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세터와 공격수의 호흡, 그 미묘한 관계설정

입력 2020-12-14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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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1시즌을 앞두고 V리그 여자부에선 각 팀의 주전 세터들이 연쇄적으로 이동했다. 자유계약선수(FA) 이다영(현대건설→흥국생명)이 움직이자 조송화(흥국생명→IBK기업은행), 이나연(IBK기업은행→현대건설)도 연달아 팀을 옮겼다. GS칼텍스 소속이던 이고은은 트레이드로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었다. 이 변동으로 안혜진이 GS칼텍스의 주전 세터가 됐다. FA로 팀에 남은 염혜선(KGC인삼공사)을 제외하곤 모든 팀의 주전 세터가 교체됐다.

공격수와 세터의 호흡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이번 시즌 각 팀의 성패는 이 시행착오를 줄여서 얼마나 빨리 최적의 하모니를 만드느냐에 달렸다. 3라운드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많은 팀들이 세터와 호흡에 고민을 안고 있다. 모든 팀이 공격수에게 정확하게 공을 올려줄 세터를 찾지만, 그것은 환상에 가깝다. 기대치의 70%만 해줘도 만족하고 팀플레이는 잘 돌아갈 정도로 세터는 어려운 자리다.

선수들마다 요구하는 공은 다르다. 누구는 네트에 붙여주기를 원하고, 누구는 그 반대다. 패스의 스피드도, 공이 정점에 머물러야 하는 높이도 제각각이다. 모든 플레이 때마다 공격수 4명의 입맛에 맞게 빨리 요리를 해야 하는 주방장의 역할이 세터다. 이런 상황에서 유난히 입맛이 까다로운 공격수가 있다면, 정성을 다해서 요리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예전 어느 팀 외국인선수는 요구하는 공이 유독 까다로워 원하는 공이 오지 않으면 세터를 향해 계속 레이저 눈총을 쏘아댔다. 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경기 도중 세터와 주먹다짐까지 하려고 했던 선수도 있었다. 그래서 세터의 입장에선 주는 대로 때려주고 득점까지 해주는 공격수가 가장 고마울 것이다.



도로공사는 12월 들어 4연승을 거뒀다. 첫날 IBK기업은행에 3-2로 승리한 것을 시작으로 현대건설과 2연전에서 모두 이겼다. 13일에는 이재영, 이다영, 루시아가 빠진 선두 흥국생명을 3-0으로 완파했다. 개막 이후 1승7패를 기록할 동안 주춤했던 박정아가 살아나자 도로공사의 플레이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레전드 세터 이효희~김사니와 오래 호흡을 맞춰왔던 박정아에게 이고은과 적응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개막 이후 8경기 동안 평균득점은 10점에 그쳤고, 공격성공률은 30%를 넘지 못했다.

박정아는 시행착오의 힘든 과정 속에서 절대로 세터 탓을 하지 않았다. 팀 패배의 책임감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기본으로 돌아가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좋았던 때의 경기영상도 보고 동료들의 조언도 들었다. 감독과 면담도, 더 많은 개인훈련도 했다.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은 “힘으로 억지로 하려다보니 리듬이 맞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많은 땀과 노력의 결과, 박정아는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왜 에이스인지 알겠다”고 말했다.

요즘 몇몇 팀의 공격수가 세터의 연결에 불만을 자주 드러내고 있다. 경기 도중에도 그런 모습이 보인다. 그래봐야 득 될 것은 없다. 좋은 세터를 만드는 것은 공격수다. 반대로 세터는 공격수의 운명을 결정한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달래고 원하는 것을 요구해서 내 편을 만들어야 팀은 행복해진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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