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레이더] 심판과 V리그 판정시스템 존중하지 않으려는 감독

입력 2021-01-04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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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마지막 날 벌어진 ‘도드람 2020~2021 V리그’ 남자부 4라운드 한국전력-대한항공전은 마치 전쟁 같았다. 2시간33분의 대혈투는 3세트가 분수령이었다. 15-13으로 대한항공이 앞선 상황에서 대한항공 곽승석과 한국전력 박철우의 네트 위 경쟁을 놓고 경기가 중단됐다.

남영수 주심이 곽승석의 오버네트 반칙을 선언하자, 대한항공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은 강력하게 항의했다. 강주희 부심이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며 흥분한 감독을 진정시켰다. 배구에선 판정에 어필할 권리를 오직 주장에게만 준다. 주심은 주장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애매모호한 부분은 V리그의 로컬룰에 따라 비디오판독으로 확인하면 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V리그의 비디오판독 규정에서 오버네트는 판독대상이 아니다. 억울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 장면을 확인하고 싶었던 산틸리 감독은 대신 네트터치 여부로 비디오판독을 신청했다. 네트터치는 영상에 나오지 않았기에 빨리 승복하고 다시 경기에 집중하면 좋았겠지만, 그는 중계화면에 불만을 표시했다. 주심은 즉시 레드카드를 꺼냈다.

산틸리 감독은 이미 V리그의 시즌 절반을 소화했다. 당연히 로컬룰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버네트를 비디오판독으로 가려달라고 우기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대놓고 불만을 표시했다. 흥분한 탓이겠지만 결국 팀에 손해가 됐다.



산틸리 감독은 이미 수차례 판정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은 외국인 감독이기에 이해는 가지만, 가끔 선을 넘었다. 3라운드 한국전력과 원정경기 때는 심판에게 고함을 지르는 등 격한 감정을 표출했다. 1세트 27-28에서 포지션폴트로 세트를 내주자 “심판이 아니라 KOVO와 얘기하고 싶다”는 발언까지 했다.

V리그의 어느 감독도 이처럼 판정과 심판을 공개적으로 불신하진 않는다. 31일에도 “심판은 로컬룰이 있어서 판독을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공식 룰이 있는데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 모르겠다. V리그가 다른 리그에 비해 오심이 많은 것 같다. 다른 리그는 심판의 판정이 틀렸을 때 재량으로 판정을 한다. 모든 리그가 그렇다. 한국만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현재 V리그에선 오심이 너무 많고 판정시스템에 하자가 있어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오심 여부는 전문가들이 따져볼 일이지만 무엇보다 그의 태도와 자세가 걱정스럽다. 24-23에서 박철우의 공격이 블로킹에 걸려 한국전력 측 라인에 떨어지자, 판정이 나오기도 전에 지레 아웃으로 판단하고 분노를 폭발했다. 이날 현장에 있었던 김세진 KBS 해설위원이 “저렇게 흥분할 상황이 아닌데요”라고 점잖게 지적할 정도였다. 이미 한 차례 카드를 받고도 심판이 판정하기도 전에 화부터 내는 산틸리 감독에게 세트퇴장은 당연했다.

감독의 임무 중 하나는 팀이 어려울수록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선수들을 독려해 경기를 풀어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산틸리 감독은 가끔 선수들보다 더 흥분해 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세트스코어 2-3으로 패한 뒤에도 항의를 했는데, 이는 V리그가 쌓아온 이미지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스포츠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은 승패에 관여된 모두가 결과를 깨끗이 승복하고 룰을 존중해서다. 이것이 페어플레이 정신의 바탕이다. 구성원들의 이런 믿음이 없으면 스포츠는 저급한 싸움으로 변질된다. 산틸리 감독이 대한항공 사령탑에 선임됐을 때 많은 기대가 있었다. 현대적인 유럽식 배구의 훈련방식과 고급기술을 전수해주는 것은 물론 V리그의 롤모델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아쉬울 뿐이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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