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베테랑에 대한 예우…전혀 다른 수원과 전북의 방향

입력 2018-11-2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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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훈. 스포츠동아DB

K리그1 수원 삼성의 2018시즌은 우울하다. 정확히 10년째 K리그 무관이 이어졌고 FA컵은 4강 탈락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도 4강에 머물렀다. 내년 ACL 출전을 위해 유일하게 기대한 정규리그 4위 진입마저 좌절됐다.

지금 수원에게 동력도, 희망도 없다. 남은 한 경기에 대한 동기부여도 사라졌다. 이 와중에 들려온 베테랑 공격수 염기훈(35)의 재계약 협상이 정체됐다는 소식은 가뜩이나 뒤숭숭한 팀 분위기를 더욱 어둡게 한다.

이런 분위기는 일찌감치 감지됐다. 올 여름과 이달 초, 구단은 연말 계약이 만료되는 염기훈에게 계약연장을 제안했다. 그런데 진전이 없다. 협상 테이블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구단이 제시한 터무니없는 조건 탓이다. 에이전트 업계에서는 수원이 선수에게 제안한 연봉은 기존의 60% 선이라고 한다. 두 차례에 걸친 요청 모두 조건이 비슷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2010년 수원 입단 당시와 현재의 연봉이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선수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동안 염기훈의 몸값 총 인상폭은 5000만원 안팎이었다.

수원에게 염기훈은 특별한 존재다. 선수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일부 팬들은 수원과 염기훈을 동의어로 보기도 한다. 후배들은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기면 포근한 고참을 가장 먼저 찾는다. 이적을 앞둔 선수들도 꼭 선배에게 조언을 구한다.

구단 역시 염기훈의 영향력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그라운드 안팎에서 많은 퍼포먼스를 기대한다. 그러면서도 대접은 소흘하다. 선수 입장에선 도무지 힘이 날 수 없다. 프로에서는 몸값이 곧 가치다. 팀을 향한 애정이 전부는 아니다.

수원의 살림살이가 빡빡해진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오해가 있다. 2014년 4월 모기업이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과정에서 지원이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긴축경영 지시는 삼성전자에서 내려왔다. 스포츠단도 그룹 방침에 따라 허리띠를 졸라맸다. 염기훈이 2015년 9월, 3년 4개월 재계약을 했을 때에도 자금 사정은 좋지 않았으니 지금의 상황이 새삼스런 이유가 될 수 없다.

전북 이동국. 스포츠동아DB


공교롭게도 수원이 라이벌로 여기는 ‘1강’ 전북 현대는 베테랑을 확실히 예우했다. 우리나이로 마흔에 접어든 이동국(39)과 1년 계약연장을 체결했다. 구단 차원의 공식발표는 26일 이뤄졌으나 지난 주 새로운 계약서에 이미 서명했다. 몸값 줄다리기도 길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했다. 수원과 전북 모두 사령탑이 바뀌는 변화의 시점에 놓였으나 대처는 판이하다. 전북은 중심을 잡아줄 고참을 일찍 잔류시켜 예견된 혼란을 최소화했고, 수원은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

수원은 더 이상 “재계약 요청을 해뒀으니 우린 함께 가자는 제스처를 보였다. 선택은 선수 몫”이라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곤란하다. 팀 내 상징인 염기훈의 행보를 보고 자신의 거취를 결정한다는 선수들도 상당히 많다. 다가올 겨울, 대대적인 선수단 엑소더스를 막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무너진 명가’ 수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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