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 심우준. 스포츠동아DB
팀의 주전 유격수는 엄청난 상징성을 지닌다. 내야의 사령관이자 센터라인(포수~2루수·유격수~중견수)의 핵심이다. 깊고 빠른 타구를 처리해야 하는 위치의 특성상 강한 어깨와 안정적인 스텝은 필수다.
그러나 주전 유격수로 정착하는 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아마추어 시절 대형 유격수로 각광받던 선수도 프로 무대에서 과거와 전혀 다른 타구 속도 등에 적응하지 못해 포지션을 바꾸는 사례가 적지 않다. 결정적인 실책 하나가 패배와 직결되면 정신적인 부담도 커진다. 그러다 보니 “내가 처리할 수 있는 타구만큼은 확실하게 잡자”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KT 위즈 심우준(24)도 2018시즌을 기점으로 팀의 주전 유격수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인물이다. 1군 데뷔 첫해인 2015시즌부터 2017시즌까지는 박기혁(현 KT 주루·수비코치)의 뒤를 받치며 2루와 3루 수비를 병행했고, 지난해 KT 유격수 중 가장 많은 793이닝을 소화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올 시즌 초반에는 공격력 강화를 위해 황재균이 유격수로 나서기도 했지만 지금은 심우준이 그 자리를 꿰찼다. 유격수로 총 629이닝을 소화했다(73 선발출장). 포지션이 확실히 고정된 덕분에 한층 더 야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KT 이숭용 단장도 “2018시즌을 지켜보며 심우준의 기량이 많이 향상할 줄 알았다”고 했다. 30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심우준의 유격수론에 귀를 기울였다.
● 상황에 따른 움직임 정립
과거에는 단순히 타구를 잡고 송구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 순간부터 심우준의 두뇌회전이 빨라진다. “상황에 따른 움직임이 정립됐다. 타자의 주력 등을 빨리 파악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생각한다. 더블플레이 등 다른 야수와 연계한 플레이 때도 마찬가지다. 시야를 넓혀야 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억지로 송구해서 한 베이스를 더 주는 경우 등의 잔실수를 줄이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30일 경기에서 나온 결정적인 수비도 여기에 기인한다. 3-2로 앞선 6회 2사 만루에서 한화 정근우의 깊숙한 타구를 잡아 과감하게 2루에 던져 1루주자 최재훈을 아웃시켰다. 2루 주자의 득점을 막은 것 자체만으로 박수를 받을 만한 상황에 아예 실점 없이 이닝을 끝냈다. 심우준은 “최재훈 선배께는 죄송하다”며 “주력이 빠르지 않다고 판단하고 송구했다. 그만큼 미리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고 밝혔다. KT 이강철 감독은 “심우준이 공수에 걸쳐 승리(3-2)의 일등공신”이라고 칭찬했다.
● 사령탑의 믿음
이 감독의 믿음은 심우준이 마음껏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기자를 향해 “야구 잘하는 선수를 인터뷰해야 하지 않느냐”고 농담을 던지면서도 흐뭇한 눈빛으로 심우준을 바라봤다. 심우준도 몇 번이나 “감독님이 믿어주시는 덕분”이라고 했다. “선발출장하고도 두 타석 정도 타격 결과가 좋지 않으면 교체를 걱정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은 계속 그 자리에서 뛰다 보니 심리적으로도 안정된다. 수비에 자신감이 붙으니 타석에서도 부담이 덜하다.”
● 좋은 유격수란?
말 마디마디에 여유가 느껴졌다. 이제는 ‘좋은 유격수’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소신껏 얘기할 수 있는 단계다. 그만큼 포지션에 대한 철학이 확고해졌다는 의미다. “유격수는 수비의 중심이다. 넓은 시야와 투수가 안심하고 던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김재호 선배의 수비를 보면 정말 안정적이다. 급할 때나 다소 여유가 있을 때나 움직임이 한결같다. 감탄하기도 한다.”
앞으로의 각오도 전했다. “그동안 선배들이 많이 이끌어주셨다. 이제는 유격수 위치에서 내가 앞장서 선배들을 이끄는 능력을 보여주고 싶다.” 변화를 엿볼 수 있는 한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