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 감독, 박진섭 감독, 김남일 감독(왼쪽부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팬들의 관심이 감독의 패션에 쏠린 대표적인 케이스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을 4강으로 이끈 탁월한 지도력은 물론이고 그의 넥타이도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당시 중요 경기에 국내 디자이너가 제작한 넥타이를 매고 나와 승리를 거뒀다. 태극과 팔괘문양을 넣어 만든 히딩크 넥타이는 그야말로 행운의 상징이었다. 벤치에 선 감독의 넥타이 종류를 확인하는 일도 일종의 재미였다. 국산이라는 게 입소문을 타면서 그 넥타이는 초대박을 터뜨렸다. 급기야 저작권 관련 소송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감독의 의상 소품이 그 정도로 집중 조명을 받은 적은 없었다.
지난해는 K리그 감독의 양복이 화제였다. 광주FC 박진섭 감독은 시즌이 개막한 3월에 입은 겨울 양복을 한 여름까지도 입고 나왔다. 이유는 팀 성적 때문이다. 양복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걸 입고 벤치에 서면 팀은 지지 않았다. 섭씨 30도가 넘는 한 여름에 겨울 정장을 걸치는 게 고역이었지만 그래도 팀이 이길 수만 있다면 못할 게 없었다. 선수 시절 골을 넣으면 다음 경기에 그 축구화를 고집했던 그의 습관이 양복으로 이어진 것이다. 상대팀 입장에서는 그 양복이 달가울 리 없었다. 그래서 일종의 부적이었다. 광주는 7월 중순 안양과 20라운드에서 첫 패배를 당했지만 K리그2 최다인 19경기 무패(13승6무)를 기록했다.
올해 또 하나의 감독 패션이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성남FC 김남일 감독이다. 그는 올 시즌 4라운드까지 검정 정장에 검은 마스크를 하고 벤치를 지켰다. 그 모습을 보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의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과 흡사하다고 해서 팬들 사이엔 ‘남메오네’로 불린다. 이젠 검정이 김 감독의 상징색이 돼버렸다.
검정은 성남구단의 상징색이기도 하다. 성남시의 새인 까치의 깃털에서 따왔다. 홈 유니폼 색상이 검고, 엠블렘도 마찬가지다. 응원가도 ‘뛰어라 성남, 블랙전사들’이다. 올해 슬로건도 ‘브랜드 뉴 블랙(Brand New Black)’이다. 온통 검다. 그 한 가운데 김 감독이 섰다.
김 감독은 지난해 12월 취임 기자회견 때 검정 정장을 입었다. 그게 계기가 됐다. 개막하면서는 마스크는 물론이고 재킷이나 셔츠, 시계, 바지, 구두 등도 같은 색상으로 맞춰 올 블랙을 완성했다. 서울과 4라운드 이후 그는 “의도적으로 입은 건 아니다. 제 취향도 아니다”면서 “예의상 1라운드부터 양복을 입고 싶었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고 했다. 성남은 4라운드까지 무패(2승2무)다. 팀이 지지 않는데 굳이 변화를 줄 필요는 없다. 구단도 김 감독에게 올 블랙을 권한다. 김찬규 홍보팀장은 “검은 색이 우리 팀 컬러와 맞고, 또 그렇게 이미지가 형성되고 있다. 그 분위기를 계속 가져갈 생각”이라면서 “이는 감독님도 허락하셨다”고 전했다. 날씨가 더워지더라도 당분간 성남 벤치의 올 블랙은 계속될 전망이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