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K리그 감독님들, 참신한 공약 없습니까”

입력 2019-02-2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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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FC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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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이스하키 대명의 케빈 콘스탄틴 감독(60)의 영상을 보면서 미소가 절로 났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사령탑 출신으로 2017년부터 대명을 맡은 그는 2018~2019시즌 아시아 정규리그 우승 공약으로 ‘삭발’을 내걸었다. 원래 공약을 건다는 건 확신보다는 설마 쪽에 가깝다. 콘스탄틴도 우승 의지를 다지는 차원이었다. 그런데 설마가 현실이 됐다. 대명은 거센 돌풍을 일으키며 창단 이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정상에 올랐다. 삭발식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국내 스포츠에서 가장 화제가 된 공약은 프로야구 이만수 감독의 속옷 세리머니가 아닐까 싶다. SK 수석코치 시절인 2007년, 그는 “문학구장 관중석이 만원이 되면 팬티 차림으로 그라운드를 돌겠다”고 약속했는데, 5월의 어느 날 3만400석 규모의 관중석이 꽉 찼다. 약속대로 달랑 팬티만 입고 경기장을 도는 그를 향해 팬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 장면이 재미있었는지 해외 언론들도 크게 다뤘다.

국내 프로축구에서도 인상적인 공약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게 FC서울 최용수 감독의 말 세리머니다. 최 감독은 2012시즌 우승 공약으로 말(馬)을 타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정상에 오른 뒤 경기장에 진짜 말을 타고 나타나 팬들을 뒤집어 놓았다. 심지어 말 위에서 춤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안전문제 때문에 팀을 상징하는 넥타이를 흔드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어쨌든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한 싸이의 말춤을 연상시킨 최 감독의 아이디어는 돋보였다.

신태용 전 국가대표팀 감독도 공약에 관한 한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프로 감독 데뷔 첫해인 2009년 성남 시절, 홈경기 첫 승 공약으로 레슬링 복장으로 춤추기를 내걸었다. 그 해 4월 11일, 성남이 홈에서 포항을 3-1로 꺾자 그는 정장을 벗고 레슬링 복장을 한 뒤 그라운드로 나가 흥겨운 춤판을 벌였다. 레슬링 그랜드슬램의 주인공 심권호도 찬조 출연해 흥을 돋웠다. 신 감독은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고맙고, 그런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기획했다고 전했다.

2019시즌 개막을 앞둔 K리그에서도 몇몇 감독이 공약을 걸었다. 대전 고종수 감독은 “이번 시즌 승격이나 우승하면 텀블링 세리머니를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는 선수 시절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텀블링을 꺼내면서 향수를 자극했다. 제주 조성환 감독은 “우승하면 오렌지로 염색하고 오렌지 속옷을 입겠다”며 팬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공약은 단순히 재미로 내거는 건 아니다. 공약을 통해 스스로 마음가짐을 다듬고 동기를 부여하는 장치라고 본다. 아울러 팬과의 공개적인 약속이기도 하다. 팬과 스킨십을 넓히려는 노력의 일환인 셈인데, K리그를 풍성하게 만드는 얘깃거리로도 제격이다.

이제 K리그 개막이 코앞이다. 거창한 공약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꺼내놓는 건 어떨까. 감독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그 공약이 실현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걸 목표로 달려가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하다. 올 시즌 당신의 공약은 무엇입니까.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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