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큐 ‘극한직업’ PD들 “영화 속 마약반처럼, 우린 극한 PD들”

입력 2019-03-29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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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극한직업’ 심예원 CP(왼쪽)와 임우식 PD는 “영화 ‘극한직업’이 흥행해 우리(프로그램)도 입소문이 났다”며 웃었다. 두 사람은 11년간 방송한 장수 프로그램을 위해 “현장의 진솔함”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EBS 다큐 ‘극한직업’ PD들이 말하는 극한직업 11년

EBS 심예원 CP
총 5팀 구성…제작진만 20명 넘어
비연예인 찍다보니 세팅부터 험난
카메라 부서지고 배편 끊기기 일쑤

앤미디어 임우식 PD
영화 덕에 입소문…조카도 알더군요
무엇보다 섭외가 수월해져 좋아요
예능 유머코드 활용땐 우려되기도

16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개봉영화 흥행 2위에 오른 ‘극한직업’. 마약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치킨 집을 위장 개업한 경찰 마약반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덕분에 새삼 주목받는 이들이 있다. 바로 11년이나 앞서 그 제목을 내건 ‘원조’, EBS 다큐멘터리 ‘극한직업’의 제작팀이다. 그 주역인 심예원 CP와 임우식 PD는 “영화 덕분에 프로그램 입소문이 더 났다”며 웃었다.

하지만 이들이 들려준 ‘극한직업’ 제작진의 현실은 영화 속 경찰 마약반원들만큼이나 말 그대로 “극한”이었다. 배편이 끊겨 ‘강제 연장 촬영’을 하고, 생생한 장면을 얻어내느라 ‘고프로’(소형카메라)를 한 자리에서 세 대나 부수기도 했다.

“1000만 영화와 ‘윈윈’한 것 같아 우리도 영광이에요. 제목이 주는 힘이 참 세네요, 하하하!”


● “영화 덕분에 우리도 입소문, 영광”

2008년 2월 시작한 ‘극한직업’은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앤미디어, KP커뮤니케이션이 함께 제작한다. 18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EBS 본사에서 만난 심예원 CP와 앤미디어 임우식 PD는 “우리를 뺀 PD들은 전부 촬영 때문에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어 못 왔다”며 아쉬워했다. 심 CP는 지난해부터 프로그램의 제작 관리를 맡고 있다. 임 PD는 2016년부터 ‘극한직업’에 참여해왔다.

“총 다섯 개 팀이 ‘극한직업’을 찍는다. 한 팀당 두 명의 PD와 작가, 조연출이 제작을 지휘한다. 여기에 나머지 스태프를 포함해 제작진은 스무 명이 넘는다. 카메라가 익숙하지 않은 비연예인을 찍어야 하니 세팅부터 공을 들여야 해 인력이 꽤 필요하다. 섭외도 만만치 않다. ‘우리 극한직업 아니에요’라며 거절하는 사람도 많고, 촬영 나갔는데 ‘볼 것도 없는데 왜 왔냐’며 의아해하기도 한다.”(심예원 CP, 이하 심)

고된 일정으로 쉴 틈 없이 바쁜 이들에게 1월 개봉한 영화 ‘극한직업’은 신기함 그 자체였다. 심 CP와 임 PD 모두 “이제야 사람들이 ‘네가 그 프로그램 담당 프로듀서였어?’라고 놀란다”며 웃음을 지었다.

“바로 어제 군대에서 휴가 나온 조카와 저녁식사를 하는데 ‘영화 덕분에 프로그램을 알았는데 삼촌 이름이 연출자로 나와 놀랐다’고 말했다.(웃음) 다른 PD들도 요즘 부쩍 ‘프로그램 잘 보고 있다’는 연락을 많이 받는다더라. 시청층도 한층 넓어진 느낌이고, 여러 프로그램에서도 패러디돼 좋다. 다만 예능 속 유머코드로 활용될 때 자칫 잘못된 인식을 주는 사례가 나올까봐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임우식 PD, 임)

EBS 교양프로그램 ‘극한직업’의 심예원 CP(오른쪽)와 임우식 PD가 인터뷰에 앞서 밝은 미소를 짓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출연자도 PD들 걱정. ‘그쪽이 더 극한’”

심 CP와 임 PD는 프로그램이 장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보다 수월해진 섭외”에서 체감한다고 한다. ‘그게 뭔데’라며 외면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극한직업’을 알아보고 경계를 푼다.

“아이템 선정, 출연자 섭외, 열흘의 촬영 기간까지 한 회 방송을 위해 거의 한 달을 쓴다. PD들이 신경 써야 할 것이 그만큼 많다. 출연자들은 우리에게 ‘오히려 그쪽이 더 극한직업인 것 같은데’라고 한다. 우리의 고생을 알아주는 것인지, 출연자가 ‘거기에 이런 직업이 있대’라며 추천을 해주기도 한다.”(심)

배 위에서 2박3일을 보내고, 심마니를 따라 산을 뛰어다니느라 인내심과 체력 모두 정점을 찍은 ‘극한직업’ PD들. 그런 고생 끝에 이제 주변에선 “일등 신랑감”으로 꼽히게 됐다며 임 PD는 웃었다. 그 중에서도 “뱃멀미 없는 사람이 최고”라며 심 CP는 웃음을 보탰다.

가장 힘들었던 현장을 물으니 임 PD는 단번에 2017년 9월 방송된 ‘독충을 찾는 사람들’ 편을 꼽았다.

“불개미, 흰개미, 말벌 등을 잡으러 다니는 분들을 따라다녔다. 한여름에 보호장비를 쓰고 촬영을 하는데, 생업이 걸린 출연자들의 작업을 방해하면 안 되기 때문에 빨리 움직여야 했다. 산 하나를 타면 그대로 ‘방전’이 돼 PD들이 서로 배턴 터치를 하며 촬영했던 기억이 난다.(웃음)”(임)

다섯 번 넘게 등장한 단골 소재인 잣 채취 현장에서는 새 앵글을 잡느라 장대 끝에 소형카메라를 다는 모험까지 했다고 돌이킨 임 PD. 심 CP는 “물고기를 잡는 어부도 많이 등장해 이제 남은 앵글은 ‘물고기 입 속’만 남았다는 농담도 한다”며 생생한 한 장면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고충을 드러냈다.


● “세상의 모든 극한직업을 다룰 때까지!”

오랜 방송 기간으로 웬만한 직업군은 다 다뤘을 것 같지만, 심 CP와 임 PD는 “그래도 아직 많이 남았다”고 말한다. “세상에 극하지 않은 직업은 없다”는 그들의 말대로라면, 이 땅의 모든 직업인들이 ‘예비 출연자’다.

“새로 생겨난 것보다 이미 다룬 직업군이 더 많은 상황이다. 그래서 어떤 그림을 보여줄지 고민을 오래도록 한다. 정체성을 흔들지 않는 테두리 안에서 연출 기법 다양화 등을 시도하려 노력한다. 이런 고민이 프로그램의 생명력을 연장시키는 큰 힘이라 본다.”(임)

심 CP는 “현장의 진솔함을 최대한 담아내려는 마음가짐”이 ‘극한직업’의 장수 비결이라고 믿고 있었다. 또 “직업을 보는 시선의 담백함, 본질로 승부하겠다는 마음을 앞으로도 잃지 않으려 한다”며 다부진 각오를 덧붙였다.

● 심예원 CP

▲ 1972년 10월13일생
▲ 1995년 EBS 입사
▲ 1998년 EBS ‘다큐 이 사람’ 연출
▲ 2018년 EBS ‘다큐프라임-청춘전당포’ 3부작 연출
▲ 2018년 ‘극한직업’ 제작총괄
▲ 2019년 한국PD연합회 ‘이달의 PD상’ 수상(청춘전당포)


● 임우식 PD

▲ 1973년 5월20일생
▲ 2008년 앤미디어 입사
▲ ‘세계테마기행’ ‘길 위의 인생’ ‘성난 물고기’ 등 제작
▲ 2014년 EBS 방송대상(세계테마기행)
▲ 2016년 ‘극한직업’ 연출·EBS 우수프로그램상 협력제작사상
▲ 2019년 앤미디어 제작본부장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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