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의장대 출신 ‘생계형 야구선수’ 김용의, LG에 길을 열다!

입력 2020-05-11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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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김용의. 스포츠동아DB

LG 트윈스는 10일 창원 NC 다이노스전에서 8회 대역전 드라마를 썼다. 3-7로 패색이 짙던 경기를 8회 대거 7득점해 뒤집고 3연패에서 벗어났다. 로베르토 라모스와 채은성의 홈런이 강렬했지만, 경기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4-7에서 2타점 2루타를 때린 유강남을 대신해 2루 대주자로 기용된 김용의의 과감한 판단과 슬라이딩이 믿기지 않는 결과를 이끌었다.

김용의는 NC 6번째 투수 김건태의 원바운드 투구 때 3루를 팠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상대의 태그를 피했다. 1회 6점을 먼저 내고도 8회 들어 몰리자 NC 배터리의 부담감이 컸다. 김건태의 원바운드 피칭 때 포수 양의지가 블로킹해 공을 앞으로 떨어트리자 김용의는 그 짧은 틈을 헤집고 3루까지 내달렸다. 이어 1사 1·3루서 이천웅의 희생플라이 때 김용의는 홈을 밟아 기어코 7-7 동점을 만들었다. LG 타선은 기세를 살려 계속 폭발했다. 김현수의 결승타, 채은성의 쐐기 2점홈런이 이어진 끝에 10-8 대역전승을 거뒀다.

KBO리그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선수 중 유일하게 의장대 출신인 김용의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2008년 두산 베어스에 2차 4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했지만 뛸 기회가 없었다. 그해 건너편 덕아웃의 LG로 옮겨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2009년 2군에서 시간을 보낸 뒤 경찰청 야구단에 지원했다. 이름값과 기록에서 밀려 떨어졌다. 결국 2010년 현역병으로 입대했다. 야구선수로선 단점이 될 수도 있었던 호리호리한 체격은 의장대가 원했던 몸이었다.

보통의 선수였다면 야구인생이 일찍 끝났겠지만, 2012년 LG로 돌아와 프로 경력을 이어갔다. 여전히 주전은 아니었다. 빠른 발 덕분에 해마다 살아남았다. 프로 13년차인 올해 비로소 연봉 1억 원을 넘겼다. 최근 3년간 연봉은 9000만 원~8500만 원~1억500만 원이다. 그보다 경력이 훨씬 짧은 후배들도 수억 원을 받고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것에 비한다면 35세의 김용의는 ‘생계형 야구선수’일지도 모른다.

기량은 밀렸지만 그는 프로야구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알았다. ‘무명의 헌신’이었다. 그가 선택받는 순간은 대분은 경기 막판이다. 대수비 또는 대주자, 때로는 승패가 갈린 경기에서 주전들의 체력을 아껴주기 위해서였다. 그때마다 자신의 일을 찾아서 했다.

LG 팬들이 황금기로 꼽는 1990년대에도 이런 비슷한 선수가 있었다. 무명의 헌신을 잘 보여줬던 대타전문 김영직이다. 10일 김용의의 모습에서 1990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 9회말 동점타를 쳤던 김영직이 오버랩됐다. 김영직은 연장 11회말 끝내기 밀어내기 4구까지 얻었다. 베스트9이 승패를 가르는 야구지만, 때로는 단 한 번의 출전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는 무명 선수들의 열정이 더 빛날 때도 있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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