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총재에게 모욕당한 감독의 퇴장

입력 2018-11-1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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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자진사퇴가 총재의 소신에 부합하리라 믿는다”고 말하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스포츠동아DB

선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자진사퇴가 총재의 소신에 부합하리라 믿는다”고 말하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스포츠동아DB

KBO 정운찬 총재는 선동열 국가대표 감독이 사임의사를 밝히기 20여일 전인 10월 23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개인적인 의견으로 전임감독제를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동열 대표팀 전임 감독에게 상당한 심리적 압박이 될 수 있는 문제적 발언이었다. 질의를 한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미 수차례 국가대표 전임감독제에 대한 반감을 표현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금메달에 대해 “그 우승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 이 모두 선동열 감독에게는 크게 모욕적이었다.

결국 선 감독은 14일 스스로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장윤호 사무총장은 “정운찬 총재가 복도까지 나와 선 감독의 사임을 만류했다”고 전했지만, 이미 뜻이 기운 선 감독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KBO 정운찬 총재는 국정감사에서 “전임감독제를 찬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14일 사퇴 의사를 전한 선동열 한국야구대표팀 감독을 겨냥한 말이었다. 스포츠동아DB

KBO 정운찬 총재는 국정감사에서 “전임감독제를 찬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14일 사퇴 의사를 전한 선동열 한국야구대표팀 감독을 겨냥한 말이었다. 스포츠동아DB


정 총재의 국감 발언은 경황이 없는 가운데 나온 실수라고 해석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정 총재는 이후 단 한번도 선 감독을 만나지 않았다. 개인적 의견이라고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전임감독제를 반대했다면 커미셔너로서 감독을 만나 이해를 구했어야 옳다. 장 총장이 총재를 대신해 정 총재의 국감 발언 이틀 뒤 선 감독을 만났지만 이는 자존심을 더 짓밟을 뿐이었다. 뒤늦게 복도까지 ¤아 나왔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다.

선 감독은 사퇴하며 정 총재의 발언에 대해 “전임감독제에 대한 총재의 생각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자진사퇴가 총재의 소신에 부합하리라 믿습니다”고 밝혔다. 손 의원의 말과 관련해서는 “사퇴결심을 확고히 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는 말을 남겼다.

국민스포츠로 불리는 야구 대표팀 감독은 최고의 지도자 인생을 걸어야 맡을 수 있는 자리다. 깊은 애정만큼 팬들의 눈높이는 매우 높다. 현역 감독들이 모두 정중하게 그리고 완강하게 사양하는 이유다.

전임감독제는 한 때 KBO리그 구성원들의 숙원 과제 중 하나였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정 총재는 전임감독제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 아울러 이제 자신이 주도해 선발해야 하는 새 감독, 혹은 새 시스템으로 KBO리그의 명운이 걸려있을지도 모르는 WBSC 프리미어12(2019년)~도쿄올림픽(2020년)을 치러야 한다. 그 동안은 자신의 임기 전 취임한 감독이 있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야구계에서는 정 총재 체제 출범 이후 KBO 수뇌부의 연이은 헛스윙 행보에 꾸준히 우려의 시선이 제기돼 왔다. 정 총재가 곰곰이 되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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