으로 경기를 하다보니 경기시간이 길어지면 허기가 진다. 그래서 바나나 등을 세트 도중에 틈틈이 먹는다.

몇 년 전 어느 구단은 단장을 위한 ‘전시용 바나나’를 가지고 다녔다. “다른 팀은 먹는데 우리는 왜 먹이지 않냐. 우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라며 배구를 모르는 단장이 역정을 내자 프런트가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선수들은 라커나 코트 밖에서 알아서 챙겨먹고 있었지만 이 사실을 단장만 몰랐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선수들은 경기장 근처에서 식사를 한다. 선수단 숙소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눈치 없이 따라온 모기업의 임원들이 식사자리에서 생각 없이 선수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거나 여자 선수들에게 술을 따르라고 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10월 31일 김천에서 V리그 역사상 최장시간(163분)의 경기를 했던 현대건설 선수들이 서둘러 용인 숙소로 도착했을 때가 밤 12시 30분께였다. 여자부는 이번 시즌부터 주중 경기가 7시에 시작하면서 생활패턴이 이전과 달라졌다. 오전 훈련시간과 식사시간 등 다양한 루틴의 조정이 필요했다.

그날 도로공사 선수들도 일찍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선수들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 경기 후유증으로 허리와 어깨 무릎 발목 등은 정상이 아니기에 무리했던 부위를 최대한 원상태로 돌려놓아야 한다. 도수치료와 온열찜 전기자극 부항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치료받는 선수들의 순서도 정해져 있다. 주전선수와 베테랑에게 우선권이 있다. 한 명당 최소 한 시간은 걸리다보니 모든 선수들에게 다 손길이 가지 못한다. 그나마 지금은 치료전담 직원을 여러 명 두기 때문에 치료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V리그 초창기에는 팀당 1명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어린 선수들은 감히 치료를 꿈도 꾸지 못했다. 삼성화재의 고희진 코치는 “어릴 때는 경기 뒤 물리치료를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했다.

하여튼 그날 도로공사 선수들은 새벽 1시 30분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힘든 경기를 마친 선수들에게는 충분한 잠이 보약이다. 그래서 경기 다음 날은 오전 식사를 생략한다. 대신 아침과 점심의 중간에 아점을 먹는다. 훈련은 그 다음이다. 경기 전 날에도 선수들은 낮에 코트적응훈련을 하는데 이때도 아점을 먹는다. 이처럼 먹는 것 자는 것 쉬는 것 모두 정해진 루틴에 따라 움직이는 V리그의 배우, 선수들의 무대 뒤 생활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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