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40세 현역선수 정대영을 만든 것은 욕심

입력 2021-02-04 14: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크게보기



도로공사 정대영에게는 따라다니는 기록들이 많다.

그는 2005년 V리그 원년 MVP다. 센터 포지션으로는 2019~2020시즌 양효진(현대건설)이 MVP를 받을 때까지 유일했다. 2005년 여자부 득점, 블로킹, 수비상을 차지했다. 백어택에 2점을 주던 시절에는 센터지만 무려 295개의 백어택을 때린 만화같은 배구도 했다.

2009년 최초로 출산휴가를 신청했다. 그의 용기 덕분에 V리그에는 엄마 선수가 생겼다.



이제는 마흔의 나이에 블로킹 1위 타이틀을 놓고 3년 후배 한송이(KGC인삼공사)와 경쟁 중이다. 양효진이 2009~2010시즌부터 11시즌 연속 1위를 지켜왔던 자리다. 정대영은 2007~2008시즌 1위였다. 13년 만의 1위 도전은 누구나 쉽게 못하는 일이다. 또 하나 기뻐할 일이 있다. V리그 16시즌 동안 열심히 뛰어온 결과 4일 현재 통산 996개의 블로킹을 기록했다. 양효진에 이어 여자부 사상 2번째 통산 1000블로킹 달성이 눈앞이다. 7일 화성에서 벌어지는 IBK기업은행-도로공사의 5라운드는 공중파 방송에서 생중계를 한다. 두 팀은 승점31로 3,4위다. 정대영에게는 승리도 대기록 달성도 모두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다.


-1000블로킹 달성이 눈앞이다. 감회가 새로울 텐데.

“전에는 센터로서는 당연히 하는 숫자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더 좋은 외국인선수가 오고 토종 선수들의 기량도 좋아져서 갈수록 블로킹이 힘들어졌다. 지금은 내가 기록한 블로킹 숫자에 나름 뿌듯하다. 그동안 블로킹을 잘하려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상징이다. 동기 김세영도 1000블로킹에 가까이 있다. (4일 현재 966개다) 초반에는 나와 비슷했는데 다음 시즌까지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외에는 1000개 가능한 후배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 마흔이다. 현역 프로선수를 하기 쉽지 않은 나이인데 참 대단하다.

“이번 시즌은 빡빡한 경기 일정으로 힘들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초반 팀이 자주 질 때는 연습 때 준비할 것들이 많아 맞추는 과정이 더 쉽지 않았다. ‘더 이상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도 했지만 감독님이 많이 배려도 해주시고 체력적으로도 아직은 문제가 없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FA계약 때 우여곡절이 많았다.(정대영은 연봉 9500만원+옵션 4500만원의 조건에 도장을 찍었다. 지금은 가장 저비용 고효율의 가성비 높은 선수가 됐다.)

“계약 때 섭섭했지만 사인을 마친 뒤에는 깨끗이 잊었다. 내 자신을 조금 더 끌어올려 나를 선택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새로운 의지가 생겼다. 지난 시즌 못해서 속상했지만 내가 보여주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전까지는 ‘설마’하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름이 아닌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선수의 기량보다는 나이로 은퇴여부를 판단하는 V리그의 분위기가 아쉽기도 할 텐데.

“현역선수 연장을 항상 고민한다.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지금은 코트에서 뛰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나이를 먹으면 점점 순발력이 떨어지지만 그럴수록 더 많이 써야 순발력이 유지된다는 것을 알았다. 감독님도 내가 어떻게 하면 잘 버티는지 알고 도와주신다. 한동안 은퇴를 고민했는데 주위에서 ‘지금 기량이 있는데 나이가 많다고 그만 두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생각은 프로선수답지 않다’고 조언해줬다. 내 욕심은 중요하지 않다. 구단에서 나를 필요로 한다면 더 선수생활을 할 생각도 있다.”


-오래 선수생활을 하길 바란다. 베테랑이 좋은 선례를 만들어야 후배들도 보고 따른다.

“내가 훈련하면 후배들끼리 ‘저 언니 이 악물고 한다. 우리도 저 언니처럼 해야 해’라고 자기들끼리 얘기한다고 들었다. 나와 임명옥이 우리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데 체력훈련 때 항상 앞장선다. 그래야 후배들도 이런 것은 당연히 해야 한다면서 따라온다. 선배는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이제 배구를 시작한 딸이 지금은 모르겠지만 조금 더 크면 엄마가 엄청나게 위대한 선수였다고 자부심을 가질 것 같다. 오래 선수생활을 한 비결이 궁금하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튼튼한 몸도 있지만 내 욕심도 한 몫을 했다. 나는 욕심이 많다. 다른 사람에게 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고집도 세다. 예전 류화석 감독님이 나를 보고 ‘똥고집이 많다’고 하셨다. 지금도 동료 후배들에게 체력만큼은 지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있다. 배구를 오래 하다 보니 기술은 조금 떨어져도 가능하지만 체력이 떨어지면 힘들었다. 지난 시즌 국가대표팀에 소집됐다가 돌아오자마자 시즌에 들어갔는데 철저한 준비 없이 시즌을 치르다보니 몸이 너무 힘들었다. 팔다리가 후들거렸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는 체력훈련을 많이 했다. 지금은 ‘경기 때 몸이 무거워져서 어떻게 할까’하고 걱정할 정도로 체력훈련을 많이 하지만 몸이 더 탄탄해졌고 힘도 덜 드는 것을 느꼈다.”


-정대영 선수의 상승세와 함께 요즘 도로공사도 성적이 좋아졌다. 봄 배구는 가능할까.

“모든 선수들이 세터와 점점 적응된 덕분이다. 이고은이 속공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우리 팀의 플레이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시즌 초반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같은 센터지만 배유나와 나는 다른 스타일이어서 이고은도 힘들었을 것이다. 세터를 도와주고 기다려주자고 했다. 3~4라운드부터 플레이가 맞아 떨어졌다. 이제는 서로에게 믿음이 생겼고 적응이 됐다. 이고은도 자신감이 많이 올라왔다. 시즌 초반에는 팀 전체가 불안감이 있었지만 이제는 경기가 재미있어졌다. 훈련 때 준비한 패턴플레이가 경기에 많이 나오면서 훨씬 편해졌다. 우리 팀은 경험 있는 선수가 많아서 봄 배구에만 올라가면 자신이 있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