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도로공사 테일러 사건의 숨겨진 얘기들

입력 2019-12-12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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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 사진제공|도로공사 배구단

테일러. 사진제공|도로공사 배구단

도로공사는 지난 9일 테일러와의 계약해지를 발표했다. 보통 이런 일은 쉬쉬하며 일을 처리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도로공사는 손해보상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그 과정에서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과 이면계약의 존재까지 털어놓았다. 이면에 오갔던 얘기들을 들어보면 지금 V리그 외국인선수 선발제도의 문제점이 확인된다.

가장 먼저 도로공사는 잘못을 했다. 사람이 바뀔 수도 있다고 믿었던 순진한 생각이 문제였다. 이미 흥국생명에서 2차례나 문제를 일으켰던 선수였다. 대외적으로 말 못할 사정으로 앳킨슨을 내보냈던 뒤여서 시간이 없었다. 개막은 곧 다가오는데 지난 시즌처럼 또 토종선수들로만 시즌 초반을 꾸려가기가 부담스러웠다. 이바나가 뛰지 못할 때 에이스 박정아에게 너무 많은 하중이 갔다. 하필 박정아는 발목수술을 받은 뒤라 아직 정상도 아니었다. 설상가상 배유나도 빠져 있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이번에는 하루라도 빨리 누군가를 데려오고 싶었다. 후보는 많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말하지만 다른 구단 소속의 선수를 데려오자면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쪽에서 거부하면 답도 없다. 트라이아웃에서도 눈에 차지 않았던 새로운 선수를 선택하는 것은 도박이었다.

결국 V리그를 경험자 가운데 소속팀이 없는 선수를 찾았다. 이 조건에 맞는 선수가 테일러와 헤일리였다. 그나마 테일러는 방금 전까지 터키리그에서 뛰다가 개인사정으로 팀을 나왔고 헤일리는 배구를 쉰지 6개월이 넘었다고 했다. 결국 도로공사는 “반드시 명예회복을 하고 나쁜 이미지를 씻어내겠다”는 테일러의 말을 믿고 선택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사람의 본성은 결코 바뀌지 않았다. 구단은 테일러가 아프다고 하자 어떻게든지 끝까지 함께하려고 했다. 올림픽 최종예선전 휴식기간도 있어서 그때까지만 버티면 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테일러. 사진제공|KOVO

테일러. 사진제공|KOVO


이미 흥국생명에서 족저근막염으로 시즌을 채우지 못한 채 돌아가면서 V리그 계약제도의 빈틈을 봤던 테일러는 생각이 달랐다. 허리통증의 원인을 찾아서 3곳의 병원을 돌았다. 삼성병원에서 디스크증세라는 진단이 나오자 이를 들고 김종민 감독과 면담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부상에서 회복된다고 해도 50%의 기량밖에 발휘하지 못한다. 은퇴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김종민 감독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테일러가 왜 이런 발언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이미 받은 2달치 급여 외에 2달치 급여를 더 받고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단의 대응은 반응은 달랐다. 이면계약서가 있었다. 도로공사는 입단 전에 테일러의 전력을 의심했다. “한국에서의 정치상황을 이유로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부상 등을 핑계로 정당한 훈련지시를 따르지 않고 출전하지 않으면 전체 연봉의 50%를 위약금으로 낸다”는 서류에 사인을 요구했다.

구단은 테일러의 행동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자 즉시 경고서한을 보내고 법대로 일을 처리하겠다고 했다. 상황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자 테일러는 “통역이 잘못 전달한 것”이라고 했지만 감독은 단호했다. “내가 아무리 영어를 못해도 어떤 뉘앙스인지는 안다. 사실상 협박이었다”고 했다.

구단은 “국제배구연맹(FIVB)의 소송도 하겠다”면서 더 이상 연봉지급은 없고 위약금까지 받아내겠다면서 단호한 자세다. 그도 이제는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이미 여러 차례 비슷한 문제를 일으킨 터라 FIVB의 소송은 꺼린다고 한다. 대신 국내 변호사를 알아보고 다닌다는 소문도 들린다.

그를 도와줘야 할 에이전트도 사실상 손을 놓았다. 테일러가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한 결과다. V리그를 만만히 봤거나 한 번 옳다면 믿으면 무조건 밀고 가는 성격이 만든 결과다. 잘못된 행동과 판단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만 문제는 도로공사다. 스스로 발목을 잡는 외국인선수 선발시스템과 인성 나쁜 외국인선수가 결합하면서 토종선수들이 피땀 흘려 고생해온 시즌농사를 망치게 됐다. 이 보상은 누가 해줄 것인가.

10일 사무국장들의 실무회의에서도 외국인선수 제도를 놓고 많은 얘기가 나왔다. 자유계약, 2명 보유 1명 출장, 타 구단이 내보낸 선수도 쓰는 방안, 구단은 선발만 하고 계약은 한국배구연명이 하는 방안, 외국인선수 제도의 폐지 등의 말들이 오갔다. 그 결론이 궁금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고 좋은 인성이다. 답은 뻔히 알지만 테일러처럼 외국인선수들이 마음먹고 구단을 속이려고만 한다면 쉽게 알 수 없기에 참으로 난감하다. 요즘 V리그에서 가장 쇼킹한 소문은 몇몇 외국인선수들이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아프다고 하고 2달치 급여를 받아서 돌아가기로 미리 말을 맞췄다는 것이다. 부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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