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막내 형과 진짜 형, 그대들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입력 2019-06-1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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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을 상징하는 단어를 고르라면 ‘막내 형’을 꼽고 싶다. 막내와 형, 이 모순된 신조어가 참으로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막내 형의 주인공은 알려진 대로 이강인(18·발렌시아)이다. 2001년생인 그는 실제 막내다. 대부분 1999년생들인 대표팀에 월반으로 합류했다. 그런데 뒤에 ‘형’이 붙었다. 왜 그랬을까. 그냥 막내로 취급하기엔 그의 존재감이 너무 컸다. 그래서 진짜 형들이 나이를 떠나 배려 차원에서 붙여줬다. 이 별명이 신드롬처럼 한국축구를 뜨겁게 달궜다.

예전 같으면 상상조차 힘든 장면이다. 대표팀 막내가 선배들 빨래까지 하던,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은 아니더라도 대표팀의 서열은 엄격하다. 선배와 후배, 이들 사이엔 분명한 선이 존재한다.

하지만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월드컵에 출전한 대표팀은 막내 형의 존재가 상징하듯, 최소한 그런 엄격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배려와 존중, 헌신, 희생, 격려 등이 넘쳐났다. 이걸 모두 합친 말이 바로 ‘원 팀’이다.

그들은 하나로 똘똘 뭉쳤다. 신분도, 나이도, 소속도, 포지션도 따지지 않았다. 중요한 건 U-20대표팀의 일원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추구한 목표였다.

이강인은 형들을 지극히 챙겼다. 매번 형들의 도움에 감사를 전했다. 아울러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에 대한 존중도 남달랐다. 예의상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지난달 대표팀 소집 때부터 대회가 끝날 때까지, 진심을 담은 마음은 한결같았다.

정정용 감독의 수평 리더십도 주목을 받았다. 그는 전술을 준비하기에 앞서 선수들 마음을 먼저 얻었다. 자율을 우선시했고, 개성을 존중했다. 그 마음이 선수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선수와 감독은 스스럼이 없었다. 그는 선수들을 다그치지 않았다. 잘못을 꾸짖기보다는 스스로 깨닫고 고쳐나가는 선수로 만들었다. 그 과정을 통해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했다. 이 모든 건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벤치에 앉은 선수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그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인상을 쓰며 시샘을 한다면 팀 분위기가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다. 이번 대표팀 벤치 멤버들은 경기에 나서지 못해 서운할 법도 했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체력이 떨어진 동료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더 크게 응원했다. 경기에 나선 선수들이 그 고마움을 왜 모르겠는가.

이처럼 선수와 선수, 선수와 코칭스태프, 코칭스태프끼리 쉴 새 없이 토닥이고 격려했다. 그게 곧바로 경기력이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은 이번 대표팀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승승장구하며 남자축구 사상 첫 FIFA 주관대회 결승까지 진출한 대표팀은 결승에서 우크라이나에 1-3으로 졌다. 한반도 전체가 온 마음을 담아 응원했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준우승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그라운드에 놓인 우승 트로피를 우리도 들어올릴 수 있다는 꿈을 꿨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이강인이 골든볼을 수상한 뒤 “내가 아닌 팀이 받은 상”이라고 한 것처럼 대표팀은 충분히 박수 받을 자격이 있다.

스포츠의 궁극적인 목표는 팬들이다. 팬들을 감동시킬 때 존재 이유는 선명해진다. 이번 젊은 태극전사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가장 큰 선물은 무한한 감동이다. 1983년 세계청소년선수권과 2002년 한일월드컵의 4강을 넘어선 단순한 기록뿐 아니라 하나로 뭉친 힘이 얼마나 큰지를 확인시켜준 그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배려와 희생, 그리고 하나 되는 마음은 축구대표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덕목들이다. 아무튼 흥이 넘친 그대들 덕분에 6월은 너무나 행복했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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