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존중과 인정, 달라진 V리그의 봄 배구 풍경

입력 2019-03-28 13: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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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박미희 감독. 스포츠동아DB

2018~2019시즌 도드람 V리그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3월15일부터 벌어진 봄 배구는 전력을 다한 선수들의 플레이와 승리를 향한 열정으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모든 경기는 박진감이 넘쳤다. 유난히 감동을 주는 장면도 많았다.

27일 김천실내체육관에서 흥국생명의 우승이 막 확정된 뒤였다. 피로누적으로 다리가 풀렸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뛰던 도로공사의 39세 베테랑 이효희, 38세 정대영이 경기가 끝나자마자 상대팀 박미희 감독에게 달려가서 인사를 했다. 이들은 “정말 이기려고 했는데 흥국생명이 너무 잘해서 이기지 못했어요. 선생님 축하해요”라고 인사를 했다.

박미희 감독도 이들을 껴안으면서 화답했다. “너희들 정말 대단했어. 이기기 힘들더라”면서 패자를 진심으로 위로했다. 박미희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그녀들이 너무 대단했다”고 또다시 말했다.

벼랑 끝에서도 “우리 선수들이 욕심이 많아서 역전을 기대한다”던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은 “박미희 감독님이 고생하셨다. 지난 시즌 꼴찌에서 통합우승을 했는데 우리도 그랬다. 힘들었을 텐데 축하드린다”면서 깨끗이 결과를 받아들였다. 상대가 잘한 것을 인정하고 축하도 했다.

26일 현대캐피탈-대한항공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은 3연패로 물러선 뒤에도 의연하게 인터뷰에서 말했다. “현대캐피탈은 우승할 자격이 충분히 있는 팀이다.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앞섰다”고 했다. 경쟁하는 사령탑의 입에서 쉽게 나올 말이 아니었다. 이런 고급스러운 말과 행동이 리그의 품격을 올려준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플레이오프에서 도로공사와 15세트 혈투를 벌였던 GS칼텍스의 차상현 감독은 품격 있는 패배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잘 보여줬다. 차상현 감독과 김종민 감독의 포옹은 신사의 스포츠 배구의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GS칼텍스 선수들은 도로공사 선수들에게 축하의 문자도 보냈다.

요즘 V리그가 많은 팬의 사랑을 받고 인기가 치솟는 이유가 궁금한 사람이 많다.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있기에 쉽게 이것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하나 분명한 것은 V리그에 몸담은 다양한 구성원들이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이전과는 다른 좀더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생각과 행동,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이전과는 달라진 봄 배구의 모습은 V리그의 새로운 문화로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다.

눈을 잠시만 밖으로 돌려보면 서로를 헐뜯고 ‘내로남불’에 들으면 화가 나는 저질스런 발언이 넘쳐난다. 국민들은 정치권을 향해 수준 높은 대화와 상대방 존중, 결과의 승복, 아름다운 패배 인정과 승자의 넓은 아량 등을 기대하지만 대표선수로 뽑아놓은 정치인들은 정반대의 행동을 한다. 국민의 충고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배구처럼 선수교체를 통해 이런 불만스런 흐름을 바꿔보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정치보다는 품격이 있는 V리그에 사람들이 열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본다면 대한항공 박기원 감독의 표현처럼 이번 봄의 진정한 승자는 V리그와 배구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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