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챔피언결정전은 배구가 이긴 날

입력 2019-03-26 2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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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박기원 감독(왼쪽)-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천안|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6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벌어진 2018~2019 도드람 V리그 챔피언결정전 3차전을 앞두고 벌어진 두 팀 사령탑의 인터뷰. 사람들의 입에 오랫동안 오르내릴 명언이 많았다.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이 상대팀 사령탑을 향한 칭찬이 먼저 귀에 쏙 들어왔다. 1차전 5세트 9-6에서 역전 당했던 것을 곱씹으며 “기적이 일어났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명장이다”고 했다. 두 팀이 전력을 다해 싸우는 상황에서 좀처럼 들어보기 힘든 발언이었다.

박 감독은 한참 뜸을 들이더니 “이번 챔피언결정전은 배구가 이겼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했다. 그는 발언의 배경도 설명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두 팀 모두 최선을 다하고 페어플레이를 하는 멋진 경기가 1,2차전에서 나왔다. 두 팀 가운데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지겠지만 경기의 수준이 좋았고 팬들도 좋아해서 배구의 가치를 높여줬다. 결과는 감독이 마음대로 못하지만 경기자체는 최고”라고 했다. 2002년 프로야구 LG 트윈스와의 한국시리즈 때 우승을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 김응용 감독이 했던 “상대 김성근 감독이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알고 대비해 힘들었다. 마치 야구의 신과 싸우는 느낌이었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베테랑 감독의 찬사를 전해들은 최태웅 감독은 스스로를 낮췄다. “아직 배울 것이 많다”면서 명장이라는 말에 손사래를 쳤다. 그도 이번 챔피언결정전이 수준 높은 경기를 통해 배구 팬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두 팀 모두 악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선수들도 아픈 몸이지만 팀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팀에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좋은 경기를 잘해왔고 3차전도 재미있는 경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기대처럼 3차전도 명승부였다. 2세트에서 30점 넘게까지 승패를 가리지 못할 정도로 총력전이 벌어졌다. 현대캐피탈 이승원이 수비를 하다 다치자 대한항공 진성태가 먼저 가서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로 멋진 장면도 보여줬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전쟁을 하는 배구는 신사의 스포츠, 존중의 경기라고 한다. 큰 경기 때마다 서로를 깎아내리고 상대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도 과거에는 있었지만 이번 봄 배구는 전혀 달랐다. 여자부 플레이오프에서 패한 GS칼텍스 차상현 감독이 친구인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면서 새로운 문화가 V리그에 자리를 잡아간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결과를 존중하면서 승자에게는 진심으로 축하하고 패자에게는 진심어린 위로를 해주는 모습은 V리그를 더욱 품위 있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이번 봄 배구는 정말로 박기원 감독의 말처럼 어느 팀이 이긴 것이 아니라 배구가 이겼다.

천안|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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