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여자월드컵 남북 공동개최는 애당초 무리수였다

입력 2019-12-1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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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는 2023년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 유치계획서(비드북) 제출 마지막 날인 지난 13일, 유치신청을 철회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축구협회는 그 배경으로 ▲남북관계 경색으로 더 이상 공동개최 추진이 어려워진 점 ▲국제축구연맹(FIFA)의 새로운 대회 운영 방식이 국내법과 충돌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받지 못한 점 ▲여자월드컵을 남자월드컵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FIFA가 강화한 시설 기준 요건을 우리의 지자체가 수용할 수 없었던 점 등을 꼽았다.

유치 철회와 관련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핵심은 남북 공동 개최 추진이 불발됐다는 점이다. 남북이 서로 합의하고 공동으로 유치신청을 했다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FIFA도 공동개최에 방점을 찍으면서 유치 신청을 기다렸다. 하지만 최근 얼어붙은 남북 관계 탓에 제대로 논의조차 못해보고 신청을 철회했다.

따지고 보면 여자월드컵 유치는 우리의 의지가 아니었다.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의 요청에 따라 시작된 일이다. 2019 아시안컵 결승전이 열린 2월 1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인판티노 회장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게 제안한 게 발단이었다. 즉, 남북 공동 개최는 FIFA의 큰 그림 중 하나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32하계올림픽 남북 공동개최에 힘을 실어주면서 올림픽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듯, FIFA도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의 화해에 축구가 기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북한과 논의할 시간이 없었던 한국은 4월에 일단 단독으로 유치신청서를 냈다. 반면 그동안 추진해왔던 2023년 아시안컵 유치신청은 포기했다. 1960년 이후 63년 만에 유치하려던 아시안컵에 대한 기대도 컸지만 축구협회는 “국제 동향을 다각도로 검토한 결과 여자월드컵에 전략적으로 집중하기로 결정하고 철회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였다. 한국과 FIFA의 바람과는 달리 북한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논의는 더 어려워졌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북한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애초에 관심도 없던 북한을 끌어들인 게 잘못이었다.

이런 와중에 FIFA가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10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한의 2022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H조 3차전은 FIFA의 희망적인 생각을 바꿔놓은 듯하다. ‘깜깜이 중계’와 ‘무관중’으로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은 바로 그 경기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인판티노 회장은 큰 실망과 함께 공동 개최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 공동 유치 가능성은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축구협회는 차선책으로 단독 개최를 추진하려 했으나 FIFA의 새로운 대회 운영 방식이 국내법에 저촉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FIFA는 기존의 LOC(개최 국가에서 주관하는 대회조직위원회) 모델을 폐지하고, FIFA가 의결권의 과반을 갖는 별도 법인을 설립해 직접 대회를 주관하는 방식을 이번 대회부터 처음 시행하기로 했다. 또 FIFA가 시설요구사항을 남자월드컵과 동일한 수준으로 기준을 높인 것도 장애가 됐다고 축구협회는 전했다.

돌아보면 여자월드컵 남북 공동 유치는 애당초 무리수였다. 자의에 의한 추진도 아니었던 데다, 관심이 없던 북한을 괜히 끌어들여 일을 도모한 모양새만 우습게 됐다. 어쩌면 이쯤에서 멈춘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공동 유치신청 이후 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닥칠지 모를 일이다. 이번 유치 철회로 우리는 다시 한번 교훈을 얻었다. 더 이상 남북 공동이라는 허울 아래 스포츠이벤트를 끌어들이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한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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