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2021~2022시즌 V리그에서 활약할 외국인 여자배구 선수들의 선택이 끝났다.
잘 하는 선수는 스파이크 동작과 점프 몇 번만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배구라지만 비대면 방식이어서 누구도 결과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동영상에 나타나지 않는 것까지 감독과 구단은 찾아내야 한다. 평소 생활태도와 인간성, 긴 시즌을 버텨내야 하는 내구력과 책임감 등은 다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살펴봐야 하는데 이것이 힘들다.
28일 트라이아웃이 끝난 뒤 역시나 많은 뒷얘기들이 나왔다. 화제의 중심은 전체 1순위를 차지한 엘리자벳 바르가(헝가리)였다. 페퍼저축은행 김형실 감독이 헝가리 리그에서 활약하는 그를 지명했다. 여자배구에서만 35년 지도자 생활을 했던 베테랑 감독은 “라이트에서 블로킹 위치가 좋고 높은 타점에 팔이 길어서 선택했다”고 말했다. 신생팀이의 에이스로서 많은 공격부담을 해야 하는 바르가는 사실 이번 트라이아웃에 지원할 생각이 없었다.
V리그의 높은 수준을 두려워했던 그는 한 단계 낮은 리그에서 적은 연봉을 받고 뛰는 것에 만족하려고 했지만 에이전트인 유나이티드 스포츠 진용주 대표가 “충분히 뽑힌다”고 설득해 지원했다. 신생팀에서 소녀가장 역할을 해줄 그는 정말로 소녀가장이다. 헝가리인 아버지와 루마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바르가는 2중국적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지내온 그는 배구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트라이아웃 때도 어머니와 함께 루마니아의 집에서 현지시간으로 이른 아침에 온라인으로 결과를 지켜봤다.
진용주 대표로부터 가정사를 들은 김형실 감독은 기꺼이 한국인 아버지 역할을 해주겠다면서 바르가와의 인연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다. 이번에 4명의 소속 선수를 취업시키며 진정한 승자가 된 진용주 대표는 바르가를 세르비아의 전문적인 체력단련 팀에 위탁해 몸을 만들어올 계획이다. 지난 시즌 소속 선수였던 라자레바(전 IBK기업은행)도 이 프로그램으로 큰 효과를 봤고 지금도 세르비아에서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테니스의 조코비치 등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을 많이 배출한 세르비아는 체력단련 전문가와 좋은 시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바르가의 지명은 모두가 예상했던 것이지만 이번 트라이아웃의 신 스틸러는 현대건설이었다. 워낙 영상에서 보여준 퍼포먼스가 뛰어나 28일 오전까지만 해도 캐서린 벨을 지명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막판에 야스민 베다르트(이상 미국)로 방향을 틀었다. 그 바람에 KGC인삼공사의 선택은 옐레나 므라제노비치(보스니아)로 급 변경됐다. 현대건설은 벨이 푸에르토리코 리그의 팀과 계약을 맺는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돌렸다. 푸에르토리코 리그는 여름 짧은 기간에 열리지만 8월 첫 주까지 경기가 있다. 이것을 마치고 푸에르토리코에서 대한민국의 취업비자를 받아서 오는 과정이 쉽지 않다. 잘해야 8월 말 귀국이 가능한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다른 선수를 선택하자는 판단을 했다.
이미 한국생활을 경험했던 벨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오는 지도 중요하다. V리그에 익숙한 선수들은 장점이 있는 대신 자칫 이태원의 밤 문화 등 다른 것에 더 관심을 두는 사례도 있었다. V리그가 처음인 선수는 구단과 코칭스태프가 시키는 대로 잘 따르지만 이미 V리그를 경험을 한 선수들에게는 효과가 떨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벨은 “6년 전에는 나이가 어려서 고양이 같았지만 이제는 경험이 쌓여서 사자가 됐다”고 했다. 과연 어떤 사자일지 궁금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