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여성시대’ DJ로 20년①] 1만4600시간·5만8000통 사연…“청취자들의 힘이죠”

입력 2019-06-05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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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양희은이 4일 MBC 표준FM ‘여성시대’ 진행 20주년을 맞아 “청취자들과 연대, 공감의 파도, 거대한 어깨동무가 주는 힘“을 장수 비결로 꼽았다. 양희은(왼쪽)과 그의 다섯 번째 파트너 서경석이 이날 서울 상암동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두 팔로 하트를 그리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MBC

가수 양희은이 4일 MBC 표준FM ‘여성시대’ 진행 20주년을 맞아 “청취자들과 연대, 공감의 파도, 거대한 어깨동무가 주는 힘“을 장수 비결로 꼽았다. 양희은(왼쪽)과 그의 다섯 번째 파트너 서경석이 이날 서울 상암동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두 팔로 하트를 그리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MBC

■ 양희은, MBC 표준FM ‘여성시대’ DJ로 20년

20년간 새벽 기상…자기관리도 철저
그만해야지 싶어도 청취자들 때문에
2001년 희제 엄마 사연 아직도 눈물
9번째 ‘골든 마우스’, 그저 영광이죠

“20년 동안 ‘여성시대’라는 대학에 다니며 공부한 기분이에요.”

가수 양희은(67)의 청아하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20년째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한번도 거르지 않고 20년 동안 MBC 표준FM ‘여성시대’의 마이크를 잡은 그는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양희은은 새벽 5시30분이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고 한다. 그리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라디오부스로 향했다. “하루하루가 쌓여” 지금에 이르렀다. 자신도 “이만큼 할 줄 알았다면 절대 시작하지 못했을 일”이라고 여긴다. 양희은의 라디오 DJ 20주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가 4일 서울 마포구 MBC 사옥에서 열렸다. 양희은이 직접 들려준 “‘여성시대’와 함께 한 20년”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 1만4600시간 ‘온 에어’

양희은은 1999년 6월7일 ‘여성시대’의 DJ로 처음 나섰다. 그가 지금까지 DJ로 보낸 시간은 약 1만4600시간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는 여전히 사연을 전하는 데 있어서 고민을 거듭한다. “사연을 미리 읽은 뒤 청취자에게 전할까, 아니면 ‘초견(악보를 보고 처음부터 바로 연주하는 것)’으로 전할까 고민한다”고 했다. 사연 속 사투리를 실감나게 전하기 위해 “드라마 배우들의 연기를 유심히 듣는” 과정도 거친다. 흠이 없는 진행자가 되기 위해 매 순간 애쓰지만 “DJ로서의 비결은 없다”며 겸손함을 보인다.

“‘여성시대’는 가슴으로 쓰는 편지로 이뤄지는 곳이다. 그저 정확하게 전달하면 그 뿐이다. 프로그램의 힘은 사연을 보내주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고 믿는다. ‘그만둬야지’ 싶으면서도 계속 했던 이유는 청취자들 간의 ‘보이지 않는’ 연대가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연을 듣고 ‘나도 그랬어’라고 느끼는, 청취자 사이에 형성되는 공감의 파도를 봤다. 그 거대한 어깨동무가 주는 힘이 분명 있다.”

매일 오전 9시5분 방송을 준비하느라 20년간 새벽에 눈을 뜨니 이젠 “완전한 ‘아침형’”이 됐다. 해가 지고는 가급적 외부에 출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늦게 잠들면 다음날 방송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매사 철저한 그 또한 아찔한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언젠가 오전 11시 방송인데 40분 늦게 도착했다. 눈이 매섭게 내렸다. 자동차를 버리다시피 하고 지하철에 버스를 갈아타고 왔는데도 방송 끄트머리에 도착했다. 맥이 다 빠지더라. 그 날은 눈이 딱딱하게 얼어 다음날 일찍 올 자신도 없었다. 아예 방송국 근처 호텔에서 외박을 해버렸다. 하하하!”

사진|MBC

사진|MBC

● 5만8000여 통의 사연

지금까지 양희은이 읽은 청취자 사연은 5만8000여 통에 달한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을 물으니 단번에 “2001년 4월 소개된 ‘희제 엄마’ 추희숙 씨의 편지”를 꼽았다. “어떤 사연도 죽음만큼은 못 한다”며 양희은은 울컥했다.

“유방암 말기의 엄마가 6살 아들을 향해 쓴 편지를 사흘에 걸쳐 전했다. ‘여성시대’ 애청자들의 뜨거운 마음이 음성사서함에 쏟아졌다. 어떤 청취자는 귀한 휴가를 희제 엄마의 병상 곁에서 보내기도 했다. 과일즙으로 입술이라도 축여달라며 소정의 금액을 보내준 분들도 있다. 희제 엄마도 전화 연결로 청취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그이가 떠났다. 30주년 음반을 만들 때였다. 그 음반을 희제 엄마를 떠올리며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참 잊을 수 없다.”


● 다섯 명의 ‘양희은의 남자들’

양희은과 함께 ‘여성시대’를 이끈 DJ는 방송인 김승현을 시작으로 전유성, 송승환, 강석우를 거쳐 현재 서경석이다. 파트너가 다섯 번이나 바뀐 것에 “내 팔자가 세서 그런가”라며 웃음을 터뜨리는 그다. 지난 DJ들을 향해서는 “저이들이 더 ‘좋은 물’을 찾아 떠난 것”이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서경석은 2015년 7월부터 양희은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양희은의 다섯 번째 남자가 아닌 50번째 남자가 되어도 영광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희은 누님의 어마어마한 프로정신에 크게 감격한다. 방송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철저하다. 특히 식사시간이 그렇다.(웃음) 먹는 것부터 사소한 모든 것을 철저하게 신경써왔기 때문에 20주년 기념 간담회도 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 9번째 ‘골든 마우스’ 주인공

양희은은 7일 MBC에서 20년 근속한 라디오 DJ들에게 주어지는 골든 마우스를 받는다. 그간 골든 마우스를 손에 쥔 주인공은 이종환부터 임국희까지 8명이 전부다. 양희은은 9번째 수상자다.

영광스러운 자리임에도 양희은은 들뜨지 않으려 한다. 그저 “몸을 담그니 후딱 지났을 뿐”이라고 낮춘다. 하지만 라디오에 대한 애정만큼은 그 누구보다 진하다. “동네 공장 앞 제니스 라디오에 귀를 쫑긋 기울이고 있던 1960∼70년대 어릴 적을 떠올리게 하는” 라디오는 그에게 과거이자, 현재다. 숨을 수 있는 ‘피난처’이면서도 “긴 세월 짝사랑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여성시대’의 마이크를 내려놓는 순간조차 양희은은 “특별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전파라는 건 허공에서 흩어지는 것”이니, 자신도 그렇게 되길 원한다고 한다.

● 양희은

▲1952년 8월13일생 ▲1971년 노래 ‘아침이슬’로 가수 데뷔 ▲1975년 대한민국 가수상 ▲1984년 대한민국 가사대상 ▲1987년 ‘아침이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작은 연못’ 등 금지곡 해금 ▲이후 ‘하얀 목련’ ‘내나이 마흔살에는’ ‘슬픔 이젠 안녕’ ‘엄마가 딸에게’ 등 발표 ▲1996년 한국방송대상 가수상 ▲1999년부터 MBC 표준FM ‘여성시대’ 진행 ▲2011년 MBC방송연예대상 라디오부문 최우수상 ▲2019년 MBC 골든 마우스상


● 여성시대

MBC 라디오 표준FM ‘여성시대’는 1975년 ‘여성살롱 임국희예요’의 뒤를 잇는 프로그램이다. 이후 1988년 4월1일부터 프로그램명을 ‘여성시대’로 바꾼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기자 이효춘과 손숙을 거쳐 지금의 양희은으로 진행자가 바뀌었다. 이들 여성 진행자를 중심으로 이종환, 봉두완, 변웅전, 정한용, 김승현, 전유성, 송승환, 강석우 등 남성 진행자들이 마이크 앞에 앉았다. 많은 청취자의 일상적인 사연을 토대로 진행자들의 맛깔스런 입담이 어우러지며 사랑받고 있다.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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