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 위의 두 거장이 세기의 대결을 펼친다. 20년 넘게 숙명의 라이벌로 통했던 타이거 우즈(오른쪽)와 필 미켈슨은 24일(한국시간) 오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거스 섀도 크릭 골프클럽에서 상금 100억원을 놓고 단판승부를 벌인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당시 서른 살 나이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우즈는 연장 접전 끝에 통산 4번째 마스터스 정상을 밟았다. 그런데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우즈의 우승 세리머니가 아니었다. 관례상 전년도 우승자가 그해 챔피언에게 마스터스의 상징과도 같은 그린재킷을 입혀줬는데, 골프 황제에게 그린재킷을 건넨 이가 다름 아닌 우즈의 평생 라이벌 미켈슨이었던 것이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숙적, 동지, 맞수로 지냈던 우즈와 미켈슨이 전 세계 골프팬들 앞에서 ‘세기의 대결’을 펼친다. 둘은 24일(한국시간) 오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거스 섀도 크릭 골프클럽에서 ‘캐피털 원스 더 매치: 타이거 vs 필’이라는 이름으로 18개홀 단판승부를 벌인다. 승자가 독식하는 상금만 무려 900만달러(약 100억원). 성적은 물론 품성, 스타일,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걸쳐 각을 세웠던 우즈와 미켈슨의 빅뱅이 마침내 다가왔다.
필 미켈슨(왼쪽)-타이거 우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숙적
둘의 라이벌 구도는 우즈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데뷔한 1996년부터 형성됐다. 4년 앞서 입성한 ‘백인’ 미켈슨이 훤칠한 외모와 호쾌한 실력을 앞세워 스타로 발돋움하던 찰나, ‘흑인’ 우즈가 천재성을 내세워 필드를 점령하면서 둘의 살얼음판 승부가 시작됐다.
실력만큼은 최고를 자부한 ‘오른손잡이’ 우즈와 ‘왼손잡이’ 미켈슨은 서로 우호적일 수가 없었다. 특히 두 세기를 걸쳐 황제로 군림한 우즈의 위용은 적대적 관계를 공고히 하는 기폭제와도 같았다. 미켈슨이 영원한 2인자라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를 얻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들의 라이벌 구도가 잘 드러난 때는 2004~2006년 마스터스였다. 미켈슨이 2004년 명인열전을 제패했는데 이듬해 우즈가 왕좌를 빼앗으면서 미켈슨은 우즈에게 그린재킷을 넘겨줘야했다.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어느 한쪽의 편을 쉽게 들어주지 않았다. 2006년 미켈슨이 마스터스 정상에 다시 오르면서 우즈는 1년 만에 미켈슨의 굴욕을 재현하게 됐다.
이 같은 둘의 불편한 관계는 십수 년 넘게 계속됐다. 2004년 라이더컵(미국과 유럽연합팀의 골프대항전)에서 같은 조로 출전했다가 2전 전패를 당한 뒤로는 함께 라운딩조차 하지 않았다. 공개석상에서 서로를 견제하는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필 미켈슨(왼쪽)-타이거 우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동지
그러나 ‘싸우면서 정 든다’는 옛말처럼 흐르는 세월 앞에서 영원한 라이벌을 없는 모양이었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둘은 어느 샌가 서로를 의지하는 동반자로 거듭났다. 특히 우즈가 최근 몇 년 새 부상과 스캔들로 신음하면서 둘의 경쟁의식은 측은지심으로 바뀌게 됐다.
우즈와 미켈슨은 올해 4월 마스터스를 앞두고는 함께 연습 라운딩을 하며 의기를 투합하기도 했다. 십여 년 전 각자의 힘을 내세우기 바쁘던 바로 그 마스터스에서였다. 둘의 동반 플레이에 골프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로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고, 동시에 큰 의미가 없는 단순한 해프닝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자본주의로 무장한 미국 스포츠계가 이러한 둘의 스토리를 가만둘 리 없었다. 올해 우즈가 부상 터널에서 나와 필드로 복귀하면서 두 거장의 맞대결이 자연스럽게 논의됐고, 8월말 서로간의 협의 끝에 세기의 대결이 성사됐다. 디데이는 미국의 추수감사절 주말인 11월 24일이었다.
필 미켈슨(왼쪽)-타이거 우즈.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맞수
PGA 투어 통산상금 1위와 2위에 올라있는 우즈와 미켈슨의 맞대결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하고 있다. 골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거장들의 1대1 매치플레이에 벌써부터 크나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 세계 베팅업계는 승패 예측에 들썩이고 있고, 각국 방송사 역시 이날 단판승부 생중계를 준비 중이다.
자존심 대결 역시 치열하다. 미켈슨은 21일 기자회견에서 “우즈는 그간 내 숱한 기록을 깨트린 선수다. 그동안 수없이 패했던 기억을 돌려줄 기회”라고 다짐했고, 우즈는 “9월 라이더컵 이후 휴식을 취하다가 최근 다시 훈련을 재개했다. 예전 감각이 살아나고 있다”고 응수했다.
100억원의 상금 그리고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명예가 걸린 승부. 과연 세기의 대결에서 웃을 주인공은 누가 될까.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