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떨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송민섭. 수원 | 최익래 기자
프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밟은지 1518일째 되는 날. 만으로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연에 머물렀던 송민섭(28·KT 위즈)은 비로소 주인공이 됐다. 프로 입단 자체만으로 감동의 스토리였지만,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매일 같이 굵은 땀방울을 흘렸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KT는 23일 수원 두산 베어스전에서 3-2로 승리했다. 9회초까지 0-2로 끌려갔지만 9회 황재균의 2타점 적시타로 승부를 연장으로 이었고, 송민섭이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때려냈다. 창단 첫 두산 3연전 싹쓸이로 중위권 판도를 어지럽혔다.
KT는 2013년 창단 트라이아웃을 실시했다. 22명이 뽑혔지만 지금까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건 송민섭이 유일하다. 타격과 수비, 주루는 물론 크지 않은 체구에 비해 펀치력까지 갖춘 자원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장점은 투지다. 경기 내내 덕아웃에서 파이팅을 넣느라 매일 같이 목이 쉬기 일쑤다. KT가 1군에 진입한 2015년 28경기에서 타율 0.250, 1타점을 기록했고 상무 야구단에 입대했다.
지난해 복귀했지만 기회는 많지 않았다. 대수비와 대주자 위주로 47경기에 출장해 27타수 4안타(0.148)의 기록만 남겼다. 올 시즌 각오는 절치부심이었다. “이제 한국나이로 스물아홉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걸 그라운드에 쏟는 한 해로 만들겠다.”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그의 각오였다. 이강철 감독도 그를 지켜보며 “확실히 투지가 보인다. 쓰임새가 요긴할 것”이라고 칭찬했다.
송민섭은 올 시즌 많지 않은 기회 속에서도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주전으로 도약하진 못했지만 외야에 빈틈이 생길 때면 이강철 감독이 가장 먼저 찾는 카드가 됐다. 그리고 23일 경기에 마침내 주인공이 됐다.
야구를 시작하고 처음 경험한 끝내기. 매일 같이 꿈꿨던 순간이지만 헬멧을 벗어던지고 껑충껑충 뛰는 것 말고는 어떤 표현도 하지 못했다. 끝내기 직후 만난 그는 “세리머니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덕아웃에 들어와 뺨을 한 대 때렸다. 거짓말 같고 얼떨떨하다. 정말 아팠지만 여전히 실감이 안 난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내 평정을 찾은 그는 “믿기지 않는 영화의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고 했다. 동료들의 격한 축하에 헬멧이 부서졌을 정도다.
끝내기는 물론 경기 후 방송사 인터뷰도, 홈 팬들 앞 수훈선수 단상에 선 것도 송민섭에게는 첫 경험이다. 그는 “아마 부모님께서 계속 울고 계실 것 같다. 가장 먼저 연락을 드려야겠다”며 “너무 늦게 쳐서 죄송하다. 이제라도 효도하는 아들이 되겠다”며 감격의 순간, 부모님을 먼저 떠올렸다.
수원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