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와 오버랩 된 주역들의 가족사 화제만발

입력 2021-03-05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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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가 개봉 첫 날인 3일에만 4만여 명을 동원하며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사진은 영화의 주역인 배우 한예리·스티븐 연·정이삭 감독·노엘 조·앨런 김·윤여정(맨 왼쪽부터 시계방향). 사진제공|판씨네마

미국 이주·이혼 후 두 아들 키워낸 윤여정
농장 꿈꾼 부친, 정이삭 감독 영화에 투영
한국계 미국인 정체성 혼란 겪은 스티븐 연
모성 연기 한예리 “어머니의 힘든 삶 생각”
“단역부터 다시 시작했다. 새끼들을 먹여 살리고 교육시켜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남편과 이혼하고 무대로 되돌아왔지만, 10여년 세월의 간극은 어쩔 수 없었다. 화려한 주인공 자리를 되찾지 못했다. 대신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가리지 않고 다” 했다.

배우 윤여정이 2017년 tvN ‘택시’ 등에 출연해 털어놓은 이야기이다. 1973년 가수 조영남과 미국으로 떠나 이듬해 결혼했지만 11년 만에 이혼한 그는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일에 매달렸다.


“절실했을 때 내가 하는 소리”가 들린다며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그 한 지점에서 이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3일 개봉한 영화 ‘미나리’의 할머니 역으로 미국에서 무려 27개의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4월 아카데미상 후보 선정과 수상 전망까지도 낳고 있다. 그의 두 아들은 건실한 청년으로 자라나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 “일하기 바빠 엄마의 밥을 제대로 못 해준 것이 너무 미안”할 뿐인 그는 “그러나 다른 것은 떳떳하다”며 자신의 일에만 매달려온 수십 년 세월의 보람을 안게 됐다.

고단했을 삶의 한 단면은 영화 ‘미나리’에 깊게 스며들었다. 그는 미국 주간지 옵서버 인터뷰에서 “극중 캐릭터에 내가 아홉, 열 살 때쯤 돌아가신 증조할머니를 떠올렸다. ‘미나리’의 손자처럼 나도 증조할머니를 좋아하지 않았다. 더럽다고 싫어했다. 정말 어리석었다”고 돌이켰다.

이민자의 삶, 그들의 꿈

그처럼 살아온 나날은 또 다른 주역들의 것이기도 하다. ‘미나리’의 연출자 정이삭 감독과 주연 스티븐 연 그리고 한예리 역시 자신들의 삶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1980년대 팍팍한 땅에 상추와 고추 등 한국 채소를 심으며 농장을 일궈가려는 미국 이민 한인가족의 이야기는 이들 주역들의 실제 삶과도 닮아 있다.

농장을 꿈꿨던 이민자 아버지를 따라 미국 아칸소주 링컨에서 자라난 정이삭 감독은 ‘미나리’ 속 손자에게 자신의 어린시절을 투영했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딸을 키우며 생계를 위해 갯벌에서 조개를 캤던 할머니”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런 “할머니가 계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며 이민자들의 삶에 대한 질긴 애착을 담담한 시선으로 영화에 담아냈다.
2007년 르완다 난민들의 아픔을 담은 ’문유랑가보‘로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받았던 정 감독은 미국 버라이어티를 통해 “농사로 꿈을 찾아 나선 ‘미나리’의 주인공”에게서 영화라는 꿈을 버리지 않은 자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올해 8살이 된 어린 딸을 위해 한국을 찾기도 했던 그는 2019년 ‘미나리’를 연출하며 “딸이 7살이 됐을 때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서 그 나이 때 내가 느꼈던 걸 되새겼다”고도 했다.

“미나리는 원더풀이란다!”

정 감독과 사촌 매부지간이기도 한 주연 스티븐 연 역시 미국 이민 2세대이다.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5살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연상엽’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닌 그는 이국의 땅에서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 속에 자라났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하지만 좌절과 희망 사이를 오가는 ‘미나리’ 주인공의 모습에서 “내 아버지의 삶”을 확인하고 “아버지와 다시 연결되는 감동적인 경험이었다”면서 이번 작품이 안긴 특별한 의미를 설명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극중 스티븐 연의 아내인 한예리는 강한 모성애로 가난한 미국 시골의 힘겨운 일상을 견뎌낸다. 그는 “한국형 장녀의 전형”으로 자신을 설명하며 “자라면서 뭔가를 더 해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미나리’의 캐릭터를 보며 자신을 키워낸 “어머니와 또래 여성들”을 생각했다는 그는 “부모님의 시간 속에 어려움과 힘듦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최선을 다 하며 살아왔다”고도 했다.

“미나리는 잡초처럼 아무 데서나 막 자라니까 누구든지 다 뽑아 먹을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하든. 김치에 넣어 먹고, 찌개에 넣어 먹고. 아플 때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 원더풀이란다.”
‘미나리’의 할머니 윤여정이 척박한 땅 위에 자라난 미나리를 보며 손자에게 내어주는 말이다. 새로운 희망과 꿈을 좇아 나선 영화의 주역들은 실제 자신들의 인생을 닮은 작품으로 이제 “원더풀, 원더풀이란다!”는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개봉 첫날 4만 관객이 이를 확인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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