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NL 4주차 경기를 통해 대한민국 배구가 확인한 것들

입력 2019-06-17 15: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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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배구대표팀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 사진제공|대한배구협회

한국여자배구 라바리니 호의 힘든 원정이 모두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18일부터 보령에서 벌어지는 VNL(발리볼네이션스리그) 5주차 3경기뿐이다.

외국인 감독 라바리니가 브라질리그를 마치고 팀에 합류해 고작 일주일만 훈련하고 떠난 원정인 데다 윙공격수 3총사(이재영~박정아~이소영)가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빠져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4주차까지 12경기를 치러 1승11패로 16개 팀 가운데 최하위다. 국제배구연맹(FIVB)의 상업적인 목적에 애꿎은 선수들만 혹사당하는 무리한 일정에 고생도 많았다. 몇몇 경기장은 시설도 엉망이었다. 4주차 이탈리아 대회 때는 경기장에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아 선수들이 더 힘들었다. 기온이 30도가 넘는 곳에서 사흘 동안 교체해줄 선수가 모자라 체력적으로 한계가 왔다. 상대팀 이탈리아의 파올라 에고누는 경기 뒤 탈진해 의사가 코트에 들어오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어린 선수들에게 국제대회 경험을 쌓게 한 것 외에 큰 성과는 없었지만 이번 VNL을 통해 확인한 것은 몇 개 있다.

첫째, 우리 팬들의 인내심과 새 대표팀을 향한 기대감이다. 연패를 거듭하며 최하위를 달리지만 아직 라바리니 감독의 지도능력을 비난하는 말은 크게 들리지 않는다. 새 외국인감독에게 그만큼 뭔가를 기대하고 패배 속에서도 좋은 변화가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차해원 감독 때는 많이 달랐다. 같은 패배지만 대표팀의 모습에서 비전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해석한다.

대표팀은 VNL 기간동안에도 먼 곳을 바라보며 훈련을 했다. 경기 당일 체력담당 코치가 정한 메뉴를 소화시키는 등 당장의 경기보다는 올림픽 본선진출을 위한 과정으로서 많은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갔다.

둘째, 대한민국 여자배구 자원의 한계를 확인했다. 공교롭게도 지난 시즌 V리그에서 득점부분에서 톱10에 들었던 토종선수 4명(2위 흥국생명 이재영, 4위 도로공사 박정아, 7위 현대건설 양효진, 8위 GS칼텍스 이소영)이 부상으로 이번 엔트리에서 빠졌다. 풍부한 자원을 가진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우리는 몇몇 에이스급이 빠지면 대표팀 전력의 편차가 크다. 이런 상황에서 라바리니 감독이 어떤 해결책을 마련할지 궁금했는데 아직 답은 나오지 않았다. 더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셋째, OPP와 해결사의 필요성이다. 우리는 하이볼을 처리해줄 대포의 화력이 상대와 비교하면 약했다. 김희진이 열심히 해줬지만 파괴력과 높이가 상대보다 떨어졌다. V리그가 외국인선수를 도입하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V리그 대부분 팀이 OPP 자리에 외국인선수를 쓰면서 하이볼을 처리해볼 경험이 줄어든 토종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2010년 런던올림픽 때 헌신했던 황연주(현대건설)이후 대표팀의 공격을 이끌 대포를 키워내지도 못했다. 새삼 황연주가 위대한 선수였다고 느껴진다. 김연경(엑자시바시)도 안타깝지만 2012년 런던올림픽을 정점으로 차츰 파괴력은 떨어지는 추세다. 누구도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문제점을 해결할 새로운 배구를 찾아야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과 사람이 너무 모자랐다.

연관된 문제지만 갈수록 상대의 서브는 강해진다. 어느 팀도 리시브 성공률이 50%를 넘어가지 않는다면 하이볼을 어떻게 처리해서 점수를 내느냐의 여부가 승패를 가른다. 우리는 김연경이 후위에 있을 때 전위에서 어떻게든 점수를 내줘야 한다. 과제다. 지금은 라바리니 감독이 답을 찾는 중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8월에 벌어지는 올림픽대륙간예선이다. 도쿄올림픽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면 다가올 V리그 일정이 편해진다. 모든 이들이 원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어느 현역 프로팀 감독은 “우리가 본선에 나갈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가 별로 좋지 못했다. 베스트멤버는 아니겠지만 우리가 못 이길 팀도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라바리니 감독은 물론이고 대한배구협회도 대륙간예선전에 모든 것을 걸려고 한다. 이를 위해 대표팀의 소집도 규정(3주)보다 훨씬 긴 조기소집을 통해 많은 훈련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기나긴 대표팀 소집에 불만은 있겠지만 이번에는 전폭적으로 돕겠다는 프로팀의 의지도 있다.

어느 현역 감독은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했다. 라바리니에게 모든 것을 맡긴 이상 잘하기를 바라면서 전폭적으로 도와줘야 할 때라는 것은 모든 V리그 감독들도 잘 안다. 도쿄올림픽에 진출하면 해피엔딩이 기다리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파장이 너무 크기에 이제는 어쩔 수 없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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