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 사용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Lucy 작가의 ‘안녕, 결혼’ ②

입력 2021-06-09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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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바쁘다” 하루 한 두 시간씩 자며 막판 집필
육사 가려다 수능 망쳐…“그래, 내 길은 배우다”
“이 책의 드라마화 꿈꾸며 시놉시스 쓸 겁니다”
(Lucy 작가와의 유쾌한 인터뷰가 1부에서 이어집니다)




- 1부에서 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었는데요. 이제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해볼까요.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면서 글을 쓰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주로 어떤 시간에, 어떻게 작업을 했나요. 어려웠던 점은?

한 회차가 보통 A4 용지 14장에서 17장 정도 됐는데 평일에는 대부분 다음 회차에 대한 글을 정리하고, 주말에 주르르륵 몰아서 썼어요. 주말에는 남편이 아이를 보고, 저는 오롯이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었죠. 저도 사람인지라 주말에 글이 써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땐 평일에 아이를 업고 타자기를 쳤어요. 지금은 아이가 4살이라 불가능한 일이지만요.

그림은 글을 쓴 뒤에 그려요. 글을 쓴 뒤에 번뜩 생각나는 이미지나 문구가 있으면 그에 맞춰 사진을 찍고,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대부분 아이가 잠들었을 때 그려요.

제일 어려웠던 건 글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거든요. 아이도 돌봐야 하고, 유튜브 편집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남편이 쉬는 주말에 글은 꼭 써야 하니 주말에 밤을 새운 적도 많아요.

이번에 책을 편집할 때는 더 힘들었죠.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집중해서 해야 하는데 아이를 보다가 낮잠을 자면 잠깐 하고, 다시 아이를 보고. 어린이집 갔을 때 잠깐 하다가 다시 아이를 보고. 이 상황을 반복하니까 일이 진행이 안 되더라고요.

남편도 이제는 주말에 출근을 하는 일이 잦아서 주말 육아도 온전히 제 몫이 됐거든요. 그래도 하는 데까지 해보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정 부모님께서 감사하게도 아이를 봐준다고 하셔서 염치 불고하고 부모님께 아이를 맡겨두고 하루에 한 두 시간만 자면서 열심히 편집을 했죠.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혼자서 온전히 일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 엄마가 되고 나니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 ‘저자소개’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시나리오 작가, 배우에 최근에는 모델과 크리에이터로도 활동 중이죠. 저자소개를 보면 못하는 건 영어뿐인가 싶군요(하하!). 원래 배우가 꿈이었던 건가요.

어릴 때는 가수가 꿈이었어요. 서태지와 아이들, H.O.T의 팬이었거든요. 가수 오디션도 몇 번 봤는데 뽑아주지는 않더라고요. 하하하.

그 이후에는 법의학자가 꿈이었고요. 그런데 생물이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습니다.

배우가 꿈이 된 건 고등학교 때 뮤지컬을 본 이후예요. 야자 시간에 떠들었다고 국어 선생님한테 맞은 적이 있는데 선생님이 야자시간 끝나고 뮤지컬 티켓을 주시더라고요. 제 비명소리가 너무 커서 그날은 애들이 다 조용했대요.

그때 주신 뮤지컬 티켓이 ‘갬블러’였는데 그 이후 뮤지컬에 빠져서 살았어요. 언젠가는 나도 저런 무대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 반대가 너무 심했죠. 아빠는 육군 사관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셨거든요. 아빠의 바람대로 1차, 2차까지는 다 붙어서 저도 제가 이렇게 군대에 가는 건가 싶었습니다만 수능이 처절하게 망했어요. 외국어 영역 시간에 잤거든요. 하필이면 듣기 평가 타이밍에.

수능이 망했으니 육사에도 떨어지고, 다른 대학교에 진학해야 하는데 담임선생님이 제 점수에 자를 쭉 대시더니 갈 수 있는 학과를 읊어주시더라고요.

“00대 우주 법학과, 00대 교육공학과, 000대 생활환경학부.”

무슨 결론인가 싶었죠. 점수로 제 인생이 갈린다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가고 싶은 길로 가기로 했어요. 영화과에 입학했죠. 물론 영화과에 입학해서 보라는 영화는 안 보고, 공연만 보러 다녔지만.

한때는 성우가 되고 싶어서 성우 아카데미도 다니고, 언더로 성우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했는데 공연이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학교 졸업하자마자 오디션을 봤어요. 떨어지고, 떨어지다가 연극으로 공연을 시작하게 됐어요. 의지가 있으면 어떻게든 가고 싶은 길로 가게 되더라고요.




- 배우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기억에 남는 출연작이 있겠죠.

3개의 작품이 있어요. ‘국화꽃향기’, ‘오디션’, ‘술래잡기’.

‘국화꽃 향기’는 너무 재미있게 했던 작품이기도 하고, 멀티녀의 매력을 깨닫게 해준 작품이기도 해요. 극에서 깨알 같은 웃음을 줄 수 있는 역할이라 무대에 서는 하루하루가 즐거웠어요.

‘오디션’은 열정적으로 했던 공연이라 기억에 남아요. 예전부터 좋아하는 넘버를 무대에서 부를 수 있어서 마냥 좋았죠. 커튼콜 무대가 신나서 정말 열심히 뛰었는데 공연이 끝날 때 즈음에 살이 8Kg 정도가 빠졌답니다. 하하하.

‘술래잡기’는 제일 오래했던 공연이에요. 3년 정도 했나. 청순가련한 여자, 술집 여자, 남자 한 명이 나오는데 여자 두 명 역할을 다 해 볼 수 있었죠. 원래 맡았던 역할은 청순가련한 여자였는데 성격상 청순가련이랑 거리가 멀어서 연기하기가 참 힘들었어요. 늘 제 성격이랑 비슷한 역할만 맡았었거든요. 저를 깨는 게 어려웠는데 이 공연이 큰 숙제를 줬던지라 기억에 크게 남아요.


- 필명이 ‘Lucy’입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배우시절과 달리 필명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LUCY’라는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세례명이에요. 집안 내의 종교적 자유 허용으로 세례는 안 받았지만 ‘LUCY’라는 이름이 좋아서 쓰고 있어요.

비틀즈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노래를 초등학교 때부터 참 좋아했거든요. 지금 저의 감성에 영향을 미친 건 초등학교 때 읽었던 책이나 그때 들었던 노래들이 거의 100%예요. 여러 가지 필명을 고민해봤죠.

‘렛잇비, 반고흐, 아를, 페퍼, 외사랑, 에바…’

아. 이건 에바다. 그래서 제일 편안하게 들리는 이 이름이 괜찮겠다 싶어 사용하게 됐어요. 뭔가 좀 독특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앞으로도 이 이름을 쭉 쓸 생각입니다.

작가로서 필명을 사용한 이유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제게 있었던 일들을 가감 없이 쓰고, 제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데 이게 밝혀지면 제 가정생활에 또 어떤 폭탄이 날아올지도 모르니까요. 물론 이제는 남편의 형도 알아서 굳이 필명을 쓸 이유는 없지만 이제는 LUCY라는 이름이 저의 또 다른 자아처럼 느껴져요. 이 이름에 정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 ‘저자소개’를 보면 ‘아직도 가슴에 품은 꿈들을 포기하지 못해 고군분투하며 하나씩 이루면서 살아가는 중’이라고 밝혔는데요. ‘가슴에 품은 꿈’이 살짝 궁금해지네요.

다시 공연을 하고 싶어요. 과거를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공연할 때 힘들기도 했지만 정말 즐거웠거든요.아직은 아이가 어려서 무리지만 아이가 조금 더 크면 다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안녕, 결혼’이 언젠가는 드라마화 됐으면 좋겠다 싶어서 시놉시스를 써보려고 준비 중입니다. 다 거절할 수도 있지만 일단 부딪혀 보는 거죠, 뭐.

새로운 글을 슬슬 써야 할 때가 왔는데 요새 비트코인을 하다 보니 느껴진 바가 많아서 비트코인을 하며 느낀 점들을 에세이로 써보려고 해요.

‘안녕, 결혼’도 간간이 계속 써보려 하고 있어요. 시부모님과의 문제가 해결되면 다 끝일 줄 알았는데 부부사이에도 간간이 문제는 생기더라고요. 그렇다고 저희 부부가 엄청난 갈등에 봉착한 건 아니고요. 사소한 문제들이죠. 하하하.

유튜브는 하고 있긴 한데 열정적으로 영상을 올리지를 않은 탓인지 정체 상태라 다시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저도 구독자 만 명 유튜버가 됐으면 좋겠다는 큰 꿈을 품고 있습니다.

애 키우는 엄마가 맞나 싶게 하고 싶은 일이 많네요.

맞아요. 저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아요. 엄마는 하나만 파라고 하는데 저는 하나만 파는 게 잘 안되네요.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살아보려고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산후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어요. 열심히 밖에서 커리어를 쌓는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보잘 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죠.

얼마 전에 책에서 이런 글귀를 읽은 적이 있어요.

“네가 원한다면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지금 당신이 보잘 것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스스로를 그 자리에 매어두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뭐든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결국에는 어떻게든 닿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자신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열심히 삽니다.
비록 지금 내가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이 세상의 모든 경단녀들을 응원합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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