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이재영. 스포츠동아DB
마침내 흥국생명이 통산 5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 체력방전을 딛고 책임감으로 일어서다
바로 직전 도로공사와의 홈경기에서 3-1로 패한 뒤 어느 상식 없는 사람이 SNS에서 그의 가족을 언급하며 비난했던 악플 탓에 심신이 흔들렸지만 코트에서만은 훌훌 털어내고 경기에 집중하는 정신력이 놀라웠다.
시즌을 앞두고 이재영은 오랜 국가대표 차출의 후유증 탓에 거의 탈진상태로 팀에 합류했다. 어깨를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였다. 박미희 감독은 “훈련보다는 우선 쉬게 해야 한다. 너무 지쳐 있다”며 숙소 대신 집으로 돌려보냈다. 악전고투 속에서 1라운드를 버틴 이재영은 2라운드에 바닥을 찍은 뒤 3라운드부터 상승세를 탔다. 특히 정상으로 돌아선 4라운드 이후 클러치 상황마다 팀을 이끌었다. 덕분에 가장 점수가 필요할 때는 동료는 물론 상대팀도 그를 먼저 바라봤다. 시즌 공격성공률은 38.61%. 2014~2015 데뷔시즌 다음으로 높았다.
● 달라진 이재영을 만들어준 새 타법
야구로 치자면 투수가 공을 릴리즈하는 포인트가 달라졌고 새로운 변화구까지 추가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이 덕분에 상대 수비수는 공이 어디로 날아올지 예측이 더 어려워졌다. 같은 팀의 김해란도 “공이 어디로 올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재영이 우리 팀 선수라는 것이 다행”이라고 했을 정도다.
● 세터와의 호흡, 줄어든 리시브 부담
3번째 변화는 줄어든 리시브 부담이다. 흥국생명의 FA선수 김미연 영입효과 가운데 하나다. 상대팀에서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면 이재영보다는 김미연을 집중 공략했다. 그 덕분에 이재영에게 몰리던 서브폭탄이 사라졌다. 이번 시즌 638개의 서브를 받았다. 리시브효율은 42.16%였다. 지난 시즌 1052개와 비교하면 400개 이상 줄었다. 이재영의 수비와 리시브 부담이 줄고 더 자주 공격에 가담하게 된 것이 흥국생명에게는 훨씬 이익이었다.
● 넓어진 시야와 인간적인 성숙
“모든 감독들이 좋아할 선수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훈련을 열심히 하고 몸 관리도 잘한다. 배구를 워낙 좋아하고 잘해야 한다는 목표가 뚜렷하다”고 박미희 감독은 평가했다. 그의 체지방은 V리그 여자선수 가운데 가장 낮은 한 자릿수다. 식스팩의 몸을 가졌다. 이런 철저한 자기관리도 중요하지만 박미희 감독은 인간적인 성숙에 더 많은 점수를 준다.
“나만이 아닌 주위와 동료, 팀을 생각하는 시선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배구를 잘하는 선수는 많았지만 동료들이 인정하고 존경할 만한 좋은 선수로 남기는 어렵다. 이재영은 그런 면에서 성숙해졌다. 훈련장이나 코트에서도 그런 모습이 많이 보인다”고 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