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생존 앞에서‥”

입력 2020-11-07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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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어릴 때부터 불만이 많은 이야기였다.”

고전소설 ‘별주부전’ 속 용왕에게 간을 빼앗길 뻔했던 토끼의 탈출을 보면서였다. 토끼가 “약아빠진 캐릭터”로만 인식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토끼는 그저 살아남기 위한 묘책을 썼을 뿐이었다. 대체 용왕은 토끼의 목숨보다 더 가치 있는 인물일까.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살아남기 위해 세상에 적응해가며 “생존”의 방식을 찾아가는 유괴당한 11살 소녀, 그리고 그를 잠시 맡아 돌보게 된 청년과 중년의 사내. 두 남자는 범죄집단의 하청 일로 살아가며 ‘성실히’ 나름의 세상을 견디고 있다. 중년의 사내는 청년에게 부단히 삶의 성실함과 엄중함을 일깨워주려 한다.

그런 이들에게 삶의 온전한 가치는 어떤 것일까.

“생존의 문제에 부닥친 윤리의 가치”

영화 ‘소리도 없이’의 연출자 홍의정 감독은 “모두 각기 윤리관을 지니고 살지만 생존의 문제에 닥치면 그 가치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소 비현실적으로 비쳐지더라도 관객이 그 안에서 현실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 여겼다.

그러는 동안 유재명과 유아인 그리고 아역 문승아 등 배우들에게 기댔다고 말했다.

영화 ‘소리도 없이’의 한 장면.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그에게서 배우의 능력을 빌렸다”는 홍 감독은 유재명이 “비현실적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끌어들였다”고 밝혔다.
말을 하지 못하는 듯, 하지 않는 듯 입을 다문 극중 유아인은 “더 성숙한 이미지”를 발했다.

출연 섭외차 그에게 고릴라 영상을 건넨 홍 감독은 “공포스럽고 폭력적인 모습의 고릴라가 나무뿌리에서 개미를 찾아 잡아먹는 장면도 있었다”면서 “겁쟁이 같은 온순함을 지닌 캐릭터”라고 가리켰다. 유아인은 그 같은 이미지를 제대로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역 문승아는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바꾸는 방식”이었는데도 “당황하지 않으며 마음의 여유까지 지닌” 배우로 홍 감독에게는 또 한 명의 의지 대상이었다.

심지어 아직 겪어보지 못한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문승아는 “연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느껴보지 못한, 알지 못하는 환경에 놓인 사람의 감정을 느끼는 게 좋기 때문이다”고까지 말했다.

베니스가 인정한 이야기…이제 또 다른 현실로

이 같은 과정에 대해 홍 감독은 “모든 게 엄청난 기회였다”고 돌아봤다.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하고 2년 동안 광고프로덕션에서 일한 그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런던필름스쿨에서 영화를 더 공부했다. “난민처럼 살았다”며 당시를 돌아본 홍 감독은 “생존의 문제, 선과 악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만큼은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리도 없이’는 베니스국제영화제가 운영하는 비엔날리 컬리지 시네마 프로그램에 2016년 선정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할리우드 작가 등이 멘토로 나서 전 세계 단 12편의 작품와 그 작가에 대한 멘토링을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홍 감독은 더 깊게 이야기를 펼치는 방식을 배우기도 했다. 일부 제작비도 지원받은 만큼 이미 작품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신뢰를 얻었던 셈이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숱한 난관에 부딪혔다. 더 강한 상업성을 요구하거나 그러기 위해 스토리나 캐릭터를 전혀 다르게 풀어가자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홍 감독은 그에 응했지만 끝내 제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결국 자신이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데 원래의 구조와 스토리라인이 가장 유효했기 때문이다.

그런 유효함으로 이제 홍 감독은 SF영화에 대한 꿈으로 구체적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현실의 문제를 정확히 보여주는 설정으로서 SF가 좋다. 현실의 오류 혹은 왜곡된 현실을 드러내고 싶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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