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라바리니 감독이 방한 기간 동안 한 일은 무엇

입력 2019-03-04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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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배구대표팀 스테파노 라바리니 신임 감독. 사진제공|대한배구협회

한국배구 100여년 역사상 처음인 외국인감독 라바리니가 3박4일의 방한일정을 마치고 브라질로 돌아갔다. 2020도쿄올림픽 본선을 노리는 여자대표팀의 사령탑으로 내정된 라바리니는 2월28일 귀국한 뒤 3일 김천의 도로공사-GS칼텍스전 등 V리그 3경기를 관전한 다음에 심야비행기로 출국했다.

이미 그의 일정과 발언 등은 매스컴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라바리니가 한국에서 조용히 하고 간 것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살펴봤다.

● 호기심과 배구에 미친 사람

1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열정적으로 많은 말을 했다. 이를 지켜보던 이선구 대한배구협회 수석부회장과 박기주 여자경기력향상이사 등의 표정은 밝았다. 그의 배구철학을 듣는 순간 제대로 골랐다는 확신이 드는 듯했다.

함께 참석했던 김호철 남자대표팀 감독은 “내 딸과 라바리니 감독이 친한데 얼마 전에 통화를 오래 하더라. 딸은 ‘배구에 미친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그래서인지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면서 여러 뒷얘기를 해줬다.

라바리니는 기자회견 뒤 김호철 감독에게 먼저 다가가 “앞으로 한국배구에 궁금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겠다”고 부탁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문화를 향한 호기심과 도전을 말했다. “이질적인 문화도 존중한다”고 했다. 라바리니의 방한 첫날 함께 저녁식사를 했던 유경화 전 여자경기력향상이사는 “한국음식을 거리낌 없이 이것저것 먹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젓갈도 잘 먹었다”고 귀띔했다.

라바리니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경민 한국배구연맹(KOVO) 홍보팀장의 얼굴도 알아봤다. 그는 지난해 이탈리아 몬차에서 벌어졌던 KOVO의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때도 혼자 와서 지켜봤다고 했다. 라바리니의 한국배구를 향한 관심이 그때부터였는지 아니면 정말로 배구가 좋아서 몬차에 온 것인지 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에게 배구는 일상생활로 보인다.

● 내 배구를 보여줄 사람과 전력분석

기자회견에 앞서 오전 11시에 라바리니 감독은 대한배구협회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이 자리에서 라바리니는 선수들의 체력을 담당할 피지컬트레이너와 기술전담 트레이너 등 2명의 스태프를 자기가 선택하겠다고 요구했다. 이선구 부회장은 흔쾌히 OK사인을 줬다. 아직 라바리니가 어떤 사람을 선택할지는 모르지만 자기의 배구철학을 실현시켜줄 사람을 데려올 것이다. 비디오분석관도 공개경쟁을 통해 감독이 원하는 사람으로 뽑기로 했다.

라바리니는 이탈리아에서 만든 전력분석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는 전력분석관이 웹하드에 올려준 경기영상을 받아서 짬짬이 우리 선수들의 기량을 파악해왔다고 협회 관계자는 전했다.

28일 입국 기자회견에서 “선수단에 너무나 많은 김씨 이씨가 있다”고 한 것은 그래서 나온 말이다. 라바리니가 참조했던 영상 가운데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때의 대표팀 경기와 이번 시즌 V리그 경기 영상이 있다. 등번호 20번 12번 선수를 언급했지만 대표팀인지 프로팀인지를 알려주지 않아서 누구인지 확인은 불가능했다.

라바리니는 1일 장충체육관 본부석 뒤에서 GS칼텍스-현대건설 경기를 관전했다. 그는 대한배구협회를 통해 “다음 경기 때는 전력분석관들이 있는 엔드라인 쪽에서 경기를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현재 라바리니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그의 시각으로 본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평가와 대표팀 발탁여부다.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외교적인 발언으로 핵심을 잘 피해갔다. 아직은 조심스러웠고 무척 신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대표팀 소집과 내년 1월 리그는

국제배구연맹(FIVB)의 경기일정 방침에 따라 5대륙의 올림픽최종예선은 내년 1월에 동시에 열릴 것이 확실하다. 8월 대륙간예선에서 러시아 캐나다 멕시코를 꺾고 올림픽 본선행을 확정하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내년 1월 아시아대륙 최종예선에서 우승을 차지해야 한다.

이 경우 V리그의 일정조정과 프로 팀의 대표팀 차출도 문제지만 라바리니 감독이 현재 소속된 브라질 리그 팀과도 복잡한 일이 벌어진다. 9일간의 리그 공백 동안에 일주일이나 다른 팀을 위해 자리를 비우는 감독을 이해해줄 팀은 많지 않다. 12~1월에는 한 달을 비워야 할지도 모른다.

라바리니는 이 문제도 확실하게 입장을 정리했다. 현재 브라질 소속팀 미나스테니스클럽과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끝난다고 했다. 그 이후는 유동적이다. 새로 브라질 팀과 계약을 맺을 수도 한국과 이동거리가 가까운 유럽의 팀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도 라바리니는 1월에 한국대표팀을 지휘하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에이전트가 새로운 계약협상을 맺을 때 이 부분을 가장 확실하게 하기로 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대표선수들 차출일정과 선수단 운영계획이다.

라바리니는 이 문제를 놓고 1일 밤 대한배구협회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조만간 여기서 나온 결정을 가지고 KOVO와 협상을 벌여야 한다. 라바리니는 “유럽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아서 대표선수 소집이 어렵지만 여기는 한 곳에 모든 선수들이 모여 있어서 문제될 것이 없겠다”고 했다. 하지만 유럽과는 달리 우리는 V리그 소속 구단들이 선수들을 합숙훈련 시키고 차출에도 영향력을 미친다. 이 현실을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을 바탕으로 모두가 만족하는 대표팀 소집일정을 짜는 것이 변수다. 여자대표팀은 6월부터 열리는 발리볼내이션스리그(VNL)를 비롯한 많은 대회에 출전해야 한다. 주전들을 혹사시키지 않고 유망주들에게 경험도 주고 올림픽 본선행도 확정지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라바리니 감독이 대표팀 엔트리를 얼마나 창의적으로 구성하고 프로구단의 많은 협조를 얻어내느냐가 중요하다. 첫 외국인감독의 성공여부는 사실 여기에 달려 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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