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는 큰 키에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기다란 손가락을 가진, 꽤 무뚝뚝한 사람이었던 모양이지만 그가 쓴 음악만큼은 누구보다 크게 웃고, 울고, 기뻐하고, 분노하며, 좌절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인간적인 음악’, 누군가에게는 ‘감정의 과잉이자 낭비’로까지 들릴 수도 있을 테지만 평소 꾹꾹 감정을 눌러 담고 살다가도 한번 분출하면 끝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에게 라흐마니노프는 모국어처럼 들리는 음악이다
라흐마니노프의 작품 중에서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은 우리나라 클래식 팬들이 외우고 다니는 작품일 것이다. 이 두 작품이 함께 수록된 음반도 많아 고르기가 힘들 정도다.
그런데 어쩌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3번이 커플링된 음반 하나가 더 나와 고민에 고민을 얹게 되었으니. 게다가 들어보니 썩 괜찮은 것이다. 행복한, ‘고민의 재미’가 늘었다.
이 음반의 연주자는 피아니스트 조재혁이다. 6월 18일 에비당스 레이블로 나왔다. 한국에서 먼저 나왔고, 3개월 후에는 인터내셔널 발매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오케스트라 협연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오케스트라의 녹음 역시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이 기간 동안 나온 음반들은 독주 또는 실내악이 대부분이었다.
조재혁의 음반은 팬데믹 기간 중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발매되는 오케스트라 협연음반으로 기록됐는데 이는 코로나 사태 이전에 녹음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재혁의 라흐마니노프는 꽤 독특한 어법과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담백하면서 세련되었다. 확실히 전형적인 러시아 스타일의 연주라고는 보기 어렵다.
어딘지 모르게 젊은 세대의 쿨한 감성이 느껴지는 사운드라고나 할까.
조재혁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은 각별한 인연이 있다고 한다. 그의 첫 협연 무대는 13세 때였는데, 이때의 레퍼토리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3년 후 조재혁은 처음으로 출전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이때 연주한 곡이 라흐마니노프 3번 협주곡이었다.
“오케스트라와 협연 음반을 녹음하게 된다면 그것은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이 될 것”이라고 오래도록 말해 왔다는 조재혁. 이번 음반은 그 약속의 성취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연주에서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선택하는 전형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점은 흥미롭다. “라흐마니노프는 반드시 이렇게 연주해야 해”라는 말은 “이렇게 연주하지 않으면 모차르트가 아니야”라는 말만큼이나 귀 담아 들을 필요 없는 헛소리일 테지만 조재혁은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연주자들과는 상당히 다른 소리를 들려준다.
빠르기의 변화와 볼륨만으로 청자의 감정을 급가속 시키는 데에 대가인 라흐마니노프(또 다른 대가로는 차이코프스키가 있다)지만 조재혁은 액셀러레이터를 성급히 밟지 않는다.
지휘자 한스 그라프와 오케스트라(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가 몇 번이나 유혹의 눈길을 보내보지만 피아노는 “이쯤에선 이 정도로 괜찮잖아?”하며 시익 웃고 마는 것이다.
조재혁의 피아노는 그동안 숱하게 들어온 라흐마니노프의 진득함이 아닌 영롱하고 투명한 유리알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 사운드는 단순히 음색의 문제만이 아니라 꽤 논리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데 예를 들어 슬픔이라 해도 거대하고 웅장하기까지 한 슬픔을 걷어내는 대신 덜 거대하지만 ‘이유 있는 슬픔’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득한 사운드, 골이 깊고 유장한 감정의 굴곡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조재혁의 연주가 다소 밋밋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굳이 비교하자면 평양냉면 같은 연주인지라 ‘슴슴함’과 ‘밍밍함’의 경계를 이빨로 면발 끊듯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줄로 쓴다면 담담하고 담백한 가운데 고고한 품격이 느껴지는 연주다.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물리지 않는 맛이라 자주 손이 갈 것 같은 음반이다.
라흐마니노프도 싫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