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강지광. 사진|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먼 길을 돌아왔다. SK 와이번스 투수 강지광(29)은 특유의 함박웃음에 데뷔 첫 승의 감격스러운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강지광에게 24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서 열린 KT 위즈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경기다. 8회 구원 등판해 삼자범퇴로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하면서 제 커리어에 ‘1승’이라는 첫 발자국을 남겼다. 타자에서 투수로 포지션을 옮겨 맞이한 두 번째 시즌의 출발이 좋다. 그는 “엄청 큰 선물을 받았다. 이제는 결실을 맺을 때라고 생각한다. 잘하고 싶은 욕심과 많이 싸우고 있다”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마음은 비우고, 매 구 최선을 다해 던지는 것이 가장 달라졌다”고 기뻐했다.
11년 만에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2009년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냈으니 사실상 동료들과 1군에서 새 시즌의 출발을 함께하는 것이 처음이다. 2군에서 혹독한 준비과정을 함께한 제춘모 퓨처스팀 투수코치가 개막전 엔트리에 합류한 데 대해 가장 먼저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이 짧은 말이 근래 강지광의 마음을 꽉 채웠다. 그는 “11년 만에 한 번도 팀에서 방출되지 않고 개막 엔트리에 든다는 것은 참 희귀한 일”이라며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염경엽 감독님부터 손혁, 최상덕, 제춘모 코치님, 가족들까지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다”며 웃었다.
투수에서 타자로, 타자에서 다시 투수로 복귀하는 데는 쉽지 않은 결단이 선행되어야 했다. 기필코 타자로 성공하겠다는 강지광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이 2018년 SK 단장을 지냈던 염경엽 신임 감독의 설득이었다. 강지광은 “감독님은 마치 1~2년 앞을 내다보시는 것 같다. 투수로서의 내 재능을 봐주셨다”며 “타자에 대한 욕심이 있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감독님의 확신에 찬 표정과 행동, 믿음에 설득을 당했다. 그것이 오늘의 승리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염 감독은 강지광의 성장이 향후 3~4년 내 SK의 불펜 전력을 강화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투수로 돌아온 첫 해였던 2018시즌엔 2군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달라져야 했다. 코칭스태프와 머리를 맞대 무기를 발견했다. 150㎞ 거뜬히 넘기는 직구에 체인지업을 섞는 ‘눈속임’에서 방향을 찾았다. 강지광은 “최고의 직구는 하재훈이, 최고의 가짜 볼은 내가 갖고 있다. 150㎞를 던지면 누구든 위압감이 있지만, 타자들 입장에선 ‘생각보다 만만하다. 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타자들과의 미묘한 싸움을 이제야 경험하고 있다. 150㎞를 던지는 내 속임수 같은 공이 결정적으로 상대 타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주위에 조력자가 많다. 토종 에이스 김광현도 강지광의 곁에서 살뜰한 조언과 격려를 함께 보내주고 있다. 강지광은 “플로리다, 오키나와 스프링캠프부터 시범경기까지 광현이 형이 타자를 상대하는 자기만의 팁을 알려줬다”며 “광현이 형은 계산속에 실패가 없다. ‘150㎞를 던지면 그 다음엔 151㎞을 던져야하고, 그 다음은 152㎞를 던져야 한다. 투수는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단순한 말로 들릴 수 있지만, 형의 내면에 있는 뜻이 느껴졌다”고 했다.
이어 “늘 ‘네가 잘됐으면 좋겠다. 네가 이런 식으로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개막전에도 본인이 더 긴장되었을 텐데 나를 많이 챙겨줬다. 그런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고, 고마운 마음이 크다”는 속마음을 꺼냈다.
염 감독은 강팀의 필수요건으로 7~9회 달아나고, 따라잡는 ‘뒷심’을 강조한다. 추격조를 맡은 강지광의 역할이 필승조만큼이나 중요한 이유다. 강지광도 “어떤 상황이든 나의 에너지를 동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런 에너지가 전달된다면 추격조지만 언제든 역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항상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난다. 두 아들을 키우는 강지광은 최근 세 아이의 아빠가 됐다. 이제 10주째에 접어든 새로운 축복은 10월 강지광의 품에 안길 예정이다. 강지광은 “가족이 없었다면 오늘도 없었을 거다. 아내에게 고맙다”며 “10월엔 동료들과 함께 가을야구를 해서 SK 팬들에게도 우승을 선물해드리고, 가족들에게도 좋은 선물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