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이재영을 변화시킨 4가지

입력 2019-03-11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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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이재영. 스포츠동아DB

흥국생명 이재영. 스포츠동아DB

마침내 흥국생명이 통산 5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06~2007시즌에 이어 13년만의 3번째 통합우승이자 10년만의 통산 4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도전하는 흥국생명은 이재영이 봄 배구에서 어떤 역할을 해주느냐에 따라 실현여부가 달려 있다. 그만큼 시즌 내내 핑크폭격기는 엄청난 활약을 했다. 리그 우승 팀에 시즌 MVP를 주는 관례상 개인통산 2번째 시즌 MVP를 받을 가능성도 크다. 득점 2위, 디그와 수비 각각 7위 등 공수에서 이재영이 제 역할을 해줬기에 흥국생명은 정규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득점과 디그는 자신의 V리그 역대최고 기록이다.

● 체력방전을 딛고 책임감으로 일어서다

3라운드부터 상승세를 탔던 이재영은 갈수록 기량과 컨디션 멘탈이 좋아지고 있다. 이제 프로 5년차지만 팀을 이끌어가는 구심점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9일 리그 우승을 위해 승점1이 꼭 필요했던 현대건설과의 시즌 마지막경기 3세트에서도 그 것을 잊지 않았다. 세트스코어 1-1로 우승에 한 세트가 더 필요했던 상황. 이재영은 세터 김다솔에게 모든 공을 자신에게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의 손으로 우승을 확정하겠다는 의지와 책임감이 빛났다.

바로 직전 도로공사와의 홈경기에서 3-1로 패한 뒤 어느 상식 없는 사람이 SNS에서 그의 가족을 언급하며 비난했던 악플 탓에 심신이 흔들렸지만 코트에서만은 훌훌 털어내고 경기에 집중하는 정신력이 놀라웠다.

시즌을 앞두고 이재영은 오랜 국가대표 차출의 후유증 탓에 거의 탈진상태로 팀에 합류했다. 어깨를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였다. 박미희 감독은 “훈련보다는 우선 쉬게 해야 한다. 너무 지쳐 있다”며 숙소 대신 집으로 돌려보냈다. 악전고투 속에서 1라운드를 버틴 이재영은 2라운드에 바닥을 찍은 뒤 3라운드부터 상승세를 탔다. 특히 정상으로 돌아선 4라운드 이후 클러치 상황마다 팀을 이끌었다. 덕분에 가장 점수가 필요할 때는 동료는 물론 상대팀도 그를 먼저 바라봤다. 시즌 공격성공률은 38.61%. 2014~2015 데뷔시즌 다음으로 높았다.

● 달라진 이재영을 만들어준 새 타법

이재영이 언터처블급 선수로 업그레이드 된 비밀이 있다. 타법을 바꿨다. 공을 때리는 기술과 위치가 이전과 달라졌다. 김기중 수석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인 덕분이다. 2라운드 도중 김 수석코치는 이재영에게 변화를 주문했다. “남자선수들만큼 체공능력과 파워를 갖춰 새로운 방법으로 공을 때리라고 주문했다. 대부분 여자 선수들이 하는 방법에 더해서 눌러서도 치고 틀어서도 치고 다양한 방법으로 회전을 주는 기술을 상의해가면서 만들었다”고 김 코치는 털어놓았다.

야구로 치자면 투수가 공을 릴리즈하는 포인트가 달라졌고 새로운 변화구까지 추가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이 덕분에 상대 수비수는 공이 어디로 날아올지 예측이 더 어려워졌다. 같은 팀의 김해란도 “공이 어디로 올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재영이 우리 팀 선수라는 것이 다행”이라고 했을 정도다.

놀랍게도 그는 경기를 해가면서 새 타법을 완성했다. “여자선수가 이처럼 빨리 새로운 기술을 배울 줄 몰랐다”고 김기중 코치가 말했을 정도로 그의 기술 습득능력은 빨랐다.


● 세터와의 호흡, 줄어든 리시브 부담

2번째 진화의 이유는 세터 조송화와의 호흡이었다. 5시즌을 함께 해온 덕분에 이제는 조송화가 편하게 공을 올려주는 사이가 됐다. 두 사람이 눈빛만으로도 예측이 가능한 정도로 친해졌다. 김다솔은 힘 있고 빠른 연결로 이재영의 새 타법과 점프를 살려줬다. 2명 세터와의 호흡이 좋아지면서 지금은 다양한 방식의 공격이 코트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3번째 변화는 줄어든 리시브 부담이다. 흥국생명의 FA선수 김미연 영입효과 가운데 하나다. 상대팀에서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면 이재영보다는 김미연을 집중 공략했다. 그 덕분에 이재영에게 몰리던 서브폭탄이 사라졌다. 이번 시즌 638개의 서브를 받았다. 리시브효율은 42.16%였다. 지난 시즌 1052개와 비교하면 400개 이상 줄었다. 이재영의 수비와 리시브 부담이 줄고 더 자주 공격에 가담하게 된 것이 흥국생명에게는 훨씬 이익이었다.

● 넓어진 시야와 인간적인 성숙

4번째는 배구기술이 아닌 정신의 변화다. 인간적으로 성숙해졌다. 이전까지는 배구만 잘하는 23살의 어린 선수였지만 이제는 동료와 팀을 먼저 생각하는 큰 선수로 성장하고 있다. 훈련 때 그를 바라보는 후배들에게 격려의 말을 잊지 않고 선배들의 멋진 플레이가 나오면 살갑게 칭찬하며 팀의 분위기를 올린다. 팀의 에너지를 만드는 역할도 주저하지 않는다.

“모든 감독들이 좋아할 선수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훈련을 열심히 하고 몸 관리도 잘한다. 배구를 워낙 좋아하고 잘해야 한다는 목표가 뚜렷하다”고 박미희 감독은 평가했다. 그의 체지방은 V리그 여자선수 가운데 가장 낮은 한 자릿수다. 식스팩의 몸을 가졌다. 이런 철저한 자기관리도 중요하지만 박미희 감독은 인간적인 성숙에 더 많은 점수를 준다.

“나만이 아닌 주위와 동료, 팀을 생각하는 시선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배구를 잘하는 선수는 많았지만 동료들이 인정하고 존경할 만한 좋은 선수로 남기는 어렵다. 이재영은 그런 면에서 성숙해졌다. 훈련장이나 코트에서도 그런 모습이 많이 보인다”고 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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